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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세상을 등지고 홀로 살고 싶다

[포토에세이] 시골집에서 만난 풍경

등록|2011.06.04 14:16 수정|2011.06.04 14:16

찔레찔레꽃 향기가 진한 계절이다. ⓒ 김민수


그 집 뜰에선 찔레향기가 났다.
그러고보니 찔레꽃 화들짝 피었다 지는 계절이 돌아왔다.
뜨거운 6월의 함성이 분수처럼 솟아오를 무렵이면 슬며시 자리를 비켜주고 떠나는 찔레꽃, 그리고 머지않아 붉은 열매를 달고 다시한번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찔레꽃이 그 집 뜰에 피어났다.

함박꽃함박꽃 함박 웃는다. ⓒ 김민수


그 곁에는 함박꽃도 웃고 있었다. 이런 집에 살고 싶었다.
넓은 정원이 아니라도 풀꽃과 나무 몇 그루는 심을 수 있거나, 야산과 연결되어 있는 그런 집을 꿈꿨다.
아니, 걸어서 십분도 안 되는 거리에 피어있는 꽃이라면 보는 사람이 임자지......

그 집에서 그런 꿈을 꾼다.

작약과 항아리이런 장독대를 꿈꾼다. ⓒ 김민수


어머님이 왜 그리도 크고 화사한 꽃을 좋아하시는가 했는데, 항아리와 어우러진 작약을 보니 이해가 된다.

작은 꽃은 어울리지 않았을 거야.

집주인의 터잡기 원칙 하나는 '차 다니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었다고 한다. 십여년 전엔 제법 깊은 산골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한낮에도 멈추지 않고 새소리 들려오는 그 집, 그런 집에 홀로 살고 싶다.

지게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물건이다. ⓒ 김민수


가끔은 지게를 지고 나무도 하고, 뜰 여기저기 거닐면서 풀도 뽑고 마당도 쓸고...심심할 틈이 없을 것이다.

전원주택 혹은 시골살이를 꿈꾸다가 개발업자들에게 사기를 당하고는 아예 정나미라고는 떨어져버린 시골 혹은 전원생활의 꿈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창밖을 내다보면 이런 풍경이 들어오는 집에 살고 싶다. ⓒ 김민수


꼭 이런 창이었다.
거실에 앉은뱅이 탁자를 놓고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창이 프레임이 되어 보이는 풍경, 창이 안과 밖을 나누면서도 안과 밖을 하나로 연결하느 프레임.

갇히지 않아도, 프레임이 없으면 더 아름다운데...내겐 프레임이 없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것 같다.

질서정연하게 얽혀진 짚 ⓒ 김민수


멍석서툴지만, 진짜 멍석이다. ⓒ 김민수


엉성했지만, 짚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향수를 자극했다.
나도 시골에 살면 배워서라도 작은 멍석이라도  짜고 싶다.
삐배뚤빼뚤 멍석을 짜면서, 삶을 올곧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느끼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도 이해해야지 싶다.

좀씀바귀무리지어 피어난 모습이 일품이다. ⓒ 김민수


마당 한 켠엔 좀씀바귀가 지천이었다.
작디 작은 꽃, 그런데 그들이 모여 꽃밭을 이뤘다.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모이면 꽃밭이되듯, 이슬이 바다가 되듯....그렇게 세상의 작은 것들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게 하는 6월, 그 누구의 시골집에서 간혹 세상을 등지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본다. 왜 간혹이냐고 묻냐면, 아직도 세상은 충분히 살아갈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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