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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열두 살 소년이던 시절이 있었다

[리뷰] 로버트 매캐먼 <소년시대>

등록|2011.06.10 14:07 수정|2011.06.10 14:07

<소년시대>겉표지 ⓒ 시공사



제목을 언뜻 보고 '소녀시대'인 줄 알았다. 정말로 그랬다면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열었을 테지만 다시 보니까 '소년시대'다. 호기심과 함께 떠오르는 질문, 웬 소년시대?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추억을 소중하게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일상에 치여서 아니면 앞만 보고 달려가기 때문에 과거를 돌아볼 틈이 없어서 등.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은 과거를 잊고 살아간다. <소년시대>에 등장하는 한 노파는 "누구나 자기가 과거에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한다. 과거를 잃어버린 사람은 미래 역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여기저기에 박물관을 세우는 것도 같이 이유일 것이다. 과거를 묻어버리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과거의 어떤 사건이 자신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소년시대>의 주인공인 코리 제이 매켄슨도 어린 시절에 엄청난 사건을 경험한다. 코리는 미국 앨라배마 주 남쪽에 있는 제퍼 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열두 살 소년이다. 작품의 배경은 1964년,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고 집집마다 전화가 놓여있지도 않던 시절이다. 제퍼의 인구는 고작 1500명이다.

코리는 제퍼가 마법의 땅이라고 믿는다. 유령이 풀 덮인 묘지에서 빠져나와 달빛 속을 돌아다니고, 강 밑바닥에는 정체모를 괴물이 살고 있으며 깊은 호수는 커다란 비밀을 숨기고 있다고 믿는다. 제퍼에는 백여섯 살이나 된 흑인여왕도 있고 <오케이 목장의 결투>의 주인공인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의 목숨을 구해준 총잡이도 있다. 재미있는 소설의 무대가 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것이다.

이런 마을에서 코리는 우유배달을 하는 아버지 톰의 일을 도와주고 학교친구들과 어울려 야구를 하면서 하루하루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평온한 일상을 파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직도 찬바람이 불고있는 3월 중순, 코리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톰의 우유배달을 돕는다.

톰과 코리가 트럭을 타고 동네를 돌면서 우유와 치즈 등을 주문한 집에 배달하는 도중이었다. 트럭이 호숫가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한 대의 승용차가 길 옆 숲에서 튀어나오더니 트럭 앞을 지나쳐서 호수에 빠져버린 것이다. 톰은 운전자를 구하기 위해 호수에 뛰어들고 승용차 안에서 운전석에 앉아 죽어있는 시체를 보게 된다.

이 사건은 조용하던 마을과 코리가족의 삶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는다. 피해자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지만 살인자는 이 마을사람이 분명하다. 톰과 코리는 이 마을에 살인자가 있다는 사실에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누가 무슨 이유로 잔인한 살인사건을 저질렀을까?

사건 속에서 성장하는 소년

도입부에서 수수께끼의 살인사건이 발생하지만, <소년시대>는 살인사건 수사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작은 마을의 일상과 그 안에서 성장해가는 12살 소년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더 많은 비중을 둔다. 실제로 3월에 발생한 살인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그 다음해 1월이다.

계절이 한 바퀴 도는 동안 코리와 그의 친구들에게도 여러가지 일이 생긴다. 부활절에는 교회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코리는 마법을 가지고 있는 듯한 자전거를 한 대 얻는다. 코리와 그의 친구들은 동네의 불량학생들에게 신나게 얻어 터지기도 하고, 야구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전학생을 만나기도 한다. 그 와중에도 코리는 머릿속에서 살인사건에 대한 단서를 이리저리 끼워 맞춰본다.

코리는 마법의 힘을 믿는다. 열두 살 소년에게 세상은 마법의 등불이고 그 정령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내다본다. 코리의 생각에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 마법을 가지고 태어난다. 다만 성장하면서, '철 좀 들어라'라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학교에서 매를 맞으면서 그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성인이 되면서 잃어버린 그 힘을 다시 되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들은 빨리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면 다시 아이로 돌아가길 원한다. <소년시대>는 마법이 난무하는 판타지도 아니고 치밀하게 사건을 추적하는 추리물도 아니다.

대신에 이 작품을 읽다보면 자신의 열두 살 시절을 한 번쯤은 뒤돌아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세상이 햇빛과 희망으로 가득차 보였던, 마법을 믿었던 열두 살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남자들은 자신이 나이를 먹어도 언제까지나 소년으로 남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소년시대> 1, 2. 로버트 매캐먼 지음 / 김지현 옮김. 시공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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