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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엄마랑 이렇게 살 수는 없었을까?

문상 다녀온 날

등록|2011.06.07 17:17 수정|2011.06.09 14:13
내게 문상이라는 의미는 그저 조금은 성가신, 뭐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고쳐야 할 문제점이 너무 많아," 그런 흰소리까지도 서슴지 않는 그런 부류였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어디서 무슨 부음을 알리는 문자라도 오면 '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런 소식을 알리는 건 또 뭐람,'하고 구시렁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 분의 부음소식을 알게 된 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에 격식 같은 것에 얽매이는걸 병적으로 싫어하다 보니 평소에는 도무지 불편해서 안 입고 버티던 정장 비슷한 옷을 입고 문상을 가려고 집을 나섰다.

연휴라고 고속도로는 평일보다 차가  많았다. 워낙에 낯선 길을 찾아가는 일을 잘 못하는 길치인지라 집에서 스카이뷰 검색까지 마치고 나선 길이었지만 한방에 딱 도착할 것 같은 느낌은 없었다. 뭐 예상했던 대로 교차로에 차를 세워놓고서 용감하게 뛰어 내려 뒤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차로 다가가 길을 물었다. 낯선 길에만 나서면 어쩔 수 없이 용감해지는 편인데 대부분 사람들은 고맙게도 길 안내를 잘 해주었다.

목적지를 물어보고 나서야 길 건너편에 있는 건물인데도 못 찾고 허둥거렸다는 생각에 낭패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무렇든 잘 찾아가 주차까지도 잘 했다. 그런데 고인의 이름을 확인하고 2층에 올라가는데 그때부터 어쩐 일인지 자꾸 발이 헛디뎌지는 것처럼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눈빛처럼 정직한 게 또 있을까? 아마도 그 사람은 자신의 눈빛이 어땠는지 모를 것이다.

"아, 나 울어서."

아마도 울어서 눈이 붉어 바라보기가 부담스럽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가족이, 그것도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눈이 붉은 거야 당연한 거지 무슨, 그런 생각은 뒤늦게 왔다. 그냥 눈이 붉어서 마주보기가 좀 그렇다는 그의 말이 그냥 짧은 순간 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그냥 이런저런 말들을 5분쯤, 아니면 10분쯤 나누고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 톨게이트를 통과하는데 느닷없이 "등록하지 않은 차량입니다. 엥엥엥" 비상벨 소리가 요란해서 바라보니 하이패스 길에 들어 서 있었다. 내 차량은 하이패스 길을 달릴 수 없는데 톨게이트 입구에 들어설 때까지도, 아니 아주 많이 다니던 톨게이트 였는데 무슨 생각으로 하이패스길을 통과해서 이 사단을 만들어 버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톨게이트에서 여직원 한사람이 급하게 뛰어 나오더니 우회 할 수 있는 길을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짧은 순간에 너무 난감해져서 "그냥 통행권을 좀 빼다 주시면 안 될까요?" 물었더니 "저희가 고객님의 차량 정보를 모르잖아요, 그러니 우회도로를 다시 타셔서 저기 고가 도로 밑에서 좌회전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한 뒤 아득하게 멀어 보이는(적어도 그 순간의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저 만치에 있는 고가도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무튼 그냥 저 우회도로를 쭉 따라가면 되는 거지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묻고서 차를 돌렸다. 무사히 우회도로를 지나 다시 통행권을 빼들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을 들락거린다.

허둥거리며 돌아와 옷을 갈아 입고 주말농장에 갔다. 지난해 10월 말경에 심어두었던 완두콩이 다 익어 수확할 때가 되었다. 한 시간쯤을 아무 생각 안 하고 완두콩만 열심히 따냈다. 마디 오이도 서너 개 달려 있어서 그것도 수확을 했다. 여름 상추 모종도 열두어 포기 옮겨 심고 부추 밭의 바래기 풀도 뽑아주는 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던 온갖 잡념들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주말농장에 가서 풀도 뽑고 작물도 수확하다 보면 세상 속에서 복닥거렸던 생각들은 대부분 다 사라지고 없다. 아마도 그런 맛에 주말마다 농장에 찾아가 엎드려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지 않아 풀풀 먼지가 날리는 마른땅을 호미질로 대강 헤집고 열무 씨를 넣다가 더 이상 땅에 뿌려지는 씨앗이 안 보인다 싶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어느 사이 어둠이 내려 와 있었다. 농장에서 같이 일하던 이들은 언제 다 돌아가 버렸는지 그 넓은 농장엔 아무도 없다.

수돗가에서 발을 씻고 호미를 챙겨 차로 돌아 와 앉아 있는데 이제 막 모내기를 끝낸 논에선 개구리들이 떼를 지어 와글와글 소리를 낸다.

저 개구리 울음소리만 들으면 생각나는 시절이 있다. 엄마처럼 의지하고 살았던 언니가 시집을 가 버리고 없는 방안에서 혼자 책을 보거나 그냥 방 안에 숨어 앉아 있던 날들이 계속 되던 무렵이었다.  어느 하루 외출했다가 돌아 와 보니 내 방에 엄마 방과 통하는 낯선 문 하나가 새롭게 생겨 있었다. 너무 놀라서 물었더니 내가 만날 방안에 숨어 앉아서 책을 보거나 잠을 자는 통에 더 이상 못 참게 된 엄마가 문을 하나 더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엄마방과 곧장 통하는 문을 말이다.

쪽문이 만들어진 이후 그 문은 시도 때도 없이 벌컥거리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벌컥거리며 열리는 방문을 보고 앉아 있으면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적대감 같은 게 치밀어 오르곤 했다.

그런 날들 속에서 나는 집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을 품고 가벼운 짐을 꾸려 집을 떠나려고 나선 길에서 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다. 야트막한 언덕 솔숲이 우거진 논둑길을 따라 한없이 걸어가는데 어지러울 만큼 많은 개구리 떼들이 와글와글 울고 있었다.

개구리들 울음소리에 저절로 눈이 감겨 한참을 앉아 있다 눈을 떴는데 바로 눈앞 산등성이에 초승달이 노랗게 떠 있다. 도시를 떠나 살게 되면 이런 풍경도 일상이 될 수 있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들판 한가운데, 혼자 차 안에 앉아 있다는 생각에 얼른 음악을 틀고 한참을 그저 앉아 있는데 어제부터 친구네 가고 집에 없는 큰딸 아이 생각이 난다. '아고, 전화 한통도 안했구나' 싶어 전화를 했다.

"아니 딸, 친구가 그리도 좋아? 어째 집엔 문자 한 통, 전화 한 번 안 해?"
"엄마 미안, 여기 인천이야, 바다에 왔어."
"그래, 좋은 때다. 그런데 딸? 지금 하늘 한번 봐, 달이 떴는데 꼭 바나나 같은 모양이야."
"어, 여기도 떴네, 근데 뭐 내 눈엔 눈썹같고만."
"칫, 눈썹이 저렇게 노랬냐?"
"엄마, 술 마셨지? "
"술? 아닌데, 왜 술 마신 거 같아?"
"응, 엄마 목소리가 겁나게 친절하잖아, 지금."
"언제는 엄마가 안 친절했냐?"
"하긴 울 엄만 늘 친절했지."

시답잖은 말들을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는데 그냥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도 엄마랑 이런 말을 나누면서 살 수는 없었을까?  난 참 엄마랑 이러고 살아보질 못 했다. 어째서 사람은 그렇게 못해 본 것에 미련이 많은 건지 모르겠다.

엄마에 대한 마음이 지극했던 어떤 사람이 오늘 그 엄마와 영 이별을 했다. 여러가지로 힘든 시간을 보냈음이 분명한데도 그저 서운한 기색만 역력한 그의 얼굴이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게 도무지 무엇일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울어서 눈이 붉다며 얼른 시선을 피하던 그를 보면서 나도 이제 엄마랑 어떤 특별한 시간을 가져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마음이 불쑥 문을 열고 내 가슴 속으로 들어 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봐야 하는지 난감한 일이긴 하지만 마음속에서부터 뭔가를 차분히 정리해 보는 것도 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 유리문을 내려 둔 채 농장을 벗어나 좁은 논둑길을 천천히 달리는데 떼를 지어 울어대던 개구리 울음소리가 캄캄한 들녘을 다 벗어날 때까지 오래도록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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