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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영정사진 찍으러 가는 날

어머니가 건강 되찾으시면서 첫 번째 하신 일

등록|2011.06.15 19:09 수정|2011.06.15 19:09
"어머니, 오늘도 어디 가시게요?"
"응. 성당에 영정 사진 찍으러 간다."
"뭣 하러 가신다고요?"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어머니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뇌동맥류로 6개월째 병원 약도 드시고 벌침치료를 받아 많이 좋아지셨다. 그래서 어제는 고향 계모임에서 가는 온천여행도 다녀오셨는데 느닷없는 영정사진이라니.

"성당 형제님이 영정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1만 원만 받고 찍어주신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어머니는 거울 앞에서 드라이 효과를 낼 수 있는 미용기구로 머리 손질을 하시면서 당황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오히려 새삼스럽다는 표정이다. 게다가 안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치장하는 모습이 마치 잔치 집에 가신 것 같다.

성당에서 뵙기로 하고 출근하면서 내 자신에게 물어봤다. 내 나이가 어머니 연세일 즈음 '나도 어머니처럼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고 몇 번을 물어보았지만 금방 아니라는 대답이다. 아직 나는 죽음에 대해 준비할 나이가 아니어서 일까. 아니면 삶에 대해서 많은 미련이 남아서 일까. 마음을 비울 나이가 아니어서 일까.

▲ 한껏 멋을 낸 열네 분의 어머니 ⓒ 이경모


내가 성당에 도착했을 때는 개인별 사진촬영은 끝나고 열네 분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다. 대부분 70대이시지만 모두가 멋쟁이시다. 양장과 한복을 곱게 입으시고 화장도 예쁘게 하셨다. 그리고 어느 한 분도 우울하거나 쓸쓸해 보이는 분이 없다. 아주 밝은 표정 환한 미소 그대로다.

오늘 사진을 찍어주신 형제님이 단체 사진을 찍으며 "김치"라고 따라서 하시라는 말에 그대로 하신다.

"김치이~"

마치 그 모습이 유치원 아이들이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과 똑 같다. 얼굴에 세월이 지나간 흔적들이 남아 있을 뿐 해맑은 모습이다.

지난 겨울 뇌동맥류로 큰일을 치를 뻔 했던 어머니가 건강을 되찾으시면서 첫 번째 하신 일이 영정사진 촬영이라니, 내 가슴이 먹먹하다. 6개월 동안 치료 받으시느라 고생도 많이 하셨던 어머니. 걷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어눌한 발음, 시력 저하까지 갑작스럽게 찾아 온 당신의 변화에 긴 한숨을 내쉬곤 하셨다. 그러시면서 가까이 와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다 떨쳐버리고 많이 편해지신 걸까.

며칠 있으면 사진액자를 받으실 것이다. 그 속에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또 뭐라고 말씀하실까.

"참 많이 늙었구나. 어느새 세월이 이만큼 지나갔지?"
"와~ 아직도 봉덕각시네."
"이 사진처럼 환하게 살다가 잠자는 것처럼 죽어 가족들이 편했으면 좋겠다."

많은 생각들이 나를 심란하게 한다. 언젠가는 오늘 찍은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앞에 놓고 슬픔과 후회의 눈물을 속절없이 흘릴 것이다. 그 눈물을 조금이라도 덜 흘리려면 생전에 어머님께 잘 해드려야 한다는 쉬운 답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영정사진이 곧 눈앞에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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