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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가 추진하는 과목 선택제 수업의 문제점

등록|2011.06.09 09:00 수정|2011.06.13 17:45
중등교육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MB정부에 들어와 도입 혹은 강화되는 교육정책들이 과연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을까? 이미 현 정부의 정책들이 경쟁 잠재력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견해는 현장의 통찰력있는 교사들간에 널리 퍼져있는 하나의 상식이다. 즉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책은 경쟁력 저하의 계기로 작용하는 역설적 상황이 한창 진행 중이다.

성취도 평가(일제고사), 확대된 교사초빙제, 수준별 이동수업, 방과후 수업 확대, EBS 강의와 수능연계, 학기별 집중이수제, 과목선택제 수업, 각종 중점학교 및 시범학교, 잠재성장형 학교 지정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것의 취지를 공감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그러나 교과부 장관이 현실의 미묘한 상황을 읽지 못하거나 읽으려 하지 않으면서 시행하는 많은 정책들로 인해 학교현장은 여전히 고비용저효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중에서 학기중 혹은 방학중의 과목 선택제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교사가 작성해야 하는 방과후 보충수업 행정서류우리나라 교사들은 이러한 행정업무로부터 벗어나길 고대하고 있다. ⓒ 신남호


첫째, 정규수업을 기존대로 하고 방과후 보충수업에서 교과목을 선택제로 할 경우가 있는데 이 때 교재를 탐구할 시간이 더욱 부족하다. 예컨대 국어과목을 현대문학, 비문학, 고전문학, 작문, 문제풀이 수업 등으로 나눠서 선택제 수업을 한다면 정규수업 교재 이외에 보충수업 교재를 또 탐구해야 하는 부담이 추가된다.아울러 선택하지 않는 학생들이 중간, 기말고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교사들이 행정적 업무처리 및 학급운영까지 도맡아 하기 때문에 교재탐구에 전폭적인 투자를 할 수 없는 환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장이 문제학생을 먼저 상담하는 것도 아니요, 전문 상담교사가 충분히 확보되어 상담을 요청할 수 있는 풍토도 아니므로 담임교사의 하루 일상은 늘 쫓기고 있다.

둘째, 선택제 이동수업을 할 교과교실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 못하다. 그래서 기존의 배정된 교실을 특정과목의 교과교실로 쓰게 되는데, 그러면 학급지도와 교과교실의 기능이 중첩되어 이동수업을 위한 수업자료를 충분히 구비하고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셋째, 학생들이 이동하여 수업을 받는 사이에 빈 시간과 빈 공간이 없다. 즉 대학의 수업시간표와 같이 중간 중간에 빈 시간이 있어서 학생들이 수업준비를 할 수 있어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 불가피하게 이동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이 머물며 책을 보거나 휴식을 취할 공간이 없다. 이 공간에는 과제물 처리를 위한 컴퓨터, 프린터기, 복사기 등이 확보되어야 하며 휴게실도 있어야 한다.

과목선택제와 성격이 유사한 것으로 교과교실제가 있다. 이동수업을 한다는 것이 이 두 사안의 공통점이다. 2002년 인천의 한 고교에서 1년간 전과목 이동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매 수업시간이 끝나고 전교생이 다른 교실로 이동을 한다. 좁은 복도를 통해 이동하면서 선후배간에 어깨가 부딪혀 짜증스럽고 후배들은 긴장을 한다. 수업자료나 필기구를 자주 분실하고 담임교사들은 담당학급 학생들이 어느 교실에 가있는지 찾기가 어렵다.

거의 종일 1200여명의 학생들이 이동하는 데서 실내에 먼지가 폭증한다. 학생들의 사물함이 1층에 없고 본 교실에 있어 못 챙긴 수업자료를 중간에 가지러 갈 수 도 없다. 왜냐하면 본 교실이 다른 과목의 교과교실제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과 교사들의 비등한 반대에 부딪쳐 교장은 1년만에 이동수업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넷째, 과목 선택제 수업을 기획, 시간표 작성, 시간표 변경, 수업료 변경 징수 계획 등을 결재내는 작업이 여간 번거롭지 않은데 이를 맡아줄 행정보조원이 없다. 그래서 교사가 수업, 수업준비, 학급지도를 병행하면서 선택제 수업을 기획하고 결재내야 한다. 전과목을 선택제로 하는 경우에는 업무는 배가된다.

지금도 방과후 보충수업 담당교사는 학기중 그리고 방학중 보충수업을 모두 합하여 1년에 4~5번 계획서를 짜서 결재내야 한다. 교사들의 업무를 맡아줄 직원을 채용한 학교는 한국에서 서울의 한가람고 등 극소수가 있을 뿐이다. 교사들의 행정업무를 떼어가도록 행정보조원을 대폭 투입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가?

다섯째, 학생들에 의해 교과목을 선택하도록 맡길 때 한 학교에서 선택되지 않는 과목의 해당교사에 대한 후속조처가 없다. 이들 교사들에게 인근학교와 연계하여 자신들의 과목을 가르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없다.

그러면 희망학생이 거의 없는 과목 교사 즉 나이 든 교사, 학생들을 좀 엄격하게 대하는 교사, 입시보다는 교양습득에 비중을 두는 교사 등은 배제되기 쉽다. 선택되지 않는 교사들은 교사로서의 능력과 관련하여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의심할 수 있다. 나아가 이들은 교원평가 및 성과급에서 불이익을 받음으로써 현 경쟁일변도의 교육환경에서 퇴출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실력있는 교사들이 배제될 개연성을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교육경쟁력의 상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근 인터넷 업체 '구글(Google)'에서는 전 세계 구글지사를 통해 5천명의 인문학 전공자만을 뽑는다고 했다. 상상력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경쟁 잠재력을 가진 인재가 우리와 같은 입시 및 시험위주의 교육풍토에서는 배출되기 어렵다는 것은 아주 오랜 우리의 교육적 병폐와 만성적 질환이다.

여섯째, 과목선택 학생들의 인원이 초과될 때 불가피하게 남는 학생들을 이들이 원치않는 과목에 강제배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과목선택제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것이다. 희망하는 학생들의 수업담당 교사가 부족할 경우 계약제 강사에게 맡기기도 하지만 급료가 적으면 오기 어렵다. 동일과목의 학원강사에게 맡길 경우 이는 공교육비가 사교육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문제를 수반한다. 이는 미국에서 바우처제도가 악용되는 사례와 유사한 것이다.

인원이 초과되어 성적순으로 탈락시키면 차별로 인식되며, 선착순으로 배정하면 굼뜨면서 실력있는 학생들이 배움의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어느 고교에서는 학생과 교사 모두 고통을 호소하고 단지 실적을 내서 학교평가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자 하는 교장-교감만 교과목선택제를 칭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곱째, 전과목 선택제 이동수업을 하면 담임교사가 학생들의 지각생, 중간에 도망치는 학생들을 파악하기 어렵다. 예컨대 아침 8:30분에 담임배정 교실에 모여 조회를 하고 8:45분에 수학교실로 이동하였다고 할 때, 9:05분에 수학교실에 지각한 학생을 파악하기 어렵다. 1~5교시까지 여름 보충수업을 할 때 어느 학생이 중간의 2교시 수학시간에 도망갔다가 종례시간에 나타난다고 할 때도 수학교사가 출석을 빼놓지 않고 부르기 전에는 파악하기 어렵다.

교과선택제나 교과교실제 시행에 앞서 학급당 학생수를 15~20명 정도로 대폭 줄이는 것, 학교규모를 줄이는 것, 담임교사제를 폐지하고 진학상담 교사 및 생활상담 교사 배치하는 것 등이 선결과제다. 담임교사제를 유지하려면 행정보조원을 대거 투입하여 교사들이 독서와 상담을 할 수 있게 해야 학원강사와 비교되는 일이 없어지고 학교와 교사가 본업에 충실하게 되어 학생들은 내실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책시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책시행의 조건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정부가 교육문제의 주요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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