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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아빠가 막아줄게...광화문에서 보자"

[힘내라, 대학생 ②] 386 세대, '아빠노릇' 하러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로

등록|2011.06.10 09:35 수정|2011.06.10 15:15

▲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정당연설회에서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반값등록금과 청년실업 해결 등을 촉구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 유성호


1987년 6·10항쟁 당시 나는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해 전두환의 4·3 호헌선언으로 촉발된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여러 가지 사건이 이어지면서 5월을 넘어 6월로 전국적인 시위가 이어졌다. 6월 9일 연세대학교에서는 6·10 출정식이 열렸고, 시위도중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은 6·10항쟁을 들불처럼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결국,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6·29선언을 하게 함으로 국민에게 백기를 들었다. 6·29 선언은 '속이구 선언'이었다는 것이 역사적인 평가지만, 그렇게 그해 6월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장식되었다.

그해 5월, 나는 교생실습 중이었다. 교생실습 첫날, '삭발투쟁'의 하나로 머리를 박박 밀고 교생실습을 나갔는데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교장은 "대학생 선배들을 봐라, 이렇게 깔끔하게 머리를 자르고 다니지 않냐?"며, 두발에 대한 일장 설교를 학생들에게 퍼부었다. 그날 저녁, 신문에는 대문짝만 하게 삭발투쟁 기사가 났고, 다음날 아침 교장은 얼굴빛이 변해서 학생들에게 시국발언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교생실습이 끝나면 시위에 참석했다. 6·29선언이 있기 전까지 백골단을 위시해서 전경들의 시위진압은 그야말로 폭력적이었다. 나는 1986년 건국대 애학투 사건과 연루되어 있었기에, 그 당시에는 잡히는 끝장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거리에 나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거리로 나와 친구들을 내몰았다.

그때,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면서 대학을 보낼 수 있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그러나 시대는 도서관에 앉아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벌써 24년 전 이야기다.

1988년 대학교 졸업 뒤 성실하게 살았지만... '천만 원 등록금'에 허리 휘청

공부중집회불허에 문화집회형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전하는 대학생들 ⓒ 김민수


그렇게 졸업을 하고, 결혼을 해서 직장을 갖고 아이들을 낳았다. 셋째를 낳고 얼마 안 되어 IMF가 터졌고, 설상가상으로 나는 직장에서도 퇴출(?) 되었다. 당시 아버지가 보증을 서주었던 사람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가히 적지 않은 돈을 물어줘야 했다. 퇴직금까지 다 디밀었지만, 그것을 막는 것은 역부족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몇 년에 거쳐 어찌어찌 해결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중산층이라 자부하며 세 자녀의 아버지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중산층이라는 자의식은 최근 2~3년 사이에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녀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이 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지난해 큰아이가 대학에 들어갔다. 개인적으로 대학생 시절을 거의 길거리에서 보냈기에 우리 아이들만큼은 공부에만 전념하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부모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다. 나는 아빠로서 우리 아이들의 황금과도 같은 청춘의 시간을 시급 4000여 원과 맞바꾸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큰아이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며, 논술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칠 도서를 미리 읽고, 토론주제들을 정하고, 문제를 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한 권에 2만 원짜리 아르바이트다. 그러나 학교공부를 하면서 한 달에 4권을 읽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문제는 둘째도 대학생이 되는 내년부터다. 지금 같은 등록금 수준이라면 가계부채 없이 아이들 대학교육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 다니는 직장이 어려워 아직은 학자금이 나오질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둘째도 큰아이처럼 사립대학교에 들어간다면, 한 학기 등록금이 대략 500만 원 선이 될 것이다. 두 아이를 합쳐 한 학기에 1000만 원, 그런데 어디 대학에 다니는 것이 등록금만 해결된다고 될 일인가.

"걱정하지 마라, 아빠가 등록금은 해결하마. 그러니까 아빠 아니겠냐? 나는, 아빠다!"

큰소리는 쳤지만, 로또가 터진다든지 아니면 하는 일에 대박이 난다든지, 첫째가 전액 장학금을 받는다든지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아직도 불투명하다.

아이들만의 싸움 아닌 '반값등록금 시위'... 아빠 노릇 제대로 해서 쟁취하자

반값등록금 집회좁은 인도에서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집회결사의 자유도 없는 나라인가? ⓒ 김민수


그런데 최근 야권도 아닌 여권에서 반값등록금 이야기가 나왔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대중영합주의적인 발언이겠거니 생각을 했다가, '아, 말 잘했다. 잊어버렸던 MB의 선거공약을 떠올리게 해줘서 고맙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진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실행집회와 '날라리' 선배들의 가세, 보수언론까지 대학등록금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보면서 이번에야 말로 반값등록금을 실현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반값등록금 집회에 참석해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시간과 몸이 허락하는 한 광화문 일대를 서성이고 있다. 내 딸 또래의 아이들, 그 아이들이 이렇게 컸구나 싶고, 내가 이렇게 늙었구나 싶기도 했다. 이 싸움은 그 아이들의 몫만이 아니구나, 이 싸움에서 이겨야 우리집 살림살이가 펼 수 있는 거구나 생각하니 동참을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아빠 노릇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반값등록금을 쟁취해야겠다는 심정이다. 만일, 반값등록금을 포퓰리즘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누구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반응은 내가 대학생 시절이던 1980년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불법집회라고 규정하고, 원천봉쇄 하는 것이다. 혹 경찰들은 그런 방법들을 통해 시위대의 폭력을 조장하고, 폭력집회라고 몰아붙이는 절차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부모된 처지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줄 것이고, 만에 하나 경찰이 학생들을 연행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다면 자식같은 아이들을 지킬 준비가 돼 있다.

내 딸이 잡혀가는데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내 딸의 요구가 정당한데 그 정당한 요구를 방해하는 세력과는 싸울 수밖에 없다. 내 딸의 요구가 관철되어야 나는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으니 힘을 더할 수밖에 없다.

오래 전부터 2주에 한 번씩 책을 읽고 토론하는 친구들과 6월 10일 광화문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다. 결혼을 빨리 한 친구는 이미 대학을 졸업한 자녀도 있지만, 친구들 대부분이 대학생 자녀가 있거나 앞으로 수년 내에 대학생이 될 자녀가 있다. 우리들은 서로 부모된 도리로 학생들, 아니 우리의 아들, 딸들을 지켜주자고 다짐했다. 벌써, 우리 나이가 그렇게 되었구나 싶은 생각을 하면서 6월 항쟁 당시 잡혀가는 학생들을 구해내고, 먹을 것을 전해주던 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모른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힘이 되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대학을 다닐 때 시위를 하다 백골단과 마주치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잡히는 순간 경찰에게 온몸을 구타당하면서 몸속에 남아있는 음식물 찌꺼기들을 죄다 토해내고, 악만 남아 소리를 지르며 닭장 차에 실려갔던 청춘, 그런 청춘은 우리 시대로 끝내야 한다. 그런 일이 더 있어서는 안 되기에 아빠들이 광화문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다.

386 세대들이여, 6월 10일 광화문으로 모이자

촛불간절한 소망, 꼭 이뤄지길 ⓒ 김민수


어떤 이들은 '반값등록금' 요구가 정치투쟁화되고 있다고 비판을 하지만, 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니 당연히 그 요구의 끝에는 정치권의 반성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우리 삶을 둘러싼 문제들을 칼로 자르듯이 구분하려는 시도나 주장은 기득권, 권력에 아부하는 이들의 편협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제법 돈을 버는 측이라 생각한 오세훈 시장도 아이들 대학 보낼 때 허리가 휘는 줄 알았다고 했던가? 그런데 반값등록금에는 반대한다고 하니 그가 과연 서울시장으로서의 주체성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자기보다도 열악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야 하는 대다수의 서울시민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감히 그런 망발은 하지 않을 터이다.

이젠 우리가 우리의 아들, 딸들을 보호해줘야 할 때가 되었다. 그들의 주장이 관철되어야 우리도 살 수 있으니 결국 그 일은 나를 보호하는 일이 될 터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하는 일이 될 터이다. 이 시대, "나는 아빠다!"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들, 딸들아 아빠부대, 엄마부대가 너희를 지켜줄게. 아, 날라리 선배부대도 있구나.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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