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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과 미국, 서로 간의 보복은 언제 없어질까

[리뷰] 넬슨 드밀 <라이언스 게임>

등록|2011.05.31 08:38 수정|2011.05.31 08:38

<라이언스 게임>겉표지 ⓒ 랜덤하우스

1986년 4월 15일, 미국이 리비아를 폭격했다. 선전포고를 하고나서 공격한 것이 아니라 한밤중에 전투폭격기 몇 대를 끌고가서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그 중에서도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의 숙소가 있는 병영에 폭탄을 쏟아 부었다.

작전은 순식간에 끝났고 공격을 끝낸 전투기들은 유유히 리비아의 영공을 떠났다. '엘도라도 협곡'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이 작전을 지시한 것은 당시 미국의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리비아 측의 주장으로는 그 공습으로 100명 이상이 부상했고 카다피의 양녀를 포함해서 37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병영이었지만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민간인들도 있었을테니 그 폭격으로 민간인들의 피해도 많았을 것이다.

어쩌면 공습의 결과로 가족을 전부 잃고 고아가 된 소년이나 소녀가 생겼을 수도 있다. 그런 아이들은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간다. 한발 더 나아가서 냉혹한 테러리스트로 성장할 수도 있다.

리비아 공습이 바꿔놓은 한 소년의 인생

넬슨 드밀의 2000년 작품 <라이언스 게임>에 등장하는 테러리스트 아사드 칼릴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칼릴은 1986년 미국의 폭격으로 어머니와 두 남동생, 두 여동생을 한꺼번에 잃었다. 당시 열여섯 살에 불과했던 칼릴은 이후에 자연스럽게 강인한 전사로 성장한다.

그의 이름인 '아사드'는 '사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 국가의 많은 남녀들이 자신들의 이름에 걸맞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아사드 칼릴도 가족을 잃은 충격과 슬픔을 이기고 사자처럼 용감한 전사가 된 것이다.

작품의 시작은 2000년 뉴욕. 유명한 테러리스트가 된 아사드 칼릴은 서유럽 도처에 시도때도 없이 출몰한다. 그가 들렀던 곳에서는 미국인이나 영국인, 아니면 건축물들이 예외없이 불행한 경우를 당했다. 각종 폭탄사건을 포함해서 미국장교를 도끼로 살해한 사건, 세 명의 초등학생이 사살된 사건 등의 배후자로 칼릴이 지목될 정도다.

그런 칼릴이 어느날 갑자기 파리 주재 미국 대사관을 찾아와서 자수를 한다. 자신은 미국으로 망명하고 싶다는 것이다. 대사관 직원들은 절차를 밟아서 칼릴을 미국으로 인도한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 뉴욕에 있는 FBI 대테러 기동대는 잔뜩 긴장한다. 칼릴이 무슨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FBI의 한 요원은 어쩌면 칼릴이 '갈매기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위장자수를 했다고 믿는다.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와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똥을 싸질러 놓고 날아가 버린다. 칼릴도 그렇게 혼란을 일으킨 후에 조용히 미국을 빠져 나갈거라는 이야기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1986년에 미국이 리비아에서 했던 작전이야 말로 갈매기 작전의 전형이다.

아사드 칼릴은 왜 망명을 신청했을까

1986년에는 마초 기질이 농후한 두 지도자, 카다피와 레이건이 수차례 신경전을 벌였다. 3월에는 미군이 리비아의 미사일 기지와 리비아군 초계정 네 척을 공격했다. 그러자 리비아는 미군함대를 지원하는 국가는 어디든 보복의 대상이 된다고 선언했다. 4월 초에는 로마발 아테네행 항공기 폭탄테러 사건이 발생한다. 이어서 서베를린 디스코텍에서도 폭탄테러가 터진다.

결국 꼭지가 돌아버린 미군은 4월 15일 직접 전투기를 몰고 리비아의 심장부로 향했고, 그 결과로 복수를 맹세하는 아사드 칼릴이 탄생한 것이다. 작품 속에서 한 FBI 수사관은 칼릴의 범행동기를 알고나서 '동정은 못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들의 평소언행을 보면 절대로 상대를 이해하지 못할 것만 같다.

FBI 수사관은 아랍인들을 가리켜서 '낙타와 교미하는 미친 자식들'이라고 비난한다. 칼릴은 미국을 '저주받은 악마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서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이상 테러와 보복공격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다른 미국인은 이런 말을 한다.

"우리와 저 녀석들 사이에 끝도 없이 보복이 되풀이되는 건 아닐까?"

끝도 없는 보복,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 악순환은 언제 어떻게 없어질까. <라이언스 게임>을 읽는 동안 답 안나오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떠오른다.
덧붙이는 글 <라이언스 게임> 넬슨 드밀 지음 / 서계인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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