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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단인물사>에서 박목월은 왜 빠졌을까

대구서부도서관, <대구문단인물사> 펴내고 향토문학관 가동 박차

등록|2011.06.22 15:50 수정|2011.06.22 18:13

▲ 1919년의 청년회의소 모임 사진에 현진건과 이상화가 함께 등장하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넷째가 현진건, 그의 뒤(둘쨋줄 왼쪽에서 셋째)가 이상화. (사진은 <대구문단인물사>의 것을 스캔한 것이다.) ⓒ 정만진


도서관이 책을 펴냈다. 그것도 사립 아닌 공립 도서관이 그 일을 해냈다. 도서관이라면 책을 보관하고 빌려주는 업무를 주로 수행하는 것으로 흔히 인식되는 기관인데, 책을 출판했으니 '참신한 변신'이다.

대구 시립 서부도서관이 펴낸 책은 <도서관 업무 편람> 같은 류의, 도서관 본연의 업무와 관련되는 그런 행정적 내용도 아니다. <대구문단인물사>. 제목만 보아도 저절로 짐작이 되지만, <대구문단인물사>는 1910년부터 1960년까지 대구 문단에 수놓인 이야기들을 꼼꼼하게 기록한 특정 분야의 교양역사서다. 책의 24쪽을 잠시 들여다 보자.

이상화는 '국문학사'를 저술하려던 계획도 이루지 못한 채 1943년 4월 25일 오전 8시 45분, 1939년 이래 살아온 계산동 2가 84번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바로 그날 밤 11시, 지음(知音)의 사이인 현진건 역시 타계함으로써 대구는 일시에 두 사람의 문학인을 잃었다. 같은 <백조> 동인으로서 죽음까지 한 날 맞이했다는 것은 인연 치고는 너무도 기이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서부도서관이 이 책을 펴낸 것은 특색 사업으로 향토문학관을 운영해 온 이력이 낳은 결과이다. 지난 2002년 도서관 내에 문을 연 향토문학관은 향토문인들의 삶의 자취가 생생한 저서, 육필원고, 사진자료, 유품 등을 수집, 정리하여 전시해 왔다. 그리고 2004년에는 소장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향토문학관 소장 도록>도 펴냈다. 이번 책은 그 동안 착실하게 구축해온 하드웨어에 충실한 소프트웨어를 장착하기 시작한 성과의 출발점인 셈이다.

▲ <대구문단인물사>의 표지 ⓒ 정만진

<대구문단인물사>는 이상화, 현진건, 백기만, 이장희, 이육사, 백신애, 장혁주, 김문집, 김유영, 최정희, 오상순, 이원조, 김동리, 이설주, 구상, 유여촌, 신동집, 서정희, 서석달(수록 순), 그리고 문학지 <죽순> 등과 관련되는 문단사를 두루 소개하고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문인의 면면들이 대단하다는 긍정적 선입견부터 독자에게 선사하는 이 책은, 실제로 읽어보면 기술된 내용의 세밀함과 보기 드문 사진자료들의 다채로운 수록 등에 더욱 감탄을 하게 된다.

이 책이 보여주는 기록의 세밀성은 김사량에 대한 기록만 보아도 단숨에 인정이 된다. 김사량은 1945년 5월 31일 조선의용군의 거점인 연안 지구를 탈출하여 해방될 때까지 항일전에 뛰어든 사람이다. 그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의 해군견학단의 일원으로 파견되지만 혼자 북경에 있는 순덕으로 가 다시 삼엄한 일본군의 봉쇄를 뚫고 태행산에 도착, 먼저 와 있던 <조선소설사>의 저자 김태준과 합류한다.

이에 대해 <대구문단인물사>는 김사량이 사전에 치밀한 탈출 계획을 수립해 두었다는 사실은 인정될 만하며, 따라서 일본평론가 다나카아키라(田中明)이 '한국민족과 반일'이라는 글에서 김사량이 탈출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친일 행위에 가담했다고 서술한 것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고 평가한다. <대구문단인물사>가 문인들의 그저그런 뒷이야기들을 끌어모은 단순한 집합체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다.

책을 펴낸 서부도서관의 남후섭 관장은 "이 한 권의 책으로 우리 도서관이 모든 것을 다 이룩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옛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향토 문단에 유용한 자료를 제출한 보람은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이 책이 향토 사랑의 디딤돌이 되어 우리 대구가 저력 있는 문학도시라는 사실이 타지인들에게도 더욱 널리 알려지기를 소망합니다" 하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

'주례사 비평'만 하면 글을 쓰는 의의가 없으니

훌륭한 기획이고 결과도 좋은 책이지만, 그렇다고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주례사 비평'만 해서야 이 글을 쓰는 의의가 없으니 필자 나름대로의 소견도 밝혀두는 것이 독자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또한 고루한 이미지를 벗고 참신한 변화를 이끌어가는 서부도서관 등 일부 공공기관들의 노고가 더욱 멋진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약간의 주마가편 정도는 아끼지 않는 충정을 보여야 마땅할 것이다.

<대구문단인물사>의 가장 큰 약점은 책의 정체성 문제이다. 책 속표지에 미리 밝힌 '(이 책에 등장하는 문인의) 게재 순서는 문학사적인 위상과는 상관이 없으며, 작가 데뷔 시기와 문단에 끼친 영향 등을 고려하여 정하였음'이라는 인식이 낳은 결과이다. 처음부터 '문학사'이기를 포기하고 '문단사'에 머물기로 의도한 것은 애당초 '향토문학관'이 취할 합당한 접근이 아니라는 것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의 신암선열공원에 있는 백기만 선생의 묘역 ⓒ 정만진

이상화와 현진건의 본문을 중간 목차로 견줘보자. 이상화는 '출생과 유년 체험- 방랑과 좌절의 '백조' 시대- 관동대지진과 분노- 이상화의 문학관- 맺음말'이고, 현진건은 '인간과 문학- 출생과 성장기의 환경- '백조' 시대와 초기 소설- 사실주의와 작가의식- 현진건의 역사소설- 불운했던 만년- 빙허의 문학사적 위치- 맺는 말'이다. 이상화 부분은 전기 형태이고, 현진건 부분은 작가론 형태이다.

두 사람에 이어 등장하는 백기만 부분은 또 다르다. 선열공원에 모셔져 있는 백기만 선생은 대구를 대표할 만한 독립운동가의 한 분인데, 글은 전체적으로 그에게 문학상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문단 풍경의 내막을 다룬 듯한 인상에 멈춰 있다. 독자들의 오해를 살 여지가 다분하다는 말이다.

백기만 선생은 <상화와 고월>을 남긴 업적만으로도 충분히 문학사적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독립운동과 해방후 사회운동의 이력을 소개함으로써 교육적 효과도 충분히 거둘 수 있는 분이다.

<대구문단인물사>가 '문단사'로 책의 성격을 한정함으로써 글 속에서 백기만 선생의 그러한 업적은 거의 찾을 길이 없게 되어버렸고, 결과적으로 백기만 부분은 문단 내 사람들만이 관심을 가지는 이야기에 매몰되고 말았다.

문단사의 한계는 분명하다. 도서관은 학교교육을 뒷받침하고 성인들의 평생교육을 진흥하는 일에 매진해야 하는 기관인데, 문단 돌아가는 사정을 기록하는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문학사 또는 평전 같은, 교육적 목적에 충실한 책을 기획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 박목월이 학생으로 다녔고, 뒷날 교사 생활도 한 대구 계성학교의 본관 풍경. 105년 역사를 자랑하는 계성학교의 이 건물은 박목월이 학생이던 시절에도 건재했던 적벽돌 서양식 교사(校舍)이다. ⓒ 정만진

사실, 이 점은 책의 표지를 넘기는 순간 확인된다. ISBN 번호를 부여받아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까지 한, 고급 양장을 한 <대구문단인물사>가 첫 머리에 고위 관료들의 발간사와 축사 등을 싣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좋은 책을 내고도 관료적 발상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탓에 '세상에도 통할 만한' <대구문단인물사>를 품격 낮은 '기관지'로 스스로 격하시키고 말았다.

당연히 '필자의 말'이 권두를 장식해야 한다. 표지를 넘긴 일반독자가 처음부터 고위 관료들의 사진과 틀에 박힌 축사 따위가 나오면 그 책을 어찌 생각할 것인가.

한 가지만 더 말한다면, 소개 인물 선정에도 약간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대구와 거의 인연이 닿지 않는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는 반면, 꼭 들어가야 할 사람이 빠지기도 했다. 예를 들면, 청록파 시인 박목월이 바로 그렇다.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고 교사 생활까지 한 박목월이 빠져 있다.

그는 자신의 모교를 두고 '계성학교'라는 시까지 지은 인물이다. 형편이 어려웠던 목월은 담임교사의 애정어린 주선으로 한때 계성학교의 온실 안에 기거하면서 공부를 했다. 그만 하면 독자들에게 얼마나 훌륭한 읽을거리가 되나. 그런 목월이 빠진 것은 <대구문단인물사>의 책 제목과 내용 사이에 약간의 상통 부재가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 사례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오류를 두고 <대구문단인물사>의 가치를 약간이라도 낮춰 잡아서는 안 된다.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이 있지 아니한가. 한번도 운전을 하지 않으면 경미한 교통사고도 낼 일이 없지만, 그래도 차를 몰고 도로로 나서는 사람은 약간의 실수 정도는 범하게 마련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야만 그는 앞으로 모범 운전자가 될 수 있다.

관료 사회가 자신의 뒤를 늘 따라 다니는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의 이미지를 벗어던지려면 서부도서관과 같은 참신한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구 시립 서부도서관이 <대구문단인물사>를 펴낸 것은 상찬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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