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다른 반 친구와 못 놀게 했죠" 선생님 알고 봤더니...

[학부모 참관수업기] 딸 아이 수업에서 배려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다

등록|2011.06.14 15:33 수정|2011.06.14 15:33

▲ 도원초 스카프반 김효근 선생님이 배려에 대한 학부모 참관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심명남


"다른반 아이들과 놀지 말게 했죠. 왜냐면 우리반 내에 친구들끼리 융화할 수 있는 꺼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이번 고비(같은 모둠 아이들끼리의 작은 마찰)를 못 넘길까봐 가슴이 조마조마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고비를 잘 넘겼습니다. 힘든 시기를 넘겼기 때문에 앞으로 1학기 끝날 때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힘들었지만 아니 뭐가 힘들었겠습니까마는 좀 힘든 척 했죠"


지날 10일 학부모 참관수업을 마친 선생님은 학부모들에게 이렇게 속내를 털어 놓았습니다. 홈피활동과 모둠반 학습, 책읽기와 독서활동, 지금까지의 교육과정과 학습방법을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합니다. 참관수업에 나온 학부모들의 맘을 단번에 사로잡는 그는 다름 아닌 여수도원초 6-8반 SCF(스카프)반 김효근 선생님입니다. SCF는 웃음(Smile),정리(Clean), 우정(Friend)을 뜻합니다.

김 교사는 엄친아 같은 젊은 스타일에 얼굴까지 잘 생겼습니다. 학부모들의 신뢰를 쌓이게 한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그의 노력이 뒤따랐습니다. 김 교사의 교육방식은 한마디로 모둠반 교육입니다. 스카프반은 28명의 학생들을 6개의 모둠으로 나누어 모둠학습을 운영합니다. 우수모둠에 뽑힌 아이들에겐 당근이 주어집니다. 그것은 선생님과 함께 다양한 볼거리와 놀거리가 있는 곳으로 떠나는 체험학습 시간. 지난 5월까지 여수시티투어, 곡성기차마을, 영화관, 볼링장, 광주 프로야구장을 다녀왔습니다.

"홈피에 글쓰기를 매일 하다 보니 우리아이의 글쓰기 실력이 늘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 우리 애가 야구 열성팬이 되었어요. 그런데 야구 때문에 공부를 안 해요."
"주말에 선생님이 아이들과 체험학습을 떠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엄마, 아빠들이 바빠서 하지 못하는 것을 선생님이 대신해주시는 것 같아요."

학부모 공개수업에 나온 부모님의 얘기입니다.

▲ 6학년 8반 김효근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학부모를 모시고 참관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심명남


김 교사는 6월에는 해수욕장에서 전년도 선배들과의 만남을 통해 공부에 대한 조언을 들려줄 예정입니다. 또한 여름방학 때는 3박4일 일정으로 서울로 우수모둠여행을 떠납니다. 아이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컬트쇼, M카운트다운, 뮤지컬 젊음의 행진, 인사동, 서울대, 이화여대, 대학로 등을 다니며 아이들의 견문을 넓혀 동기부여를 준다는 것.

요즘 각 학교마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학부모 참관수업을 보기 위해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수업을 앞두고 학부모 참관 수업에 와 달라고 딸아이의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왠지 망설여집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선생님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심 끝에 초등시절 마지막 학년인데 사진이나 찍어서 추억의 사진첩을 만들어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이들 교육은 대한민국 모든 학부모의 가장 큰 관심 사항입니다. 우리 부부 또한 교육에 관심이 많은 터라 딸아이의 학교생활을 유심히 지켜봐 왔습니다. 하지만 열성 학부모는 되지 못합니다. 그저 자식들이 남보다 뒤쳐지지 않고 남들만큼만 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모둠반 학습으로 딸아이가 변하고 있어요"

아이셋을 키우고 있지만 솔직히 그동안 지켜봐 왔던 선생님께 고마울 따름입니다. 공교육이 무너져 가는 요즘 이런 선생님은 처음이었으니까요. 6학년이 된 둘째 딸은 짧은 시간동안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까지 학교 성적이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6학년이 되자 점점 모범생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학교생활을 통해 우리 아이가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이런 느낌은 처음입니다. 딸아이는 학기초 부반장을 맡더니 반가 응모에 참가했습니다. 엄마와 언니의 조언을 구하며 아기염소에 착안하여 만든 반가는 결국 6학년 8반 스카프 반의 반가로 채택되는 영광도 안았습니다.

그보다 더 큰 변화는 공부도 공부지만 말보다 실천입니다. 아이 셋을 키우는 우리 집은 아침이면 전쟁이 따로 없습니다. 학교에 늦게 가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아빠의 성격 탓에 학교에 늦으면 난리가 납니다. 그런데 집에서 가장 먼저 대문을 열고 등굣길에 나선 아이는 둘째딸 소원입니다. 소원이는 중학교 3학년인 큰 언니보다 먼저 집을 나섭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학교 가서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고난 후 교실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것은 우수모둠반이 되기 위한 친구들과의 약속이랍니다. 사실 운동을 싫어해 그렇게 시켜도 안하던 아이라서 "조금 지나면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어느덧 반년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스카프반에 놀란 사실은 친구들의 글쓰기입니다. 학급홈페이지  6학년 8반 S.C.F이야기 게시판에는 쉴 새 없이 글이 올라옵니다. 글쓰기에 서툴던 딸은 매일 학교 학교홈피에 접속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모둠반 아이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매일매일 돌아가면서 글을 씁니다. 지금까지 쓴 글을 보니 6학년이 시작된 3월4일부터 최근 6월13일 현재 503건의 글이 실렸습니다. 어떤 아이는 A4용지 1장분량 정도의 내용으로 가득 채워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반 친구들은 하루에도 많게는 17건에서 적게는 5건 정도로 평균10건 이상의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가히 아이들의 참여가 열성적입니다. 글쓰기를 통한 논술교육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이곳은 6학년만 10개 학급인데 다른 반과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아이 엄마 역시 매일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느라 애독자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딸아이의 변화로 내심 선생님이 궁금해졌습니다. 터놓고 말하면 그보다 먼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학기 초입니다. 6학년이 된 딸아이는 가정통신문과 함께 1학기 교육 스케줄과 담임선생님의 명함을 들고 왔습니다. 사실 선생님들은 명함을 잘 돌리지 않는 것을 봐왔던 터라 같은 반 모든 학부모에게 명함을 줄 정도면 교육철학이 분명한 선생님일거라 생각되었습니다. 나의 예감은 적중했습니다.

이내 아내와 함께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교실에 들어가 보니 먼저 오신 학부모들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공개수업이 진행 중인데 뭔가 긴장을 해야 할 아이들은 너무나 밝습니다. 얼굴엔 웃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교실 분위기 역시 장난이 아닙니다. 교실 구석구석에는 온통 아이들 사진과 친구들의 정성이 새록새록 담긴 작품들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얼마 전 5월에 광주프로야구장에 다녀온 스카프반 친구들의 환한 모습을 담은 대형 실사사진이었습니다. 반 전체가 기아를 응원하기 위해 야구를 보러갔지만 기아의 완패에 난생 처음으로 야구장은 찾은 딸이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의 참관수업의 주제는 배려에 관한 것입니다.

▲ 6학년 8반 스카프반에서 학부모 참관수업을 진행중인 가운데 모니터 화면에 오늘의 토론 주제가 보인다. ⓒ 심명남


"배려는 □□□□□ 이다"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학생들은 토론을 통해 결과를 도출해내야 합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직접 준비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배려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눕니다. 각 모둠반에는 아이들 보다 한 개 적은 아이스크림이 놓였습니다. 누군가는 친구들에게 배려를 해야 됩니다. 잠시 후 저마다 손을 들고 발표가 이어집니다.

"배려는 남을 위한 것입니다"
"남에게 양보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 남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선생님이 생각하는 답이 나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손을 들고 발표를 합니다.

"배려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갑자기 교실이 조용해지더니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렇죠. 선생님이 생각하는 답이 나왔어요. 배려는 결국 남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죠"

참관 수업후 학부모와 나눈 선생님과의 강의도 남다릅니다. 그 첫 번째가 교우관계입니다. 김 선생님은 "이 시기에는 많은 친구를 알기보다 하나의 친구를 만나더라도 아이들끼리 깊이 있는 진중한 만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반 친구들도 잘 모르면서 친한 친구들 하고만 어울린다면 결국 모둠반 학습에서는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시 선생님의 말이 이어집니다.

"오늘 제가 원하는 답은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답을 누군가 한 명이 말하니까 애들이 이게 뭐야 그러는데 답이 바로 그거니까 놀랬을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오늘 모둠반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김 선생님의 교육철학은 배려를 하면 남들도 좋지만 그보다 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학부모들 역시 배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6학년 8반 스카프반 학부모 공개수업

ⓒ 심명남

덧붙이는 글 전라도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