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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대 광고 아니면 사기?

외국인 체류자격 변경 사기 피해, 출입국 나 몰라라

등록|2011.06.04 18:11 수정|2011.06.04 18:11
"8월이면 체류기한이 만료가 돼요. 그런데 한국어능력시험(TOPIK) 보면 한국에 장기체류할 수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지 만 4년 반이 넘은 도디의 질문이었다. 도디는 안산에 위치한 모 행정사 사무소로부터 한국어능력시험 중급과정만 통과하면 장기체류로 체류자격을 변경할 수 있다는 말에 주 1회 3시간씩, 월 12시간 강의에 30만 원이라는 거금을 선뜻 지불했다. 그러나 영 찜찜함을 버리지 못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려고 물어온 것이었다.

현대판 서동요 뺨치는 일들이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일어난다?

우리가 잘 아는 서동요에 보면, 훗날 백제 무왕이 된 서동이 신라의 선화 공주를 마음에 품고 "선화 공주님은/ 남 몰래 시집을 가두고/ 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으러 간다네."라는 내용의 노래를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주며, 그 대가로 노래를 유포시키게 한다. 노래는 소문으로 떠돌다가 사실인 양 채색이 되고, 급기야 서동이 선화 공주를 얻게 됨으로써 사실이 된다. 그런데 서동요 뺨치는 일들이 최근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다양한 소문들이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회자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 소문이라는 것은 사전에 나와 있는 정의 그대로 '진실성 여부에 관계없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사실이나 정보'다. 문제는 이 소문이 어떤 근거를 갖고 확대 재생산되고 반복적으로 유포될 때 발생하는 피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증권가에 루머를 옮기는 대표적인 매체인 '찌라시'로 불리는 사설정보지가 있듯이, 이주노동자들 사이에도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개 법무부 출입국이나 고용노동부 고용센터 등과 지근거리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행정사 사무소나 브로커 역할을 겸하는 이주민 대상 사업주들이다.

이들 사적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개인 혹은 집단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어떠한 사실이나 정보'를 왜곡하여 유포하고, 이주노동자들 입에 계속해서 오르내리게 만들 때 발생하는 피해가 도를 넘고 있다.

가장 심한 것은 체류 자격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주노동자 사이에 체류 자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이와 관련한 소문도 무성해진다. 특히 지난 1월부터 법무부가 재외동포들을 대상으로 한시적으로 사면합법화 조치를 취할 때부터 비동포를 대상으로 한 사면합법화가 곧 시행된다느니, 체류자격이 변경된다느니 하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더니, 시민사회 진영에서 국가인권위에 동포만을 사면키로 한 법무부의 차별적 사면합법화 조치에 대한 진정이 접수된 이후에는 아주 구체적으로 그 방법 등에 대해서까지 나오고 있다.

사면합법화, 체류 자격 변경, 궁지에 몰린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사기

사면합법화니, 체류 자격 변경이니 하는 소문들을 들어보면,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사기로 들리는데, 소문을 듣고 말하는 당사자는 그 내용을 철썩 같이 믿고 있어서 헛웃음을 짓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체류자격 변경 관련 사기 광고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체류자격 변경을 가능한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 모 행정사 사무소의 홍보 전단지 ⓒ 고기복


이런 부류의 소문은 궁지에 몰린 사람의 심리를 악용하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불구하고, 일종의 '희망 고문'을 당하는 셈이다. 요즘 체류 기한 만기가 가까운 이주노동자들이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catch your dreams! (당신의 꿈을 잡아라!)' 라고 적힌 유인물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해당 유인물에는 "외국인 근로자 여러분! 한국내 장기 거주를 원하십니까? 귀하에게 F2 장기거주 방법을 찾아드립니다. 우리는 F2를 위하여 노력합니다."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유인물만 놓고 보면, 유인물을 만들고 유포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면 정말 방법을 찾아줄 것 같다. 이주노동자가 많이 거주하는 안산시에 소재한 모 행정사 사무소에서 만들어진 이 유인물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짤막한 문구로 이주노동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장기 거주 방법으로 제시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실시하는 TOPIK이라고 하는 한국어능력시험 중급(3급)을 통과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TOPIK을 통하여 F2 꿈을 이룹시다!"라고 이주노동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국어학원 광고? 출입국 관련 사기 광고?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어학원 광고를 하는 셈인데, 이들이 정식 인가된 학원이고, 자격이 있는 교사들이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확실치가 않다. 일단 가장 많은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는 안산의 경우, 한국어 수강과 관련하여 영수증을 발급해 주고 있는 곳이 학원이 아닌 유인물을 만든 행정사 사무소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출입국 퇴직 공무원들이 끼어 있는 행정사 사무실에서 한국어강의와 관련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어능력시험 대비반을 매주 일요일 오후 1시 반부터 3시간 동안 가르치는데, 한 달 교습 비용으로 30만 원을 청구하고 있다. 12시간 강의에 30만 원이라는 폭리를 취하고 있는데도, 이러한 강의가 현재 경기 안산, 광주, 서울 등 여러 곳에서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만큼 소문이 날 정도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강의 질과 상관없이 이주노동자들의 급여 수준과 강의 시간 대비 과다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체류자격 연장을 하고자 희망하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수강하면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

한국어수강 영수증매주 일요일 세 시간씩, 월 12시간 강의에 30만원 ⓒ 고기복


한국어능력시험만 통과하면 장기체류가 가능? 근거가 있는 말인가?

기본적으로는 이런 말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TOPIK으로 F2 꿈을 이루라'고 선전하고 있는 업체들은 그 근거로, 출입국 관리법 '숙련생산기능 외국인력에 대한 거주(F2)자격으로 체류자격 변경 및 체류관리 업무처리 지침'을 들고 있다.

이 지침에 의하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시행 한국어 능력시험 3급 이상 취득자'는 체류자격 변경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체류자격 변경 신청자는 그 외에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들이 더 있고, 그 조건들을 이주노동자들이 충족시킬 방법은 전혀 없다는 점에서 한국어능력시험만 통과하면 장기체류가 가능하다는 광고는 과장광고도 아닌, 사기 그 자체다.

일단은 신청자들이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갖고 5년 이상 제조업, 건설업, 농업, 어업분야에서 취업하되, 최근 동일업체에서 3년 이상 근무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고용허가제 입국자들은 현재 최장 4년 10개월간 국내에 체류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법상 절대 5년을 채울 수 없다. 출입국관리법 위반 사실이 있는 사람들은 신청자격이 안 되기 때문에 체류기한을 넘긴 미등록자들은 철저히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고용허가제 입국 이주노동자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체류자격 변경이 불가능하다.

가령 합법적인 체류 기한이 2개월이 모자란 부분을, 억지를 써서 양해를 얻는다 해도, 그 다음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 또한 거의 제로에 가깝다. 1년 이상 2천만 원 이상의 예금 잔고를 유지해야 하는데, 정기적인 송금을 하는 이주노동자들 입장에서 2천만 원 잔고를 1년 이상 유지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임금소득을 증명할 수 있는 '근로소득 원천징수 영수증'을 제출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최근 2년간 받은 연평균 임금소득이 '근로자 연간 임금총액 이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2010년 기준으로 월평균 근로자 임금총액이 278만 1천원이다. 최저임금으로 근로계약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인 것을 감안하면, 월 695시간 15분을 일해야 가능한 급여다. 이것을 한 달 30일로 나누면 1일 23시간이 넘고, 일일 8시간을 일하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469시간을 더해야 하는 시간이다. 결국 이주노동자들에겐 죽도록 일해도 체류자격 변경은 꿈도 꾸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엄연한 사기인데, 관계 당국은 뭐하고 있나?

관련 규정만 정확히 알면 과장 광고 정도가 아닌, 사기 그 자체라고 분명히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기 사건을 수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경찰이나, 허위·과장 광고를 비롯한 각종 불공정행위에 대해 감시와 조사를 할 수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나,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고용노동부나, 출입국 관련 사기인 점에서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법무부 출입국마저 다들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이러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 작년말 10년 이상 장기체류 동포들에 대한 사면합법화 발표가 나오기 이전부터였고, 한국어능력시험반이 시작된 지도 지난 3월초부터였다는 점에서, 관련 기관들이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뒷짐을 짐으로 인해 피해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관계기관의 단속이나 안내가 없다보니, TOPIK 시험 하나만으로 체류자격 변경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고, 심지어 미등록자들마저 강의를 신청하고 있다고 한다.

출입국마저 수수방관?

출입국 관리법이나 관련 지침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출입국 퇴직자들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퇴직 후에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익사업을 하는 기관과 업체들에 취직하거나, 스스로 사업장을 개설한다. 가장 흔한 방식이 행정사 사무소에 취직하거나, 스스로 사무소를 개설하여 돈벌이를 한다.

행정사는 행정업무의 원활한 운영과 국민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국민의 권리의무, 사실조사 및 행정업무와 관련된 국민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국가 전문 자격사이다. 그동안 퇴직 공무원들이 경력인정을 통해 시험을 면제받아 자격을 얻어왔으며, 일반인은 시험이 없어 행정사가 되는 길이 막혀있었는데, 내년부터 행정사 시험이 실시된다고 한다.

출입국 출신 행정사들은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MB정부 이후 출입국 행정 업무를 독식하기 위한 구조를 만들어 왔다. 가장 쉬운 예가 손쉬운 체류자격 연장이나 변경을 하려고 해도 재외동포 스스로 신청하지 못하고, 반드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등록된 변호사나 행정사를 통해서만 신청할 수 있도록 지침을 변경한 것이다.

출입국 출신 퇴직자들이 행정사 사무소를 운영하다 보니, 관할 출입국에서 분명히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을 눈감는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즉 출입국 퇴직공무원들이 앞장서서 체류자격 변경 관련 사기를 벌이는 터무니없는 이런 구조는 출입국 출신 공무원들이 비록 고위 공직자는 아니더라도, 일종의 전관예우에 의한 비리 구조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련 문제 해법은?

우선은 미등록자 사면합법화를 추진하면서, 체류기한과 혈연에 따른 차별을 함으로 인해, 그 과정에서 배제된 비동포 출신 미등록자들과 고용허가제 입국 이주노동자들의 장기체류에 대한바람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하면 된다. 비동포 장기체류자에 대해서는 동포들에 준하는 차별 없는 사면합법화 조치로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고, 체류기한 만료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는 해당 지침들을 현실화하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 하루 속히 관련 시민단체와 국가인권위, 법무부 출입국이 T/F팀을 구성해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법을 제시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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