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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산 속에 수류탄이 있어요"

학교 현장 해프닝, 한참을 웃었습니다

등록|2011.06.17 13:52 수정|2011.06.17 16:31

모형 수류탄고교 1학년생 입장에서 얼마나 놀랐을까요? ⓒ 박병춘


때는 지난 5월 말! 대전 서구 복수동에 자리잡은 대전대신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체육교사이자 사격부 감독인 윤승호(55) 교사에게 고교 1학년 두 명이 찾아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어! 뭔데??"

두 학생이 아주 심각한 얼굴로 보고합니다.

"선생님께선 군대 장교 출신이시니까 잘 아실 텐데 말씀 드려도 됩니까?"
"뭐야! 어서 말해 봐!!"

"선생님! 폭발물 처리도 가능하세요?"
"그건 도대체 무슨 말이냐?"

"저희들이 산 속에서 수류탄을 한 개 발견해서 선생님께 긴급 보고하려고 뛰어왔습니다!"
"뭐? 수류탄? 니들이 수류탄이 뭔지나 알어?"
"영화 속에서 많이 봤습니다!"
"그 수류탄이 어디에 있느냐?"
"저 산 속에 있습니다!"
"그래? 가 보자!"

오량산이라 하여 산자락에 위치한 학교인 데다, 윤 교사가 주로 머무는 사격장이 산 초입에 위치한 터라 학생들은 우선 먼저 군 장교 출신인 체육 선생님을 찾은 것입니다. 윤 교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두 학생과 수류탄을 찾아 나섰습니다. 몇 백 미터 정도 산길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두 학생이 발길을 멈춘 채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모형 수류탄구 시대 분단 상황을 대변해 주는 모형 수류탄입니다. ⓒ 박병춘


"선생님… 저기요… 저기 나무 밑에 있습니다."
"야, 이 녀석들아! 니들은 왜 안 따라와!"
"선생님… 저희들은 무서워서 못 갑니다. 선생님이 먼저 가 보세요."
"뭐?!!!"

두 학생이 발길을 멈춘 채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자 윤 교사도 은근히 겁이 났습니다.

'정말 수류탄이라도 있는 거야? 이 근처에 군부대도 없는데 설마 수류탄이 있을라고?' 

그리고 두 학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나무 아래를 보니 정말 수류탄 몸통의 일부가 드러나 보였습니다. 주변에 있는 막대기를 들고 수류탄 주변의 흙을 제거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가짜 모형 수류탄이었습니다.

모형 수류탄그 옛날 학창 시절에 어지간히 던졌더랬습니다. ⓒ 박병춘


윤 교사는 살며시 웃음을 짓고 나서 수류탄을 손에 들고 두 학생에게 외쳤습니다.

"얘들아! 여기 수류탄이다! 받아라!!"
"으악!! 선생님!!!! 터지면 어떡해요!!"

두 학생은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쳤습니다. 윤 교사는 더 큰 웃음을 지으며 사격장에 들어와 두 학생을 만났습니다.

"선생님! 그거 진짜 수류탄 아니에요???"

윤 교사는 너털웃음을 짓고 모형 수류탄의 유래를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고교생들조차 수업 시간에 군사 훈련을 받아야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과, 대학에 입학할 때 체력장이라는 것을 했는데, 그때 모형 수류탄을 멀리 던지면 좋은 점수를 받았던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윤 교사는 수돗가에서 찌든 흙을 닦아내고 장식장 한 켠에 가짜 수류탄을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모형 수류탄 - 환하게 웃고 있는 윤승호 교사"우리 학생들, 정말 순수합니다! 하하하하하!!" ⓒ 박병춘


고교 1학년 두 명이 산자락에서 유기견을 발견하고, 너무 불쌍하여 빵과 우유를 주려고 산 속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수류탄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 순수에 찬사를 보냅니다.

윤 교사는 비록 가짜 수류탄일망정 두 학생이 함부로 건들지 않고 우선 신고해 주어서 참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30년 전, 교련 시간과 체육 시간에 어지간히 투척을 해봤던 저 가짜 수류탄! 이제는 추억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분단 이념을 교육 현장에 접목한 군사 문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옛날 운동장에서 구르고 굴러 산자락에 박혀 있던 구 시대의 유물이 다시는 부활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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