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상여행렬 볼 수 있는 자인 단오제, 볼만 하네
[현장] 제 36회 경산 자인단오제
▲ 청포머리감기시연 ⓒ 임윤수
계정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숲이 정말 좋았습니다. 무슨 산, 무슨 강, 무슨 공원이란 말은 흔하게 들어 봤어도 지명에 숲이 사용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제 36회 경산자인단오제가 이틀째 열리고 있는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계정(桂亭)숲을 단오절인 6월 6일 다녀왔습니다.
아름드리 굵기의 나무가 녹음을 이루고 있는 천혜의 숲, 1만 3000여 평쯤 되는 야트막한 동산이 이름 그대로 숲을 이루고 있는 축제장입니다. 여느 공원에서 느껴지는 인위적인 느낌의 숲이 아니라 흘러가는 물처럼, 불어오는 바람처럼 태고의 자연스러움이 촉감처럼 느껴지는 그런 숲이었습니다.
단오제를 보려고 온 사람들이 이동하는 개미떼처럼 끊이지 않고 숲길로 들어갑니다. 한 마리의 개미가 된 기분으로 늘어선 사람들은 따라 숲으로 난 길은 걸어 들어가니 여기에는 상설 씨름장이 있고, 저기에는 상설 그네가 매달려 있습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잔디가 파랗게 깔린 야외 공연장 열린 문화마당도 있고, 2층으로 된 전수관도 보입니다. 두런두런 살펴보니 시중당도 있고 진충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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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6회 경산 자인단오제 제 36회 경산자인단오제가 이틀째 열리고 있는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계정(桂亭)숲. 단오절인 6월 6일 현장 ⓒ 임윤수
복작거리는 사람들을 헤집고 숲을 한 바퀴 돌아보니 홍살문이 세워져 있는 주출입구가 정작 따로 있습니다. 평소에는 한적하기만 했을 것 같은 숲길이 단오절에는 인파로 북적입니다. 불어오는 바람조차도 걸음이 막힐 정도로 북적이는 인파입니다.
이런저런 체험장과 행사에 소요되는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각종 천막들도 늘어 서 있습니다. 청포물에 머리 감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천연 염색을 경험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윷놀이, 제기차기, 투호놀이, 널뛰기, 그네뛰기를 해 볼 수도 있고, 단오떡, 단오부채, 단오비누, 솟대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장도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도자기를 만들고, 탁본을 떠 보고, 전통다도를 체험하고, 전통매듭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천막으로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새 주소홍보나 공명선거 홍보관 같은 공공의 공간과 행사에 소요되는 이런저런 공간들까지 천막으로 자리하고 있으니 늘어선 천막들이 벌집처럼 즐비합니다.
▲ 여원무 시연 ⓒ 임윤수
▲ 숲을 가득 메운 관람객 중에는 유독 나이지긋하신 어른이 많다. ⓒ 임윤수
오전 10시에 도착하니 진충묘에서 올리는 한장군제는 이미 끝났고, 씨름장에서는 씨름선수들이 샅바를 밀고 당길 때마다 와와 거리는 함성이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씨름선수들이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에 나뭇잎들이 흔들리고, 구경꾼들이 지르는 함성에 아름드리나무가 움찔댑니다.
이도령의 마음으로 바라 본 청포머리감기
잔디가 파랗게 깔린 열린문화마당에서 청포물에 머리감기가 시연됩니다. 색깔 고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윤기 나는 머리채가 삼단같이 긴 여인들이 세숫대야에 담긴 청포물에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감습니다.
청포에 머리를 감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과 찰랑거리는 머릿결에서 춘향이를 훔쳐보던 이도령의 마음으로 단오절에 녹아있는 청포의 의미와 향을 귓불이 붉어지도록 음미합니다.
청포 머리감기 시연이 끝난 열린문화마당에서는 여원무가 이어집니다. 여원무는 자인 고을의 수호신이기도한 한장군이 왜구를 물리치기 위하여 여자로 가장하여 그의 누이와 함께 꽃관을 쓰고 춤을 추었다는 데서 유래하는 집단 춤입니다.
형형색색의 꽃관을 쓴 사람들이 화려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사람 키보다도 큰 꽃관을 쓰고 추는 춤사위에 한장군의 지략과 고을과 나라를 구하겠다는 애국심이 나풀댑니다.
▲ 무거운 물건을 여럿이 운반하는 목도 ⓒ 임윤수
관람석에는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들 계시지만 햇살에 실려 쏟아지는 더위는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색깔 진한 계정숲, 마음까지 청량해지는 원초적 공간
행사장에서 몇 걸음만 걸어 나가면 숲이고 그늘입니다. 돗자리 하나 깔고 벌렁 드러누우면 도톰하게 깔린 엽토(葉土)가 푹신푹신 한 요되고, 싱싱한 나무그늘이 홑이불 되어 덮어 줄 색깔진한 숲입니다. 건강에 좋다는 피톤치드가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시커멓게 멍든 허파조차 파랗게 물들일 것 같은 청청한 공기가 남실댑니다.
행사장 주변과 숲길은 북적대는 인파에 발걸음은 물론 눈길조차 답답했지만 몇 걸음 걸으면 들어가는 숲 그늘을 만납니다. 그곳은 속세의 경계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듯 허허롭기까지 하니 절로 몸이 끌리고 마음이 청량해지는 원초적 공간입니다.
▲ 계정들노래 ⓒ 임윤수
국밥 한 그릇으로 시장기를 달래고, 담배라도 피우듯 가슴 뻑적지근해지도록 숲 내움을 깊이까지 들이마시다 보니 계정 들소리 공연이 이어집니다. 꽹과리는 깽깨갱 거리고, 북은 둥둥둥 거리며 각각의 소리를 내지만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루니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농악이 됩니다.
마음까지 촉촉하게 적시는 들소리 공연, 노동요
노릇노릇한 삼베 바지저고리를 입은 농부들이 들일을 시연하고, 집단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목도를 시연하며 노동요를 불러줍니다. 배가 고프면 물을 마시고, 허기가 지면 허리띠를 졸라맸을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을 내 할아버지 세대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 옵니다.
도리깨질로 보리타작을 할 때는 꽁보리밥과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머리에 어른거립니다. 무거운 나무토막에 줄을 매 여럿이 들어 올렸다 내리치며 터를 다지는 달구질, 가래질, 모내기 등 어느 것 하나 요즘에는 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그러나 불과 40여 년전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생활이며 필자의 아버지가 살던 모습이기에 피어오르는 감정으로 마음이 촉촉해집니다.
▲ 자인단오굿 ⓒ 임윤수
▲ 팔광대 ⓒ 임윤수
들소리 공연이 끝나는 가 했더니 어느새 숲으로 들어가 어정거리고 있습니다. 더위를 피하거나 앉을 자리가 필요해 들어온 게 아닙니다. 숲이 좋으니 촉촉해진 마음이 기대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시중당에서는 한 시간 전, 들소리 공연과 같은 시간에 시작된 자인단오굿이 한참입니다. 할머니 무녀가 굿을 합니다. 알록달록한 무녀복을 입었고 고깔도 썼습니다. 보통 할머니라면 어림하기 힘들 정도로 힘차게 겅중겅중 걷기도 하고, 팔짝팔짝 뛰기도 합니다. 훠이훠이 휘젓는 춤사위에 힘이 넘칩니다. 산신제를 지내고, 칠성제도 지냅니다.
오방색 줄을 늘여 매고, 차광막을 친 시중당 앞마당에도 사람들로 빼곡합니다. 무녀할머니가 해주는 덕담에 좋아들 합니다. 액운, 우환, 삼재 등 좋지 않았던 일들은 소멸되고, 막혔던 뭔가가 뻥 뚫어지기를 바라는 지극한 마음이 간절한 눈빛으로 드러납니다. 가정의 화목과 식구들의 건강, 사업번창과 만사형통을 기원하는 애절한 기도가 두 손을 가슴에 모으는 합장으로 표현됩니다.
▲ 전통상여행렬 ⓒ 임윤수
이런저런 체험장을 기웃거리고, 여기저기서 펼쳐지고 있는 여러 공연들을 찔끔거리듯 돌아보다 보니 단오제 둘째 날 행사를 갈무리 할 전통 상여행렬이 시연됩니다.
주자가례에 따른 전통 상여행렬 시연
경산자인단오제에서는 주자가례에 따른 전통 상여행렬 전 과정이 시연되었습니다. 미리 꾸며 놓거나 조립된 상여로 시연을 하는 게 아니라 300년쯤은 됐을 거라는 목상여를 차에 싣고 와 행사장에서 직접 조립하고 꾸렸습니다.
목상여에 수식되는 300년 쯤이라는 문구가 세월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상여의 규모는 5명씩 4줄, 20명이 메는 크기였으며, 꼭두가 화려하지 않아 단촐 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상여가 준비되는 동안에는 선소리꾼이 선소리를 넣으면 관람객들이 후렴을 넣어보는 별다른 상여소리 체험도 기회로 주어졌습니다. 경산상여소리뿐 아니라 경기도 시흥에서 온 선소리꾼의 선소리도 들을 수 있었으니 한 자리에서 두 지방의 상여소리를 동시에 들은 셈 입니다.
▲ 전통상여행렬 ⓒ 임윤수
상여가 꾸며지는 동안 상여나 구성품들이 갖는 의미, 상여 행렬 순서 등이 안내방송을 통해 세세하게 안내되고 있으니 전통 상여행렬에 대한 학습기회도 충분하게 주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전통상여 시연이 경산이나 자인에 살고 있는 현주민들에 의해 시연되지 못하고, 온전히 대구 공산농요 보유자인 송문창옹 일행에 의해 시연됐다는 것입니다.
송문창옹이 선소리를 넣고 그 일행이 상여꾼이 되어 후렴을 넣고, 달구질을 하였으니 인적 구성으로만 봐서는 경산 상여행렬이라기 보다는 대구 상여행렬이라고 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요령을 흔들며 선소리꾼이 넣는 구구절절한 선소리는 상두꾼들이 받는 후렴을 빌어 통곡이 되고 울림이 되어 계정숲으로 스며들고, 사람들 가슴으로 녹아듭니다. 한두 가지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성껏 마련해서 제대로 차린 전통이 상여행렬로 시연되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 흙을 다지는 달구질 광경 ⓒ 임윤수
자인단오제에서 시연된 전통 상여행렬은 상여를 꾸미고, 관을 싣고, 발인제를 지내는 모습은 물론 상여가 장지로 가는 구행, 광중에 관을 넣는 하관과 현훈을 폐백드리는 과정, 명정을 덮고 취토를 하는 과정이 시연되었습니다.
이어서 흙을 다지는 달구질, 부장품과 혼백, 지석을 매장하는 모습, 묘를 다 만들고 지내는 평토제와 신주를 만드는 신주제, 신주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반곡 과정까지를 모두 볼 수 있었으니 계정숲에서 시연된 상여행렬은 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전통 상여행렬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배는 부르게 하지만 맛은 없는 음식이 있듯, 차려진 것은 많으나 별로 느낄게 없는 축제도 많습니다. 좋은 숲이 무대가 되고, 전통과 갖은 행사가 격식을 갖춰 차려진 자인단오제는 잘 보고, 잘 듣고, 잘 먹고, 잘 체험하고, 느낌까지 맛난 흡족한 축제의장, 학습의 장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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