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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천하도랑, 나는 자네에겐 '넘사벽'일세"

[연재소설 대권무림 8] 에피소드 1. 대한무림제국 황제등극 야사약전(野史略傳)

등록|2011.06.09 14:11 수정|2011.07.13 10:22
조선 중세기 태양신인 세종대왕 황제와 '죽음까지도 알리지 말라'던,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도 존경하는 우리의 순신충무공은 우리 무림제국의 자랑이다. 그 자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근현대 로스케에서 중근열사공의 장렬한 최후 이후, 조선의 명운을 걸머진 김구천하도랑의 슬픔은 하늘을 가르고 바다로 침몰해 들어가는 거북선(龜船)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백의종군 순신충무공의 심정과 같은 것이었다.

김구천하도랑이 영어를 줄줄 암송하며 만들었다는 '설산권'의 일인자 덕수교령침방(장덕수)을 수하의 한 사람인 석황정랑(김석황)이 사주한 광옥처결자(박광옥)로 하여금 암살하였다는 의심을 받은 사건이 그 무렵 발생했다.

'체포사주공권'을 미군정청 산하 포도청수도경비견의 주공인 '택상경청심좌'로부터 손에 쥐어든 김구천하도랑의 눈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암흑 이전, 명성황후를 시해한 닌자왜소공국의 검술자를 때려죽일 때보다 더 진한 붉은 피가 흘렀다. 김구천하도랑은 즉시 서대문의 경교장을 떠나 승만박사공이 머물고 있는 이화장으로 향했다.

김구천하도랑과 승만박사공은 한 살 차이로 호형호제하는 무림의 혈맹주 사이였다. 비록 추구하는 이상과 무술을 전수하는 비법이 달라(현실내공의 박사공과 이상내공의 천하도랑의 대립) 대립이 표면화가 심한 듯보였으나, 천하도랑은 많이 배우고 젠틀한 박사공에게 수를 꺾어가며 형님으로 존경하고 있었고, 박사공은 천하도랑의 기개와 올곧은 민족사관에 항상 맘이 쏠려 현대사의 두 거물도인들은 형님 아우님으로 서로 존숭하는 사이였다.

"박사공, 썽님. 진짜 이러시깁니까? 이 천하도랑의 내공이 코쟁이들의 으름장에 한낱 장난감 병정이 되어야만 오나전(완전히) 쩌시겠어요(기막혀 하시겠어요)?"
"아니, 천하도랑 동상. 그 말이 대체 뭥미(뭔가요)?"
"노깝(깝치지 마라)하라 하세요. 우리 도방의 내제자들이 혈기 방장하여 저지른 일. 박사공 썽님이 한마디만 하면 코쟁이들이 봐줄 거 아닙니까? 젤라(제발) 도와주시라요."

천하의 '백범비결록'의 저자이자 근대화 이후 일제 강점기 최대 국외 임시도방의 맹주로 한반도 무림제국의 존경종결자인 김구천하도랑이 덕수교령침방을 암살한 한독당우방 출신 무림검객들의 배후로 미군정신탁청의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미군정신탁청에 절대 막후 실력을 갖고 있는 '영어내공편검'과 '귀공자외교내공권'을 적절히 사용, 구사한다는 이유로 호의호식하며 조선무림국의 독립을 외교했던 박사공에 비해, 소림사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삼순구식하며 구걸정부를 꾸린 자신의 초라했음에 대한 분노도 다 풀지 못한 채 부탁하는, 정줄놓(정신줄도 놔야 하는) 자리였다.

"헤이, 동상.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일세. 허나 자네는 내가 생각하는 한 열라 짱(매우 최고)이야. 가서 증언 잘 해봐. 자, 비서 우리 고고씽(가자)."

승만박사공이 그 특유의 낮고 음울한 '떨리는목소리권'으로 전혀 슬프지도 않고, 고소하다는 듯이 말하자 천하도랑의 화가 아오안(열 받아서 안중에도 없게) 되었다.

"박사공 썽님.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우리가 중국닌민무국에서 사방치기, 땅따먹기하고, 자치기하던 기억을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는 거죠."

승만박사공은 남한만의 단독무림제국을 세우기 위한 협상을 위해 미군정신탁청으로 향하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김구천하도랑을 바라봤다.

"어이, 동상. 현실을 직시하게. 자네가 노력한다 해도 저 북조선인민공화방의 맹주 일성광분자는 결국 쏘련공산무국의 꼭두각시국인 공산주의제국을 세울 것이고, 나는 그에 맞서 민주주의 무림제국인 대한무림제국을 세울 것이네.

현시창(현실은 시궁창)이고 미군정이 있는 한 나는 자네에겐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일세. 글구, 덕수교령침방 암살의 배후가 정녕 자네가 아니었던가? 나는 저의 의심스럽다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져. 자, 나는 이만 바빠서."

졸지에 이화장에서 여병추(여기 병신 하나 추가요)가 된 우리민족 최고의 선생인 김구천하도랑이 서대문 경교장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치 가시면류관을 쓰고 골고다로 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보다 더 벅찬 걸음걸이였다.

하얗게 내리는 눈은 연로한 노(老) 독립운동무림맹주의 하얗게 세어가는 눈썹과 머리를 덮었고, 아랫도리를 헤집고 들어오는 한기는 권법으로 단련된 무인의 기(氣)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김구천하도랑은 그때 다음과 같은 단어를 뼛속 깊이 새겼다.

"나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38선을 베고 죽을 것이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려는 천하도랑을 비서인 성우공자(김선우)가 재빨리 부축했다.

"도방 어른, 기력을 찾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두 동강 난 무림대국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습니다. 통일된 나라의 문지기가 되시겠다는 신념을 잊으셨습니까?"
"나는 '백범비결록'의 천하도랑이다. 한반도 천하무국은 두 동강 나지 않는다."

결국 1948년 3월 14일, 김구천하도랑은 전날 밤부터 내리는 가랑비와 먼지잼을 잔뜩 맞고서 덕수교령침방 암살 사건의 배후로, 증인신문이라는 무림맹주로서의 절대치욕을 맛보게 된다.

근자감(근거도 없는 자신감)이 상실된 천하도랑의 선택은 결심한 대로 북조선인민공화방의 일성광분자가 제안한 남북한 무림계를 통일하자는 제의인 '남북무림연석회의' 참가로 이어지고, 500여 명 내 제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서인 선우공자와 아들인 신출지장군(김신)을 대동하고 임진나루를 건너 38선을 넘었다. 38선을 넘으며 천하도랑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뒷사람의 길이 될 것이다."
"통일이 없으면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조선무림계의 독립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죽을 각오로 넘어간 무림연석회담에서 천하도랑은 무림계의 통일은커녕 회담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쏘련광신공산무국과 일성광분자에게 이용만 당하고서는 평양골의 민주공자인 만식민주본방(조만식)마저 데려오지 못한 채 빈손으로 허탈함만을 가득 안고서 남한으로 내려온다.

그해 5월 10일, 예정대로 남한만의 단독 무림정부 탄생을 위한 제헌무림의원 선거가 치러졌고, 8월 15일 승만박사공이 거의 압도적인 표차로 김구천하도랑을 누르고 초대황제로 등극하며 정부가 수립되니, 역사적인 대한무림제국의 탄생이 거기 있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북조선인민공화방에서도 8월 25일 선거가 치러지고 9월 9일에 새로운 공산 정부를 탄생시키니, 이 공산무림제국이 대한무림제국의 동전의 양면이자 모순의 극치, 필생의 무도대결국으로 서로 앙숙이 되는 '북조선인민무술공화국'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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