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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인가

어머니 말씀이 가슴에 닿아

등록|2011.06.06 15:48 수정|2011.06.06 15:48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인가?"

묘한 형상을 하고 있는 의지가 보인다. 선운사로 향하는 길, 선운사 생태 공원으로 향하는 길 군데군데에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굽어져 있는 모습이 굴곡 많은 인생의 길을 닮아 있다. 어렵고 질곡 많은 인생의 길을 터덕터덕 걸어가다가 지치면 잠시 쉬어가라고 손짓하고 있다. 쉬어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고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가다가 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길과 쉼터

선운사(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소재)로 향하는 길이다. 변덕스러웠던 봄이 무던히 괴롭히더니, 훌쩍 건너뛰었다. 봄을 기다리며 마음을 조아리고 있는 사이에 봄은 멀어지고 신록이 넘치는 초록의 세상이 되었다. 어디를 보아도 녹색의 힘이 보인다.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초록의 열정을 얻고 싶어 선운사를 찾았다. 그런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다리가 아프다.

의자있어야 할 곳 ⓒ 정기상



어제 좀 무리를 하였었다. 걷기 대회에 참석하였기 때문이다. 그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걷는 것이 무리라는 점을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의자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의지가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의자에 엉덩이를 맡기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있어야 할 곳

어머니의 말씀이 떠오른다. 사람이 자기의 분수를 알고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분수를 망각하게 되면 낭패를 본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이런 말씀을 그 동안 마음에 두지 않았다. 세상에 잘난 놈이 있다면 얼마나 있겠는가? 사람이면 모두가 다 똑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모두가 평등한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면서 살아왔다. 단지 어머니의 말씀이서서 그냥 귓등으로 들었을 뿐이었다.

아픈 다리를 추스르면서 의자에 앉아 살아온 지난날들을 되새겨 보았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면서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분수를 알고 겸손하였다면 그런 망신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들을 수도 없이 많이 당하면서 살아온 날들이 후회된다. 오만하고 방자한 생각과 행동으로 초롱이 같이 거침없이 뛰놀다가 당한 망신이 한 둘이 아니었다.

초록이 넘치는 ⓒ 정기상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태어났을 리는 없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 것은 엄청난 낭비다.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모두가 다 소명이 있다.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하여 한 평생 노력하다가 가야 하는 것이 운명이다.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비극이다. 개인에게는 물론이고 사회나 국가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도 엄청난 낭비이다.

분수를 알고 살아가는 것

그것은 소명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어머니가 분수를 알고 처신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깊은 뜻을 이제야 생각하게 된다. 그 것은 자신의 능력과 재주를 알고 품위 있게 처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이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면서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오만방자한 행동으로 일관한 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길과 쉼터걸어가야 만 하는 길 ⓒ 정기상



묘한 형상을 하고 있는 의자에 앉아서 어머니의 말씀을 되새겨본다. 초록의 힘이 넘쳐나고 있는 산사 가는 길목에서 숨을 몰아쉬면서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본다. 세월은 가속도를 받아서 화살보다도 더 빨리 가고 있다.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훨씬 더 많아진 시점에서 분수를 아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한다. 한 없이 낮은 곳으로 임하면서 분수를 지키면서 있어야 할 곳에서 본분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찾아야 할 때다. 초록이 참으로 아름답다.<春城>
덧붙이는 글 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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