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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후배들에게 사과합니다

대학생 아르바이트가 그렇게 치열한 선택인줄 몰랐다

등록|2011.06.17 21:00 수정|2011.06.17 21:00
오늘 기사 제목, 잘 이해가 안 되지요? 말하자면 오늘은 저의 반성문입니다. 제가 사정도 잘 모르면서 대학을 다니던 후배들에게 제 경험만 믿고 가혹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털어 놓으려고 합니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면서 지난 10여 년 사이에 여러 차례 대학생들에게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교의 후배들에게도 2~3번 특강을 하였고, 제가 속해 있는 YMCA에 실습을 나오는 후배 대학생들에게도 여러 번 특강을 했습니다. 

꼭 제 이야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중에는 시민단체 혹은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그래도 꽤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 등록금 촛불 집회 ⓒ 권우성


대학생 알바가 그렇게 치열한 선택인줄 몰랐다

아무튼 대학생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제가 빠뜨리지 않고 했던 이야기가 바로 "알바 좀 그만하고 대학 시절을 치열하게 좀 살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내 앞길만 쳐다보지 말고 사회문제에 관심 좀 가져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아보고, 책도 좀 읽고, 그리고 원 없이 놀고, 방학이면 국내외로 여행도 다녀보라. 직업을 삼을 수는 없지만 세상에서 제일 괜찮은 게 대학생 노릇이다."

"대학생처럼 시간 많고 자유롭고, 대학생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뛰어들 수 있는 시기가 없다. 하다못해 여행만 해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쉽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 돈이 생기면 그때는 시간이 없다. 알바에 목숨 걸지 마라. 대학 졸업하면 돈은 평생 벌어야 한다. 학창 시절을 알바로 보내지 말고 뭘 하든지 좀 더 치열하게 살아봐라."

뭐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만 해도 대학생들이 등록금 마련을 위해, 부족한 용돈을 벌기 위해, 알바에 매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힘들게 버티는 그들에게 온갖 잘난 체를 다 했던 셈이지요.

그들이 힘들게 알바해서 번 돈으로 비싼 옷이나 사 입고, 하룻밤 술 자리에 한 달 알바 수입을 덧 없이 날려버리는 게 흔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마 제 대학시절 경험 때문일겁니다. 건축노동자와 노점상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제 아버지와 어머니지만 한 번도 저에게 등록금 걱정을 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독하게 성실한 부모님 덕분에 유복한 가정의 아이들처럼 걱정없이 대학을 다닌 제 경험만 생각하고, 후배 대학생들에게 가혹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통계를 보면 저의 대학시절 등록금이 지금처럼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80년대 초반까지 연간 100만 원을 밑돌던 사립대학 등록금이 20년 사이에 연간 수백만 원으로 올랐습니다. 

▲ 반 값 등록금 촛불 집회 ⓒ 권우성


20년 동안 등록금 '괴물'이 자라고 있었다

저 역시 발등의 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등록금 괴물'이 자라고 있었지만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엊그제 젊은 후배 활동가들 만난 자리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반값 등록금' 이야기가 나와 그들의 경험담을 듣고 마음이 아팠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정말 힘들었다. 대학을 다니는 건지, 알바를 다니고 건지 구분이 안 될 때도 많았다."

"온갖 알바 다 해봤지만, 결국 3,4학년 때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했다. 아직도 그 빚을 갚고 있다."

"형제가 동시에 대학을 다니는 바람에 결국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겼다."

이런 삶을 살았던 후배들에게 '좀 더 치열하게 살라'고 말했던 것이 참 무심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취직자리를 구하기 위한 스펙쌓기, 학부제가 만들어낸 더 치열한 경쟁, 이런 것들 때문에 후배 대학생들이 사회와 이웃의 문제를 돌아보지 않는다고만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름 치열하게 대학시절을 보냈던 동년배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요즘 대학생 녀석들...."로 시작하는 비난도 적지 않게 하였습니다. 돌아켜보니 자신의 힘으로, 그리고 가난한 부모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등록금 때문에 거리로 나온 후배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졌기 때문에, 옛날보다 더 좋고 예쁜 옷을 입고 다니고, 심지어 자가용을 타고 학교 다니는 녀석들도 있다고 하고, 우리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휴대전화에 노트북에 PMP를 들고 다니는 겉 모습만 보았던 것을 사과합니다.

젊은 후배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여서,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우석훈이 쓴 책 <88만원 세대>를 읽고서야 우리 세대보다 지금 대학생이 훨씬 치열하고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도 우리시대엔 어영부영 공부해도 대학만 졸업하면 일자리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떤 면에서는 화염병들 들고 뛰어 다니던 우리 세대보다 지금 20대들이 훨씬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지요.

좀 더 치열하게 살아보라고 다그쳤던 후배들에게 사과합니다. 대신 치열하게 알바하던 그 에너지를 모아서 이번 여름은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 힘을 합쳐 열심히 한 번 싸워봅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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