이름 모를 '그분'이 선물해준 '만 원의 행복'
'좋은 기사 원고료'로 응원해주신 독자님, 고맙습니다
▲ 여의도 '거리미사' 5월 16일의 제24차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 - 여의도 거리미사'에는 30명이 넘는 사제들이 공동 집전을 했다. ⓒ 지요하
5월 13일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면에 <여의도 나루터 '시대의 횃불', 또 하나의 보루 될 터>라는 글을 썼습니다. 2010년 11월 29일 이후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서울 여의도에 가서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 - 거리미사'에 참례하는 내 생활과 간절한 기원들을 소개하는 글이었습니다. 가톨릭신자 500만 명 시대의 '허허실실'을 부분적으로나마 논하는 글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쓸쓸함도 미사를 지내다 보면 말끔히 해소된다. 이상한 위축감도 쓸쓸함도 여의도 거리미사를 통해 치유된다." 이 말에 참으로 동의합니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저도 약 두 달 동안 매주 월요일 저녁의 그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모이는 인원은 적지만, 마음속으로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수천 배 이상 많습니다. 무얼 어떻게 할지 몰라 안타까워 할 뿐입니다. 특히, 불교에서는 더 많을 겁니다. 지요하님이 쓰시는 글 늘 고맙게 읽고 있구요, 삶에 힘도 많이 얻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 독자님이 남기신 메시지를 여러 번 음미해보았습니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약 두 달 동안 매주 여의도 거리미사에 참석했다'고 하신 말씀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도 아니신 분이 여러 번 천주교 미사에 참례하신 그 마음 사정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착잡하고 안타까우면 그러셨을까? 생각할수록 그 마음이 내 마음에 포개져서 안쓰러움이랄까, 미묘한 아픔이 번지는 것 같았습니다. '무얼 어떻게 할지 몰라 안타까워할 뿐'이라는 말씀은 '안타까움'의 농도를 내 가슴에 그대로 안겨주는 말이었습니다.
"이상한 위축감도 쓸쓸함도 여의도 거리미사를 통해 치유된다"는 내 말에 그분은 동감을 표해주셨습니다. 간절한 기원 자체가 '위안'이고,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그 '위안'을 얻기 위해 내가 매주 여의도 '거리미사'에 참례하는 것이니, 그런 내 마음에 동감을 표하신 것만으로도 그분은 천주교 신자가 아닐망정 이미 신자 이상의 '믿음과 기원'을 가슴에 지니고 사시는 분일 터였습니다.
▲ 여의도 '거리미사' 5월 16일의 제24차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 - 여의도 거리미사'는 안동교구 사제들이 주례와 강론을 맡았다. ⓒ 지요하
나는 고마운 마음이 한량없었습니다. 내 글을 읽어주신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내 글에 공감을 표하며 응원의 뜻으로 고료까지 보태주셨으니 나로서는 실로 과분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고마운 일은 그분이 여의도 '거리미사'에 참례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도 아니신 분이 그처럼 여러 번 지속적으로 미사에 참례하셨으니,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 - 거리미사'는 이미 포용의 범위를 크게 확보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나는 그 독자님께 감사하면서 하느님께 다시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무참하게 파괴되고 자연환경이 마구 유린되는 이 야만적 상황 속에서, 매주 월요일 저녁의 여의도 '거리미사'는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릅니다. 오후 인생 후반기인 60대 시절에도 뜨겁고도 절절한 마음으로 기원을 드릴 수 있는 여의도 '거리미사'를 베풀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지난 제24차(5월 16일) 기도회 때는 제가 또 한번 시낭송을 했습니다. 미사 중 영성체 후에는 사회를 보시는 김인국(청주교구 금천성당 주임, 정의구현사제단 총무) 신부님이 여러 가지 공지사항을 발표하고, 미사를 공동 집전하신 각 교구와 수도회 신부님들을 소개하시는데, 가끔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제가 시낭송을 하기도 합니다.
모두들 슬프고도 절절한 마음을 안고 미사를 지내지만, 미사는 '잔치'이기도 함으로 즐겁고 생동감 넘치는 미사가 되도록 신부님들부터 신경을 씁니다. 저는 5월에 어울리는 노천명의 <푸른 5월>을 낭송했습니다. 먼저 노천명 시인에 대한 얘기도 했습니다. 일제가 패망하기 하루 전 날까지도 일제를 찬양하는 글을 썼을 정도로 앞뒤가 꽉 막힌 친일파 아줌마였지요.
그래서 내가 되우 혐오하는 시인이지만, 그래도 그녀가 남긴 <사슴>이며 <푸른 5월> 등의 시를 좋아합니다. 친일파 시인의 시를 낭송하는 것에 대해 오해가 없도록 미리 양해를 구하는 뜻의 말을 한 후 미사에 오신 모든 분들을 잠시나마 아늑한 시골 고향산천으로 안내할 수 있었습니다.
▲ 여의도 '거리미사' 참례나는 거의 매번 맨 앞자리에 앉곤 한다. 추운 겨울철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선 채로 미사를 지냈지만 봄이 되면서 땅바닥에 깔개를 깔고 앉아 미사를 지낸다. ⓒ 지요하
그리고 시를 낭송하기 전에 그 독자님 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 날도 그분이 거기에 계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천주교 신자들과 어울려 미사를 함께 지내고, 시낭송을 하는 내 모습을 지켜봤을지도 모릅니다.
그날의 미사에 참례하신 신자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 분도 참례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고무된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얼마나 안타깝고 마음 아프면 신자도 아니신 분이 천주교 미사에 여러 번 참례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더 확실하게 공유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내게 격려와 응원을 베풀어주신 그 독자님 덕분에 나는 더욱 뜨거운 마음으로 여의도 '거리미사'에 참례하며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 - 여의도 거리미사'가 천주교 신자들만의 전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그 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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