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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앵벌이'시키는 시사주간지 고발합니다

유명 시사주간지 인턴 동원 정기구독자 모집... 해당 회사 "강요 아니다"

등록|2011.06.18 15:10 수정|2011.06.18 21:34
사무실로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학번 김민수 선배님이시죠?"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예, 저는 후배 ○○학번 ○○입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졸업한 지가 20년이 넘었는데도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후배는 최근 학교와 관련된 문제와 학과에 대한 이야기, 교수 이야기 등을 전하며 친근감을 전해온다. 순간, 순진남(?)은 우쭐해진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예, 제가 올해 시사주간지 ○○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축하할 일이네요. 후배들이 다양한 곳에서 일하니 좋네요."
"그런데 선배님, 제가 정기구독 신청률을 올려야 정식사원이 됩니다."
"......"
"일 년만 구독해 주시면…. 실적이 안 좋으면 정식사원이 안 될 수도 있어서…."

인턴사원 시켜 정기구독자 모집, 주간지 너무 하네

아, 이 미련한 순진남(?)은 "정식사원이 안 될 수도 있어서'라는 말에 측은지심을 느껴서 그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일 년만 보면 되죠?"
"예, 감사합니다. 선배님, 정식사원 되면 꼭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건 아니고…. 아무튼 정식사원이 돼야죠."

그렇게 시사주간지 일 년 구독을 신청했다. 그리고 기왕 구독한 것이니 꼼꼼히 읽고, 시사에 대한 이해도 넓히고, 무심코 지나치던 사안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게 되니 뭐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닌 듯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왕이면 내가 보고 싶은 시사주간지를 볼 걸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두어 달 뒤에 그와 유사한 전화가 또 왔다.

"선배님, 저는 후배 ○○학번 ○○입니다. 시사주간지 ○○에 입사를 했는데요."
"저를 어떻게 아시죠?"
"예, 과 선배님이시기도 하고, <오마이뉴스>를 통해서도 알고, 전에 학교에 오셔서 특강을 하실 때도 들었고…."

아, 정말 나를 알긴 아는 후배인가보다 싶어 참으로 난감하다.

"전화번호는 어떻게…."
"동문주소록에도 나와 있어요."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죠. 제가 이미 그걸 구독하고 있는데."
"아닙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미안하다. 그렇다고 같은 것을 두 권이나 사서 볼 일도 없겠거니와 그럴 여력도 없으니 어쩌랴. 그렇게 선후배 간의 돈독한 의리(?) 혹은 정(?)을 확인하고 제정신으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주간지 회사 상술에 후배도 나도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 말을 종합하면, 정식사원이 되려면 많은 정기 구독자를 모아야 한다. 다른 인턴과 경쟁해야 하고, 아무리 많은 정기 구독자를 늘려도 평가에서 처지면 탈락의 쓴 맛을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인턴을 계속할 수 없으니, 결국 인턴의 수고와 노력은 해당 회사의 배만 불려주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도 회사는 "능력 있는 사람을 뽑는다"며 당당할 것이다.

그러나 인턴사원들까지 정기 구독자 수 늘리기 경쟁에 포함시키고, 그것으로 인사 여부를 결정한다면 이는 아주 교묘한 노동력 착취가 아닌가 싶다. 정식사원이 아닌 인턴사원의 '정기 구독자 확보 경쟁'이, 타인의 노동력 갈취와 과연 무엇이 다른가. 취업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청년들을 두 번 죽이는 일로 보인다.

나는 이 문제와 관련 해당 시사주간지 고위 관계자와 15일 전화통화를 했다. 그 관계자는 "이번달 말까지 회사 차원에서 정기 구독자 확장을 목표로 세웠지만, 인턴사원에게 (정식사원 채용을 빌미로) 구독자 확보를 강요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런식(직원과 인턴사원 동원)의 구독자 확장에 문제의식을 느끼므로 6월 이후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대략 한 기수의 인턴은 10명 내외로, 평가를 통해서 4~5명이 정식직원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런 일은 해당 시사주간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 종종 일어날 일이며, 특히 피라미드 판매 조직에서는 청년들에게 단숨에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한 꿈을 심어줘 자신이 직접 물건을 사게 하는 일도 많다.

인턴사원을 뽑아놓고는 정직원 운운하며 구독률 경쟁을 시키는 것은 요즘 인기를 끄는 서바이벌 TV 프로그램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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