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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분쟁의 꺼지지 않는 불씨 대만관계법

[중국근현대사 속 오늘-6월 22일] 대만관계법 발효 32주년에 부쳐

등록|2011.06.22 18:28 수정|2011.06.22 18:28

미국이 만든 중국 견제의 묘안 '대안관계법'대만에서 통일 지지세력들은 대만관계법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중핑서(中評社)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G2 중국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며 협력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견제의 대상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은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작전계획도 가상의 적 중국을 염두에 두고 조정된다.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카드는 여러 장이다. 중국 위에 있는 몽골과 군사적 협력 강화를 위해 경제지원에 발 벗고 나서기도 하고 티베트의 망명정부를 지원하며 은근히 티베트의 자치와 독립을 종용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확실한 카드는 바로 대만을 활용하는 것인데 미국과 대만을 이어주는 군사적 연결고리가 바로 '대만관계법(臺灣關係法)'이다.

1972년 2월 21일, 닉슨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죽의장막이 걷히기 시작하였고 1979년 1월 1일 드디어 중미국교수립이 이뤄졌다.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에 의해 미국은 대만과 국교를 단절해야 했고 미국-대만 공동방위조약도 바로 폐기되고 미군도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지렛대인 대만 카드를 버릴 수 없었다. 1979년 4월 미국 의회 차원에서 대만의 평화유지를 위해 미국의 방위 군수물자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대만관계법안이 통과되었고 결국 지미 카터대통령은 1979년 6월 22일, 이 법안을 서명, 발효시켰다. 당시 미국의 아젠다가 중국에 대한 협력과 화해가 아니라 견제와 봉쇄에 있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변함이 없다.    

미국 정부는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여 향후 급성장할 중국시장에서의 국익을 챙기고 껄끄러운 대만문제는 의회 차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기존의 무기판매와 중국 견제카드를 계속 활용하겠다는 계산이었다. 대만을 중국의 23개 성(省)의 하나로 보면서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기 않고 지구상에는 '하나의 중국'만이 존재한다는 중국 입장에 맞선 미국의 묘안이긴 했지만 이 대만관계법은 두고두고 중미관계 '분쟁의 불씨'로 남게 되었다.

중미관계에 훈풍이 불더라도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순간 양국관계는 급격히 냉각되곤 하였다. 올해 1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오바마대통령이 대만관계법을 언급하는 순간 기자회견장에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는 후문이 있었을 정도다.

미국은 1982년 대만에 대한 '6개항 보증(六項保證)'을 공식화 한 바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에 기한을 정할 뜻이 없다. ▶무기판매에 대해 중국과 사전에 협의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대만에 압력을 행사하는 한 무기판매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대만관계법을 수정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대만의 회담에 중재 역할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압력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대만에 대한 주권 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권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미국은 최근에도 중국의 대만관계법 개정요구에 대해 '6개항 보증'을 거론하며 단호히 거절한 바 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경제교류는 지속하면서도 앞으로도 대만을 이용한 '군사 봉쇄'를 계속 이어갈 뜻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굴기(崛起)하는 중국을 상대로 한 군사봉쇄가 언제까지 유효하게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 이슬람권과 벌이는 대테러전쟁 등 너무 광범위한 지역에서 너무 과도한 임무를 수행하는 미국의 힘도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면전략'에 맞서 중국은 대만에 대한 압력의 수위를 낮추고 대만을 자신들의 품으로 끌어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군수업자들의 배를 불려 주며 중국 견제의 교묘한 수단이었던 대만관계법도 그 유효기간이 그리 많이 남진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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