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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예식장 앞 시위, 정신적 손해 위자료만 책임"

1·2심 예식장 업주가 낸 손해배상청구 모두 패소→대법, 위자료 부분은 파기환송

등록|2011.05.30 19:07 수정|2011.05.30 19:07
예식장 앞 인도에서 미지급 공사대금을 달라며 장송곡을 틀어 놓고 시위를 벌여 예식장 영업 등에 큰 손실을 초래했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은 재산적 손해배상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으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책임은 인정했다.

법원에 따르면 S종합건설은 2007년 2월 서울 강북구에 K상사가 종전 건물을 허물고 새로 신축하는 지하 2층 지상 6층 빌딩 공사를 맡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K상사의 요구에 따른 설계변경 등으로 인한 추가공사도 해 완공했다.

그런데 K상사가 공사대금 일부만을 지급하자 S건설은 '공사대금 잔금 등 12억8000만 원을 달라'며 신축 빌딩에 대해 유치권을 행사할 것을 통지했고, 이후 합의를 통해 해결되는 듯싶었으나 K상사 대표의 처이자 감사인 A(57, 여)씨의 반대로 결렬됐다.

이에 S건설 대표와 직원들은 경찰에 공사대금 청산촉구에 관한 옥외집회 개최 신고를 하고 2008년 2~3월 사이 10회에 걸쳐 이 빌딩 앞에서 미지불 공사대금을 달라며 피켓을 들고 확성기를 사용해 "악덕건축주 K 대표 OOO, 감사 OOO(A씨)은 자폭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는 등 집회·시위를 가졌다.

그러자 이 빌딩 일부를 임차해 웨딩홀을 운영하던 A씨가 문제를 제기한 것. A씨는 "'플래카드와 피켓에 미지불 공사대금 12억 원을 즉각 청산하라'고 허위사실을 게시한 채, 결혼 예식 시간에 맞춰 확성기 볼륨을 갑자기 높여 예식진행에 혼란을 초래하면서, 죽음을 의미하는 검은 리본을 머리나 허리 등에 묶고 구회를 외치거나 예식을 마치고 나오는 고객들에게 장송곡을 틀어 소름끼치게 하는 방법으로 불법시위를 해 영업을 방해했다"며 소송을 냈다.

예식장을 예약한 고객들로부터 예약을 취소당하는 등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되는 재산적 손해 6억 4000여만 원, 사회적 명성이나 신용이 훼손됨으로 인한 재산적 손해 2억 원, 위자료 1억 원 등 9억 4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1·2심 "시위가 예식장 업무중단 또는 혼란을 야기하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1심인 서울북부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정진경 부장판사)는 2008년 11월 A씨가 예식장 앞에서 집회·시위를 가진 S종합건설 대표와 직원 등 1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시위는 K상사가 피고 회사에 대해 상당한 금액의 미지급 공사대금 채무가 있음에도 피고 회사의 적법한 유치권행사를 방해하는 상황에서, 피고 측이 공사대금을 받기 위해 적법한 유치권 행사와 병행해 행한 것으로 기본적으로 채무변제를 받기 위한 권리행사로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시위가 행해진 장소는 적법한 유치권행사가 행해지고 있던 곳으로 채무자인 K상사의 주소지이고, 원고의 영업은 K상사와는 별개라고 주장하나 원고는 K상사의 감사일 뿐 아니라 대표이사의 처로서 이 사건 공사 및 대금지급 합의과정에도 깊이 관여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특히 "시위는 경찰에 신고한 내용대로 이뤄졌으며 시위과정에서 특별히 위법한 점을 발견하기 어렵고, K상사 대표와 원고를 악덕건축주 등으로 표현하고 일부 피켓에 검은 휘장을 두른 것은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피고 측이 공사대금 미지급에 관한 의견을 표현한 것으로서 그것만으로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A씨가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제6민사부(재판장 이승영 부장판사)은 지난 2010년 11월 A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피고들의 행위는 빌딩 밖 인도 등에서 일어난 통상적인 시위일 뿐이고, 시위내용이 원고의 고객들로 하여금 예식장 출입을 방해하거나 예식장에 난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원고의 영업장을 침해해 업무중단 또는 혼란을 야기하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민사사건에서 가해자의 업무방해 행위가 불법행위로서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업무방해의 결과로서 피해자에게 손해가 실제로 발생해야 하고 이를 원고가 입증해야 한다"며 "원고의 주장과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시위로 인해 고객들이 예약을 취소하는 등 원고에게 영업방해로 인한 손해가 실제로 발생했다거나, 원고의 사회적 명성과 신용을 훼손해 원고의 평가가 침해됐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시위로 인해 예식장 업주가 정신적 고통 받았을 것"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예식장 앞에서 시위를 벌여 영업에 큰 손실을 입었다며 A씨가 S종합건설 대표와 직원 등 1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위자료 책임은 인정해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에서 손해의 발생 및 불법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의 존재에 관한 입증책임은 원칙적으로 피해자에게 있고, 업무방해 행위로 인한 재산상 손해가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업무방해의 결과로서 피해자에게 실제로 손해가 발생해야 한다"며 "그런데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들의 업무방해 행위로 인해 원고가 주장하는 영업 손실과 신용훼손으로 인한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재산상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러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책임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예식과 각종 행사가 많은 주말 오후시간에 결혼식 하객 등이 드나드는 예식장 출입구 앞 인도에서 '악덕건축주 K상사 대표 OOO, 감사 OOO은 자폭하라'는 등의 문구가 기재된 피켓을 들고 확성기를 이용하거나 육성으로 구호를 큰 소리로 반복적으로 재창하거나 함성을 지르고, 근조 휘장을 머리 등에 두르거나 피켓에 매달고 곡소리를 내는 등의 방법으로 시위를 해 모욕 혐의와 예식장 영업방해를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들이 시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절차 등을 감안하더라도 원고에 대한 위와 같은 모욕 및 업무방해 행위가 그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보호법익과 침해법익과의 균형성, 긴급성이나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라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피고들의 행위가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따라서 피고들의 원고에 대한 모욕 및 업무방해 행위로 인해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까지 배척한 것은 잘못이므로 원심 판결의 원고 패소 부분 중 위자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을 다시 심리·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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