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많은 호미, 다 뭣에 쓰려고?
여자만 갯벌서 바지락 캔 날... 내 마음도 갯벌처럼 실해졌으면
▲ 호미이 많은 호미, 뭣에 쓰려고? ⓒ 황주찬
지난 4일 오후 4시 여수 소라면 장척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시원한 정자 앞에 여러 가족이 모였습니다. 그 수가 180명을 헤아립니다. 조용한 어촌마을이 갑작스런 소란에 휩싸였습니다. 놀란 동네 개들이 낯선 이들을 경계하느라 하늘 향해 목청껏 짖어봅니다.
그러나 대세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개 짖는 소리가 사람들 웅성거림에 파묻힙니다. 모인 숫자만큼 시끄러운데, 무리를 향해 마을 어르신이 호미를 들었습니다. 순간 모든 시선이 할아버지 입술로 모입니다.
핧아버지 말씀을 다시 정리하면, "대나무 박힌 곳 너머엔 가지 마세요. 그 이상은 책임 못 집니다. 갯벌이 깊어 발이 빠지므로 오도 가도 못합니다. 그리고 바지락 많이 캐려면 호미를 옆으로 세워 갯벌을 훑어 내듯이 얕게 파야 합니다"라는 소리입니다.
▲ 시선 집중모든 시선이 할아버지 입술로 모입니다. ⓒ 황주찬
남들이 바지락 다 캐가고 없으면 어쩌나
여수시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시에 살고 있는 가족들 몇몇을 모아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모임을 지원하는데, 이름이 '가족품앗이'입니다. 그날은 장척마을 갯벌에서 전체 모임을 열었습니다. 바지락도 캐고 갯벌 체험도 하면서 가족의 소중한 의미를 찾아보자는 취지겠지요.
저는 행사 목적도 좋지만 실한 바다, 여자만에서 바지락을 캔다는 맛있는 생각에 기꺼이 함께했습니다. 차를 장척마을로 몰았습니다. 집에서 조금 늦게 출발한터라 약속시간에 도착하기 힘들 듯합니다. 조바심이 납니다.
남들이 바지락을 다 캐가고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량한 생각이 고개를 쳐듭니다. 그리고 가속 페달 위 발가락에 힘을 줍니다. 뒷좌석 두 아들은 이런 마음을 눈치 챘는지 누가 더 많이 캘지 벌써부터 목소리를 높입니다.
▲ 주의사항 듣기주최 측 설명은 관심 밖, 눈길은 살진 갯벌 위를 더듬고... ⓒ 황주찬
▲ 실한 갯벌, 실한 엉덩이(?)오늘 거둔 결실을 씻기 바쁩니다. 아이 엉덩이가 보이거나 말거나... ⓒ 황주찬
어느 곳에 바지락이 숨어 있을까요? 듣기로는 바지락도 한곳에 모여 산다는데 그 밭을 오늘 찾아야 합니다. 드디어 긴 설명이 끝났습니다. 삼삼오오 가족단위로 여자만의 실한 갯벌을 향해 걸어갑니다.
모두들 눈앞에 펼쳐진 갯벌을 보며 결연한 눈빛입니다. 손에 든 호미에 불끈 힘이 들어갑니다. 꼬맹이들도 잔뜩 기대를 품고 고사리 손에 호미를 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입고 완전무장한(?) 상태로 갯벌을 향합니다.
▲ 완벽한 준비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은 부부입니다. 이 바닥에 있는 바지락을 모두 캐 갈 모양입니다. ⓒ 황주찬
▲ 난처함과한 욕심이 화를 불렀습니다. 푹푹 빠지는 갯벌에 오늘 아빠 스타일 완전 구겼네요. ⓒ 황주찬
"그쪽 뻘이 짚은 곳 바지락은 맛이 없어"
그러나 막상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는 일을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몇 번의 호미질에 팔은 저려오고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걷는 것은 평지보다 두세 배의 힘이 듭니다. 또 6월의 뜨거운 태양은 소금기 품은 바람과 함께 피부를 괴롭힙니다.
고통을 참고 바지락을 캐는데 아이들이 궁금해집니다. 고개를 들고 눈으로 흩어진 아이들을 찾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호미질에 열심입니다. 기특한 생각에 힘든 발걸음을 옮겨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잡은 갯것을 보고 허탈했습니다. 아이들이 바지락을 비롯한 각종 조개를 캤으리란 생각은 저만의 무리한 꿈이었습니다. 녀석들은 고둥 속에 들어앉은 집게를 열심히 주워 모으고 있었습니다.
또, 작은 바지락을 담고 있는데 그마저도 개흙으로 가득한 알맹이 없는 조개들입니다. 정해진 시간은 흐르고 채워지지 않은 바구니를 바라보니 조바심이 납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곳저곳 정신없이 호미질을 해보지만 도통 바지락은 보이질 않습니다.
▲ 맨손으로호미가 말을 안들으며 맨손도 좋다. ⓒ 황주찬
▲ 집중움직이는 모든 것은 내손에 잡힌다. ⓒ 황주찬
그 할머니는 우리가 길이라고 지나쳐온 그곳에 다짜고짜 호미질을 합니다. 이윽고 호미 끝으로 엄지손가락만 한 바지락이 올라옵니다. 옆에서 환호성을 지르며 정신없이 바지락을 줍던 저는 '이런 것이 삶의 경험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눈에는 그저 썰물에 드러난 길이라 생각했는데 그 할머니는 그곳에서 실한 바지락을 걷어 올리고 있었으니까요. 호미질 하던 할머니가 제가 열심히 호미질 하던 곳을 흘긋 보며 한마디 합니다.
"그쪽 뻘이 짚은 곳 바지락은 맛이 없어. 이곳이 제일 맛난 바지락이 나는 곳이여"
그러면서 시간 없으니 빨리 주워 담으랍니다. 그날 마을에서 제공한 조그만 바구니에 실한 바지락을 양껏 채워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바지락을 어떻게 먹을지 궁리하다 전을 부쳤습니다. 감자를 갈고 그 속에 바지락을 넣어 전을 부쳤더니 바지락은 갯냄새 물신 나는 맛있는 음식으로 변했습니다.
▲ 전문가진정한 전문가의 자세입니다. 마을 앞 갯벌은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 하루의 고된 노동이 끝났습니다. ⓒ 황주찬
먹고살려고 하던 일을 지금은 돈 내고 체험하다니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날을 돌이켜 생각하니, 우리 가족이 노닐었던 갯벌은 마을 분들에겐 치열한 삶의 현장일 텐데 그곳에서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불현듯 장모님이 남해에서 갯벌체험 하며 아내에게 던진 말이 생각납니다.
"예전엔 먹고살려고 갯것 했는데 지금은 돈 내고 체험하라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며칠 후, 장척마을 지날 일이 있어 그곳을 들렀더니 지는 해를 업고 땀 흘리며 갯것을 하고 있는 마을 분들이 계시더군요.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대나무 꽂은 곳 너머에서 뻘배를 밀며 열심히 꼬막을 캐고 계셨습니다.
저는 땀 냄새와 이곳저곳 묻은 갯벌을 씻어내시며 하루의 수확을 정리하고 계시는 그분들을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그날 바지락 캔다며 온 갯벌을 들쑤시고 다녀도 궂은소리 한마디 하지 않으시고 너그러이 바라보시던 눈길이 새삼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도 여자만 너른 갯벌처럼 실하고 너그러워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하루의 수확열심히 호미질한 댓가입니다. 갯물에 씻어낸 바지락이 예쁩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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