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안철수 광고'에 속지 마세요
[서평] 자본주의의 청춘 착취 고발서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공익광고 '꿈꿔라 청춘아' ⓒ 한국방송광고공사
'박지성은 평발이었다.' '강수진은 연습벌레였다.' '안철수는 평범한 의대생이었다.' 강렬한 사운드, 비보이의 역동적인 춤, 다양한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차례로 등장하고 "네 꿈을 펼쳐"라는 외침이 들린다. "꿈꿔라! 청춘아, 힘내라! 청춘아, 너희의 꿈을 활짝 펼쳐라!" 노래가 울려 퍼진다. '공익광고협의회' 일곱 글자를 보며 자문한다. '나는 뭐하고 있는 거지?'
'공익광고협의회' 광고는 젊은이의 꿈을 강조하지만 국가 스스로는 청년실업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낸다. 모든 젊은이들은 의지에 따라 무보수 노동의 배고픈 시간을 보내고 나면 유명한 예술가, '대박'을 터뜨릴 사장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외환 위기와, 무한 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며 "세계화를 맞아 진취적인 도전 정신으로 가득 찬 인재가 필요하다"는 명령이 더 공고해졌다고 말한다. 곧 실업은 전적으로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겨지면서 자신의 열정과 능력이 부족해 취업을 못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삼십 대를 겨냥한 자기계발서의 인기는 우연이 아니다.
지난 3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은 60%였다. 더 심각한 것은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비율이 54.7%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는 것만이 지상과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스펙' 쌓기에 목숨을 거는 현실은 당연한 결과다. 반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자기 계발은 스펙 쌓기와 다른 것을 요구한다.
"근로계약서 써본 적 없어요"...열정노동자의 현실
바로 '열정 노동'이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말은 이전보다 더한 성실함과 근면함을 요구했고 열악한 조건도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저자는 "혹여 불만이라도 토로하는 사람은, 이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에 대하여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고 말한다.
'열정 노동'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 이 일에 열정이 있으며 →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므로 → 나에겐 노동자의 권리가 필요없다'로 진술할 수 있다. '네가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라는 속삭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해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노력은 열정이란 이름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지워내고 착취만 남은 기형적인 노동구조를 양산했다.
<무릎팍 도사>나 <강심장> 같은 토크쇼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회상하며 고생한 경험을 털어놓는다. 눈물을 쏟는 가운데 사회자는 '열정을 불살랐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훈훈한 마무리로 열정은 치켜세운다. 열정은 어느새 젊은이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가 되었다. 최고에 올라선 다음에도, 젊은이에게 필요한 건 더 강도 높은 열정이다.
▲ 한윤형, 최태섭, 김정근의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표지. ⓒ 웅진지식하우스
"근로계약서 써본 적 없어요. 사장은 돈 안 받고도 일하는 사람이 많다고 얘기해요. 그래서 최저임금도 안 주면서 전혀 미안해하지 않더라고요. 이 업계에서는 항상 경력이 있어야 다른 곳에서 인정해주니 돈보다는 경력을 우선으로 생각하라고 하죠."
저자들은 시민단체나 진보정당 상근자 등 '돈 벌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는 명분 아래 일하는 젊은이들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고 진단한다. 임금 체불은 희생으로 감내하고, 임금을 지급받는 노동자와 투쟁하는 활동가를 대립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 그 예이다.
여가조차 편하게 보낼 수 없다. 새롭고 활동적인 여가활동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원들은 주말에 부장을 따라 등산하고, 구직자는 대기업 홍보도우미로 소속돼 봉사활동을 한다.
실패는 '열정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열정적으로 일한 젊은이는 성공할까?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일로 선택한 결과는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됐다. 벤처의 꿈은 좌절됐고 노동강도는 한층 높아졌으며 처우는 형편없는 현실을 감내해야 했다. 국가는 좋아서 선택한 일이니까 이 정도는 견뎌야 한다며 극소수의 성공스토리를 펼쳐놓는다. 책임을 회피하는 국가와 노동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탓에 젊은이들은 일을 해도 점점 더 가난해졌다.
저자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를 주목했다. 신자유주의 개혁이 진행된 당시, 정부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만이 진짜 지식인'이라고 호도했다. '영화 한 편이 자동차 몇 천 대보다 낫다'는 논리로 산업구조를 대폭 재편하고 동시에 고용 안정성을 무너뜨렸다. 이 과정에서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를 경영하라'는 식의 탈노동자화가 장려되었다. '자기 안에서 우러나는 열정을 통해 노동자 개인의 생산력을 증대시키자'는 전략이다.
올해 초 생활고와 지병으로 요절한 시나리오작가 고 최고은은 시나리오 작업을 다섯 번이나 계약했지만 한 번도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은 자신의 현실에 대해 '5타수 무안타'라는 말로 자조했다.
젊은이들은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며 사회에 첫 발을 디딘다. 저자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번지르르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하며 실패가 단지 스스로의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동시에 노동의 환상을 통해 '열정 노동'을 고착화하는 구조를 비판하며, 이 구조가 계속 유지될 수 없음을 경고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