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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것들!" 너무 많다

시인 정원도 두 번째 시집 <귀뚜라미 생포작전> 펴내

등록|2011.05.28 15:43 수정|2011.05.28 16:20

시인 정원도 시인 정원도(52). 그가 23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들고 문단에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귀뚜라미 생포작전>이 그것이다. ⓒ 이종찬


어떻게 들어오셨는지
남은 여름마저 몰아내려고 열어둔 창문 사이로
귀뚜라미 한 마리 아장아장
거실 안으로 뛰어든다

그냥 두면 누구의 발에 압사 당할지 알 수 없으므로
밖으로 돌려보내자고 생포하기로 하는데
그는 남의 속도 모른 채
붙잡히지 않으려고 잽싸게, 애타게 달아난다
이런 것이 짝사랑일 것이다

그냥 콱 움켜잡기는 쉬운데
손아귀 속으로 귀하게 모시자니 어렵다
지금 그를 생포하는 것은
이 가을을 다 생포하는 것이므로

사력을 다해 따라다니다가
손 안에 모시는 행운을 잡았는데도
혹시나 저를 해치는 손길일까
버둥대는 몸짓
고이 풀밭에 내려놓는다

이 가을을 고스란히 내려놓는다

- '귀뚜라미 생포작전' 모두

시는 무엇일까? 시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시가 무엇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시인 또한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다. 시와 시인은 거미줄처럼 이 길을 가더라도 틀리다 말할 수 없고, 저 길을 가더라도 다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인 정원도는 이른 새벽 거미줄에 보석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슬(시)을 따먹지 않고 저만치 거미줄 한 귀퉁이에 걸린 귀뚜라미를 먹기 위해 23년 동안 아등바등거렸다. 그도 처음에 이슬을 따먹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가 이슬을 내팽개치고 귀뚜라미를 먹기 위해 몸부림친 까닭은 따로 있다.

이슬은 아무리 따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이슬은 마음만 배부르게 했다. 그 혼자라면 그렇게 주린 배를 움켜쥐고 이슬만 따먹으며 살 수도 있었다. 문제는 가정이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다. 그 살붙이와 피붙이들 배를 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 '가장'(家長)이란 낱말은 가족들 '식의주 해결사'로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23년 만에 문단에 다시 던지는 시가 담긴 도전장

"시 대신 노동에 전념해야 했던 시절이 어느덧 20여 년이 흘렀다. 늘 마음 속의 짐으로 안고지내다가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어 다시 다잡아 앉았다. 모든 부족함은 다 내 탓이다. 나는 이제 뭔가를 이루기 위해 시를 쓰지 않기로 한다. 시를 쓰는 자체로 즐겁고 행복해지고 싶다." - '시인의 말' 몇 토막

1988년 첫 시집 <그리운 흙>을 펴낸 뒤 시를 잠시 마음 한 곳에 고이 모셔두고 식의주를 위해 지천명이라는 나이가 되도록 진흙탕길, 자갈길을 마다하지 않고 마구 뛰었던 시인 정원도(52). 그가 23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들고 문단에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귀뚜라미 생포작전>(푸른사상)이 그것이다.

모두 4부에 신작시 57편이 실려 있는 이 시집에서 시인 정원도가 말하는 '귀뚜라미'는 그가 다시 꼬옥 움켜쥔 '시'이기도 하고, 그가 바라보는 '삼라만상'이기도 하고, 그가 바라는 꿈이기도 하다. '착한 자영업' '볼트' '아내의 뒷모습' '교차로 전봇대' '몹쓸 시퍼런 싹들' '핸드폰 문자 부고' '바가지 머리' '나무들의 투자법' '옥상의 민들레' 등이 그 시편들.

시인 정원도는 28일 낮 전화통화에서 "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내 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생명'"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는 "나는 이 지상과 우주 속에 공존하고 있는 모든 생명들이 다 함께 조화롭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라며 "사람살이도 그 중의 일부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못 박았다.

그렇다. 그가 지난 20여 년이란 세월을 식의주에 바친 것도 어쩌면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고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고된 몸부림은 곧 가족들 생명을 지키는 일이자 삼라만상이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가 시를 다시 벼리고 있는 것도 그동안 아등바등 살았던 몸부림, 그 '생명'을 담기 위해서다. 

우리 사회 위태롭다,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것들!" 너무 많아

시인 정원도 두 번째 시집 <귀뚜라미 생포작전>이 시집에서 시인 정원도가 말하는 ‘귀뚜라미’는 그가 다시 꼬옥 움켜쥔 ‘시’이기도 하고, 그가 바라보는 ‘삼라만상’이기도 하고, 그가 바라는 꿈이기도 하다. ⓒ 푸른사상

같은 기계에서 만들어진 볼트도
저마다 성질이 다르다
몸통의 굵기나 키가 다르고
채워지는 나사의 종류가 다르고
감당하는 체력도 다르다

- '볼트' 몇 토막 

시인 정원도는 그가 늘 현장에서 마주하는 볼트를 통해 이 세상살이를 하나 둘 깨친다. "겉보기에는 다 그게 그거" 같지만 종류마다 그 쓰임새가 다르다. 볼트에게 주어진 운명도 다르다. "저마다 적재적소에서 / 자기 내력만큼의 몫을 감당하고 있을 때 / 구조물은 튼튼"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시인은 언뜻 여기기에 아주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작은 볼트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닌 여러 꼬락서니를 꼬집는다. "모든 볼트들", 즉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저의 쓰임새를 버거워하는 / 사회는 고통" 그 자체다. 시인이 바라보는 "쓰임새를 버거워하는" 사람들은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것들!", 곧 너무 많이 가진 자들이다.

그에게 우리 사회가 위태로워 보이는 까닭은 "버겁게 버텨야 하는 볼트가 많은 구조물"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 현장에서 쓰이는 여러 도구, 그 도구에 매달려, 오로지 식의주만 생각하면서 밤낮 죽어라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정비복, 해머, 철제빔, 화물차, 폐기물 등에 우리 사회란 잣대를 들이대며 이 세상살이, 그 얄궂은 속내를 파헤친다.

벽지 바르는 일은 "측은지심을 발라주는 일"

"맞벌이 20년이 쉴 새 없이 공사 중이다 / 아내는 날마다 남의 집 벽지를 골라주고 / 나는 밤마다 고장 난 기계와 뒹군다 // 죽은 기계 되살리다가 돌아오는 날도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밥 올리고, 청소하고 / 만찬도 없는 밤을 맞으며 / 서로에게 달아주던 훈장! / 큰 파스 한 장 반으로 잘라 / 삐끗한 허리마다 꼭꼭 붙여주면 / 안쓰러운 손바닥마다 아릿한 향내가 묻어난다"

- '파스' 몇 토막

눈물겹다. 누가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시인이 시를 쓰지 못하고 식의주에 모든 것을 몽땅 바쳐도 모자라 시인 아내까지 벽지 바르는 일에 나서야 겨우 입에 풀칠 할 수 있는 세상. 지친 몸에 서로 파스를 붙여주며 우리 사회가 맞벌이 20년 부부에게 붙여주는 멋진 훈장이라고 여기며 지천명이 되도록 노동에 매달려 살아온 착한 시인 정원도.

그는 아내가 날마다 벽지를 바르는 일에 대해서도 "지친 벽마다 화사한 벽지로 단장해주는 / 측은지심을 발라주는 일"이라 여긴다. "그 측은함이 뼈 속 깊이 박히는 날도 / 깜빡, 비닐도 떼지 않은 채 (파스를) 발라주어도 / 이미 다 나은 듯한 얼굴로 / 마주 보며 곤히 잠이" 드는, 너무나 착한 시인 부부.   

시인은 노동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시인 아내도 노동, 그 자체가 힘들다고 멀리하지 않는다. 시인과 시인 아내는 노동을 사랑하는 부부처럼 아끼고 쓰다듬는다. 벽지 바르는 일이 "측은지심을 발라주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도 이들 부부가 노동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모든 싹은 꽃피우고 싶은 것들이 내미는 갈망

산소 절단기나 용접 불꽃에
망가진 시력 탓인지
허망한 상이 눈에 피어나
사라질 줄 모른다

- '편두통' 몇 토막

시인에게 있어 노동은 곧 생명이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시인처럼 그렇게 노동을 생명으로, 생명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는 '몹쓸 시퍼런 싹'이다. 왜? 음식물 쓰레기통 속을 바라보면 제대로 먹을거리도 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버려진 "감자나, 고구마, 양파들도 무더기로 / 심하게 돋은 싹을 감당 못한 채 / 이리저리 나뒹굴고"(몹쓸  시퍼런 싹)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싹을 바라보며 우리들 생명을 지키는 음식물을 함부로 버리는 우리 사회를 향해 심하게 꾸짖는다. "모든 싹은 꽃피우고 싶은 것들의 / 갈망"이며,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품었던 독으로 / 가득 차" 있다. 시인은 음식물을 다 먹지 못하고 쓰레기로 버리는 스스로 마음속에도 "몹쓸 시퍼런 싹들이 마구 돋아나고 있다"며 크게 꾸짖는다.

시인 눈에 비치는 우리 사회, 너나 할 것 없이 음식물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기계 속에서 조작된 하루인 줄 알면서도 / 아름답다!"(하루)는 곳이며, "많은 어미들의 헌신이 / 집유기 꼭지를 따라 배출"(모유)되는 곳이다. "핸드폰 문자 부고 단 두 줄"(핸드폰 문자 부고)이 날아오는 곳이며, 대통령이 "어둔 새벽 허공에 몸을 맡기"(부엉이 바위로 날아간 새)는 그런 무서운 싹이 트는 곳이다.

시인은 차를 끓이면서도 이 세상을 앓는다. 시인 귀에 "갑자기 주전자가 울음소리를 내"고, 그 울음소리는 "고열의 고문에 못 이겨 내는 신음"으로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인은 우리 사회가 좋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깊은 울음을 통과하고서야 가까스로 / 만날 수 있는 방(房)"(대추자를 끓이며)이라는 것을 화두처럼 툭 던진다.    

필사적으로 살아온 노동, 땀내가 배어 있는 시

나무들도 투자한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먼 안녕과 종족의 번성을 고려하여
충분한 나뭇잎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 '나무들의 투자법' 몇 토막

시인 도종환은 "정원도의 시는 작업복 냄새, 기름 냄새가 난다. 그의 노동시에는 필사적으로 살아온 자의 땀내가 배어 있다"며 "'겉보기에는 다 그게 그거지만 / 종류마다 제 용도가 달라서/ 지워진 운명마저 다르다'는 볼트처럼 자기 몫의 생을 자기 내력만큼 감당하고 있어서 튼튼하다"고 되짚는다.

그는 "기계적 상상력을 넘어서는 자리에 정원도의 시는 있다"며 "늘 공사 중인 삶, 전쟁 같은 생활 속에서 훈장처럼 파스 한 장 반으로 잘라 허리마다 꼭꼭 붙여주는 부부의 측은지심, 그 아릿한 향내는 사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자본이 아프리카의 굶주림에 눈물 흘리고 / 전쟁이 잘려나간 다리들을 위해 참회하는 시대"가 오길 바라는 그의 소망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라고 평했다.

시인 맹문재(안양대 교수)는 정원도 시를 조지 오웰(영국 소설가,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 배신에 바탕을 둔 정치우화 <동물농장>을 씀)이 쓴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 빗댄다. "노동자 계급을 비롯해 억압당하는 자들을 품기 위해 공을 들이고... 맥 없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귀뚜라미며 나무까지 품"을 줄 아는 시인이 정원도이기 때문이다.

시인 정원도가 23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 <귀뚜라미 생포작전>은 '시 생포작전'이자 '식의주(생명) 생포작전'이다.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시와 노동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자식처럼 서로 살을 부대끼고 살아가는 한 핏줄이자 한몸이라는 사실을 바람에 날려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이 세상 곳곳에 퍼뜨린다. "밤낮 잠 못 드는 노동"(귀가사)처럼 그렇게.

시인 정원도는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나 포항철강산업단지에 있는 공장현장에서 일하다 1985년 <시인>에  '삽질을 하며'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리운 흙>(1988)이 있다. 그는 지금도 젊은 날부터 식의주를 위해 제 몸처럼 짊어지고 있었던 건설기계란 그 지게를 벗지 못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시인 정원도 두 번째 시집 <귀뚜라미 생포작전> 출판기념회가 5월 28일 저녁 7시 인사동 ‘시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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