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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서 폐결핵 걸려 7년만에 제대했다"

정일환씨, 아버지 '상이등급구분신체검사등급 판정' 관련 소송 제기

등록|2011.06.06 19:37 수정|2011.06.06 19:37
"기자인가요. 그렇지 않아도 언론사 찾아가려고 했는데요. 잘 됐네요. 저희 아버지 이야기 좀 들어 보세요."

현충일(6월 6일)을 며칠 앞두고 경남 창원에서 택시를 탔는데, 전화 내용을 듣던 기사가 한 말이다. 정일환(52)씨는 아버지께서 군 복무 중 폐결핵에 걸려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다음날 정씨는 서류 뭉치를 들고 사무실 쪽으로 찾아왔다.

아버지 고 정주병(1974년 사망)씨는 20살에 입대해 폐결핵을 앓다가 39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아버지는 1953년 6월 8일 입대해, 육군 보병 장교(중위)로 최전방에서 방위 근무를 해왔다.

▲ 장일환씨는 군 복무 중 폐결핵을 앓다가 사망한 부친의 '상이등급 구분 신체검사 판정'을 위해 소송 등 갖자기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윤성효

막사 생활하던 아버지는 감기 끝에 폐렴으로 악화되어 육군병원에 입원했다. '양중엽 폐결핵'을 앓았던 것. 아버지는 1957년 11월 7일 육군병원에 입원했고, 이듬해 12월 30일 제대했다. 20살에 입대해 27살에 제대한 것이다.
사천이 고향이었던 아버지는 제대 뒤 마산결핵병원에서 3년 이상 입,퇴원을 반복했다. 정씨는 "아버지께서는 제대를 했지만 계속 질환을 앓으셨고 약물치료를 받아오다 마흔도 되지 않아 사망하셨다"고 말했다.

올해 팔순인 어머니는 지금도 사천에 살고 계신다. 고령인데다 중풍을 앓고 있다. 아버지는 결혼하자마자 입대했다. 신혼 생활의 단꿈도 제대로 맛보지 못했던 것이다. 꽃다운 나이에 군대에 갔던 남편이 폐결핵까지 앓았던 것.

어머니는 힘들게 살아왔다. 어머니는 병환을 안고 퇴역한 남편을 위해 뒷바라지하면서 자식들을 키웠다. 이웃 사람들도 어머니의 지극정성을 인정할 정도였다. 옛 삼천포시장(현 사천시장)은 1973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정씨 어머니를 '장한 어머니'로 선정해 상을 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1974년 1월 20일 끝내 하늘나라로 가셨다. 정씨는 "아버지는 제대 뒤 3년간 마산결핵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고, 경제적 사정 때문에 퇴원해서 집에서 지내셨다"면서 "매일 같이 방에만 누워 지내시다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삼천포에 있던 병원과 보건소에서 약을 타서 복용하는 정도였다.

정일환씨는 "아버지께서는 군 복무 중 질병으로 사망한 것이 분명했다"면서 "아버지는 군대 복무 중에는 체격이 70kg 이상이었고 건장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제대할 무렵 야위어서 50kg 정도에 불과하셨고,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다 보니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도 없었고, 끝내 사망하셨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어머니께서는 고생을 많이 하셨다. 아무런 생활 대책 없었고, 죽고 싶은 마음도 몇 번을 가지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군 복무 중에 질병을 얻어 끝내 사망했기에, 주변에서 국가유공자 신청을 해보라는 권유도 있어 가족들은 2009년 국가보훈처에 문을 두드렸다.

국가보훈처는 정주병씨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국가는 고인에 대해 '공상'으로 인정했다. 정씨에 따르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당시 열악한 복무 환경을 감안해 폐결핵을 공상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등급이 낮았는데, '상이등급' 7등급을 받은 것이다. 가족들은 최소 6등급은 되어야 한다는 것. 유족연금은 6등급 이상일 때만 받을 수 있다.

▲ 정일환씨의 아버지 고 정주병씨는 20살인 1953년 군대 입대했다가 폐결핵을 앓고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1958년 12월 퇴역했다. 사진 왼쪽은 입대에 건강할 때 모습이고 오른쪽은 질병을 앓은 뒤 살이 빠졌을 때 모습. ⓒ 윤성효


국가보훈처는 정씨 가족이 제출한 서류를 검토해 7급으로 판정했다. 국가보훈처는 사망원인에 대해 "주민들의 진술이 있지만 의학적으로 전문 지식을 갖지 못한 일반인의 진술로, 단지 고인이 폐결핵을 앓았다는 정도의 사실에 대한 진술"이라며 "사망원인에 대해 의학적으로 제시된 객관적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보훈처는 "3년간 결핵원에서 입원치료 뒤 통원치료를 받았다고 하나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없고, 사망일자는 전역 이후 14년 이상 경과했으며, 다른 사인으로 사망했음을 배제하기 어려워 폐결핵으로 사망했다고 단언할 수 없다"며 밝혔다.

정일환씨는 이번에는 법원에 문을 두드렸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창원지부 임원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창원지방법원 행정부에 '상이등급구분신체검사등급 판정 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임 변호사는 "아버지께서는 군 복무 중 폐결핵에 걸려서 치료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역하셨고, 사회 생활을 제대로 못하시다 돌아가셨던 것 같다"면서 "살아 계신다면 몸 상태를 보고 등급을 결정하겠지만 서면자료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일환씨는 증거자료 찾기에 나섰다. 수소문 끝에 아버지와 비슷한 시기 마산결핵병원에서 12개월 동안 입원해 있었던 사람을 찾아내 확인서도 받았다. 또 육군기록정보관리단을 통해 아버지의 병상일지도 복사했다. 간호일지에는 '객담 배출 동반' 등의 표시가 있다.

정씨는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결혼해서 바로 군대 가셨다. 군대에서 얻은 질병 때문에 고생하셨고, 그래서 직장생활도 못하셨다"면서 "엄청난 혜택을 보자고 하는 게 아니다. 연금이 나온다고 해봤자 어머니만 해당되는데, 앞으로 한 달을 사실지 1년을 사실지 모른다. 어머니가 평생 맺힌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자는 것 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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