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양심범들 소신 꺾지 않게 하는 것이 내 역할"

홍성우 변호사, 30일 <인권변론 한 시대> 출판기념회

등록|2011.05.30 12:03 수정|2011.05.30 12:03
인권변론의 진실 온전히 되살려낸 대담집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 홍성우-한인섭 대담집 <인권변론 한 시대>의 표지. ⓒ 경인문화사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이다. 이처럼 변호사는 본디 '인권변호사'인 것이다. 그러나 어디 세상 이치가 그런가. '인권'보다는 '물권' 변호사가 판치는 요즈음이다. 특히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정권 시절의 '사법 암흑기'에 인권변호사는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로 기억된다. 그 중에서 조영래(1990), 황인철(1993) 변호사에 이어 올해 초 이돈명 변호사가 타계했다.

이처럼 인권변론의 살아있는 증인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는 때에 그때의 진실을 온전히 되살려낸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한 대담집이 책으로 나왔다. '홍성우 변호사의 증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인권변론 한 시대>(경인문화사)가 그것이다. '홍성우-한인섭 공저'라는 저작권의 주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 암울한 시절에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을 실천한 홍성우 변호사의 변론자료와 그의 인권변론을 복원해 내려는 한인섭 교수(서울대 법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인권변호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당시의 사법부는 피고인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 판결들은 최근 들어서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로 바뀌는 중이다. 절망에 맞서 인권변론을 끝없이 끌어갔던 1세대 인권변호사 홍성우는 몇 십 년 동안 변론자료를 버리지 않고 보관해두었다. 그 변론자료는 현대 법제사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던 한인섭 교수가 2007년에 인수해 2009년에 전산화를 완료했다. 그 자료는 1207종, 4만6천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이 자료를 토대로, 홍 변호사와 한 교수가 정확한 증언과 고증을 위해 한 자리에 앉았다. 홍성우는 100시간 이상을 증언했고 한인섭은 이를 기록하며 대담을 이어갔다. 일부 내용은 당시 활동했던 인사들의 보완을 받았다. 그리하여 780쪽에 이르는 방대한 인권변론의 전모를 복원해낸 것이다.

전·현직 정치인부터 간첩누명을 쓴 억울한 이들까지 복원

대담중인 한인섭과 홍성우 이 책은 암울한 시절에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을 실천한 홍성우 변호사(오른쪽)의 변론자료와 그의 인권변론을 복원해 내려는 한인섭 교수(왼쪽)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경인문화사


이 책의 등장인물은 1974년부터 1995년의 학생, 지식인, 노동자, 조작간첩, 기자, 군인 등 다채롭다. 이철, 유인태, 한명숙, 김문수, 이재오, 이부영, 유시민, 김성식, 정태근 등 전현직 정치인들의 청년시절 열정뿐만 아니라, 산업화의 그늘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의 신음소리, 억압적 정권하에서 유린당한 사법부의 짙은 그늘, 그리고 공안권력에 의해 간첩 누명을 썼던 억울한 이들의 한숨이 이 책에 들어 있다. 그래서 이런 그늘과 신음소리 그리고 한숨을 복원한 것에 대한 한인섭의 평가는 남다르다.

"이 기록들은 우리 정치의 암흑기인 유신시절과 5공시절 관련해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시기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신문, 잡지를 제일 먼저 볼 텐데요. 그런데 박정희, 전두환의 철권통치 시대에는 저항 사건은 아예 보도가 되지 않았으니까, 이 기록들이 쓰이지 않은 현대사를 재구성하는 원자료로 쓰임새가 크다는 생각입니다."

김수환 추기경과 인권변호사들 사이의 에피소드, 김지하의 양심선언과 법정투쟁의 전모, 오원춘 사건에서 변호사들이 대성통곡한 사연 등 이 책에서 처음 밝혀지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였던 시절이지만, 그 와중에 판사들이 나름대로 노력한 사연들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무려 7심을 오간 '핑퐁재판'으로 유명했던 송씨일가 간첩단사건(최근 재심무죄로 판명)의 진실을 밝히려 온갖 노력을 다한 사연도 공개된다. 이에 대한 한인섭의 평가다.

"대학원생들과 함께 먼지 가득한 서류를 정리하며 우리 현대사를 수놓은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전율도 하고 감동도 받고 그랬습니다. 한마디로 한 시대의 문서이자, 당시의 재판과 법 적용에 대해 살아있는 기록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민주화운동은 모두 형사재판의 대상이 되었던 만큼 민주화운동사의 내용을 풍부히 하는데도 이 자료의 가치는 비할 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양심범들의 소신을 보호해주자, 이게 내 주된 역할"

젊은 날의 추기경지학순 주교 구속 사건부터 시작된 김수환 추기경과 인권변호사들의 동지적 관계는 70~80년대 내내 지속되었다. 왼쪽부터 송건호, 김수환, 황인철, 홍성우.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당시에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절망적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홍 변호사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계속한 이유는 뭘까?

- 변론요지서, 항소이유서를 그렇게 공들여 써봤자, 당시 판결에 전혀 반영이 안되잖아요. 그럼에도 그렇게 열심히 쓴 이유는 뭘까요?
"읽어라도 보라는 거지요.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어요. 나 혼자라도 진실을 밝혀놓지 않으면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다는 심정이었죠. 또 그렇게 해서라도 피고인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고 싶었어요. 변호사의 가장 큰 역할이 그거에요. 양심범들의 소신을 보호해주자, 소신을 꺾지 않는 데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자 이것이 나의 주된 역할이라 생각했어요."

이 책의 출간을 기념해 30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이미 80년대 학생운동권의 최고의 이론가로 꼽히는 '민추위(깃발) 사건'의 문용식(민주당 유비쿼터스 위원장)을 필두로 그때 그 시절 홍 변호사의 사건 의뢰인들이 축사를 예약해 놓은 상태다. 홍 변호사는 웃으면서 "출판기념회에 과거 운동권이 너무 많이 모일 것 같아서 겁난다"고 엄살을 부렸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