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보다 재밌는 축구대회, 구경하실래요?
[교단 일기] 석 달 간의 학급대항 축구대회를 마치며
▲ 결승골의 주인공 김시온 학생에게 담임선생님이 우승 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 심재철
경기 종료 2분 정도를 남겨 놓고 짜릿한 결승골이 터졌다. 그 주인공은 힘이 좋은 3학년 3반의 기둥 김시온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3학년 8반 수비수 둘을 따돌리더니 상대 학급 문지기까지 허탈하게 만들어버린 마무리 슛을 성공시킨 것. 그리고 김시온은 위에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고 스탠드 앞을 내달렸다. 주심인 내가 보기에도 그는 이 푸른 여름의 주인공이었으니 오죽하랴.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기에 옷을 주섬주섬 다시 차려 입고 걸어오는 그 학생에게 노란딱지를 내밀었다. 스탠드를 가득 메운 점심 시간의 학생들은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우승을 눈 앞에 둔 그의 흥분된 얼굴 빛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딱지 한 장 쯤 더 받아도 별 문제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틀 동안 벌어진 축구 결승전
하루 전 똑같은 점심 시간(12시 35분~1시)에 먼저 벌어졌던 결승전 전반전 결과, 3학년 3반이 1-0으로 앞선 상태에서 시작한 오늘의 후반전 25분은 단 한 순간도 한눈을 팔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공 다툼이 벌어졌다.
멋진 뒤집기를 노리고 후반전을 시작한 3학년 8반 학생들은 단짝 미드필더 둘(송명근, 차재훈)이 시작 후 7분만에 멋진 동점골을 합작했다. 재훈이가 감각적으로 넘겨 찬 공은 3반 골문 앞 빈 곳에 정확히 떨어졌고, 이 공을 따라 뛰어가던 명근이가 수비수의 밀기 반칙으로 넘어졌다. 곧바로 내 입술에서는 길게 휘슬이 울렸다.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반칙을 저지른 친구를 포함하여 3반의 두 학생은 내게 가벼운 항의를 하다가 노란딱지를 받고 물러났다. 그리고 송명근의 정확한 왼발 킥이 골문 왼쪽 구석으로 낮게 깔려 들어갔다. 결승전 후반, 1-1의 숨막히는 살얼음판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었다.
대반전의 기회를 잡은 8반 친구들은 주장 송명근의 위력적인 왼발 킥 실력을 앞세워 코너킥, 프리킥 세트 피스 기회를 여러 차례 얻었지만 골문 앞 마무리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골문을 빗나가는 공에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을 자주 내뿜었다. 교실의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는 학생들이나 운동장 스탠드에 서 있는 학생들의 함성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경기 종료 2분을 남겨놓고 우승을 결정짓는 3반 김시온 학생의 그림같은 결승골이 공촌벌 동쪽 골문으로 굴러들어간 것이었다. 승부차기 대신에 단체 줄넘기를 준비해 두었지만 그것을 꺼낼 필요는 없게 되었다.
그렇게 2011년 학급대항 축구대회가 석 달만에 막을 내렸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 속해 있는 유명 팀의 파란 유니폼을 그대로 잘 맞춰 입은 3학년 8반의 우승이 조심스럽게 예상되었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뒷심이 좋아진 3학년 3반의 집중력은 놀라웠다.
6월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각각 점심 시간에 벌어진 결승전 전후반 50분 경기를 지켜본 여러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아주 흥미로웠다", "실력이 꽤 좋다", "결승전답다"는 반응을 나타내며 즐거워했다.
점심 시간, 우리들만의 축구 축제
2006년부터 시작하여 벌써 여섯 번째 대회를 끝냈다. 처음에는 그저 학교 점심 시간에 일부 학급만의 친선 경기에 내가 휘슬을 잡고 경기를 운영하는 것만을 생각했지 이렇게 열기가 불처럼 일어나 전 학급이 참여하는 큰 대회로 발전할 줄은 몰랐다.
어떤 학급에서는 대표 선수들이 저마다 색깔 있는 유니폼을 맞춰 입고 나올 정도로 열의가 대단하다. 고3 학급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관심이 더 크다. 지난 2년 동안 경험하면서 아쉬운 과정들이 더 많았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 3학년 3반과 3학년 13반의 결승리그 장면 ⓒ 심재철
오늘 벌어진 결승전 직후에도 우승을 차지한 3학년 3반의 수비수 문민국 학생은 농담삼아 "오늘 야자 없다!"는 발언을 담임 선생님 바로 앞에서 내질렀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는 기쁨의 표시가 아니었을까?
지난 3월 21일 월요일 점심 시간부터 시작된 이 대회는 우리학교의 42개 모든 학급이 저마다의 출사표를 던졌다. 17살 1학년 학급의 팀 이름은 '배추 유나이티드'처럼 순수함 그 자체였고, 18살 2학년 학급의 팀 이름은 'ㄷㅇㅂㅎㅎㅇㅇㅇㄷㅂㅌㄹㅁㄹㄱㄹ!!'처럼 지금도 그 뜻을 알 수 없는 난해함 그 자체였다.
비교적 이 대회에 경험이 많은 3학년 학급의 팀 이름은 우승 팀 3학년 3반의 '신철두철미'나 준우승 팀 3학년 8반의 '보은병원'처럼 담임 선생님의 이름이 과감하게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까운 동료 교사는 기발한 팀 이름을 지은 학급을 따로 시상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주시기도 했다.
12시 30분, 점심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운동장에 나온 학생들은 그때부터는 팀 이름을 잊고 학급의 대표로서 온 몸을 내던진다. 입시 준비에 시달리다보니 25분간 진행되는 단판 승부 속에서도 금방 지쳐버린 학생들이 여럿 나온다. 그래도 내가 한 발짝 더 움직여야 팀 플레이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무릎을 잡고 다시 일어나 공을 응시하며 뛰어나간다.
운동장 한 켠에서는 최근 시작된 남교사들의 족구대회가 한창 진행중이지만 이제 내일부터 점심 시간에 내 마음 한 켠은 허전할 것만 같다. 월드컵보다도 더 재미있는 우리 학교 학급대항 축구대회 결승전의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를 느껴보지 못한 1, 2학년 학생들처럼 나 또한 내년 봄이 더욱 기다려진다.
어떤 부분을 보완하면 학생들을 더 재미있게 참여시킬 수 있을까를 좀 더 일찍 고민해야 겠다. 아니, 혼자 고민만 하지 말고 동료 교사들을 찾아가 지혜를 모아야겠다.
여러분들의 학교, 점심 시간에는 어떤 즐거움이 있으신가요?
▲ 3학년 3반 친구들의 우승 뒤풀이 순간! ⓒ 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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