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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교가 흔든 '도청 녹취록', KBS는 왜 침묵?

[장윤선의 톡톡! 정치카페] 긍정도 부정도 않는 KBS... 침묵 속 난무하는 의혹

등록|2011.06.29 18:23 수정|2012.08.06 18:45

▲ 민주당 대표실에 대한 불법도청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천정배 불법도청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이 29일 오전 국회 문방위 회의실에서 첫 회의 결과를 발표하며, "이번 도청 사건은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견될 일"이라고 규정한 뒤 "도청도 중대 범죄지만 도청한 결과를 공개하거나 누설한 것도 똑같이 중대한 범죄"라며 "한선교 의원에게 24시간을 주겠다. 내일 정오까지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않으면 한선교 의원에게 법적·정치적 책임을 묻기 위한 모든 수단을 다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권우성


지난 24일 오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상황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코너에 몰릴 대로 몰린 상태였습니다. 이유는 전날 한나라당과 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에 합의해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것도 단독 플레이로.

폭풍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김 원내대표와 민주당이 집중포화를 받는 순간! 도청사건이 터졌어요! 기자들은 '음모론'에 꽂혔습니다. 국면 전환용이야? 증거도 없이 도청이다 지르고 보자 이건가?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소란스러웠습니다. 급기야 <세계일보>는 사설을 씁니다.

"(중략) 도청인지 아닌지 확언할 단계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도청 파문이 국회를 덮치는 상황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시급히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이 산더미처럼 쌓인 상황 아닌가. 이번 논란의 진실이 무엇이든, 거짓말 한 쪽은 법적·도덕적·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한선교가 흔들어 댄 녹취록, 사건의 시작이었다

민주당 비공개 회의를 누가 도청했을까 의혹은 일파만파 번졌습니다. 한나라당? 민주당 내부 소행? 그렇다면 이해관계자인 KBS? 옥신각신 입씨름이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 내내 이어졌습니다.

시간을 조합해 보면, 이 도청 파문의 발단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소속 한나라당 간사인 한선교 의원의 폭로입니다. 한 의원은 지난 24일 열린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의 비공개회의 발언 녹취록"이라며 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에 대한 민주당 일부 최고위원의 발언을 공개했습니다. 이 발언은 천정배 최고위원의 발언이었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은 곧장 도청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왜냐하면 한 의원이 쥐고 흔든 문건에 등장하는 민주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는 당직자 배석 없이 진행됐기 때문에 따로 흘러나갈 개연성이 없었습니다. 녹취록 또한 따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발언이 새어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도청 당한 민주당 최고위회의는 지난 23일 오전 9시 국회 본청 205호 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열렸고, 이 자리엔 손학규 대표, 김진표 원내대표, 정동영·정세균·천정배·이인영 최고위원, 김재윤 간사 등 문방위원 4명, 실무 당직자 3명만 참석했습니다. 이중 한 의원에게 흘린 사람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민주당 내부 소행은 아닌 것으로 매듭지은 것이지요. 그렇다면 한나라당?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그쪽도 아닌 것으로 보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발설의 책임을 한선교 의원이 져야 한다는 공세는 날마다 이어지고 있습니다.

▲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KBS 수신료 인상안 날치기 처리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민주당 문방위원들이 21일 국회 문방위 법안심사소위의 미디어렙 법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회의실에 대기하고 있다. 민주당 문방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재윤 의원이 노영민 원내수석부대표와 얘기하는 내용을 전종철 KBS 국회출입기자(맨 오른쪽)가 옆에서 듣고 있다. ⓒ 남소연


민주당과 한나라당도 아니면... 남은 건 KBS뿐인데

남은 건 KBS뿐입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춘 도청 파문의 베일이 슬슬 벗겨지기 시작합니다. 언론이 선봉에 나섰습니다. 28일과 29일 <경향신문>과 <동아일보>는 잇따라 여야 정치인의 입을 빌어 KBS를 정조준합니다.

<동아일보>는 여권 관계자의 말을 빌어 "수신료 인상안의 이해당사자인 KBS가 작성한 문건이 한 의원 측에 유출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민주당 관계자도 "한선교 의원이 갖고 있던 문건은 KBS가 만든 것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한 의원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는 거지요.

정작 한 의원은 부인합니다. 그는 "문건은 민주당이 작성한 것을 제3자에게서 받았고 문건의 작성자는 민주당이며 KBS에서 받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아나운서 출신인 한 의원 또한 제보자는 반드시 보호한다는 보도준칙에 익숙한 탓일까요?

그렇다면 수사기관이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당도 지난 26일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입니다. 문제는 국회 사무처가 국회 본청 205호실의 현장조사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학재 민주당 의원은 29일 열린 '불법도청 진상조사 특위' 회의에서 "국회 스스로 도청사건을 은폐 방조하는 것과 같다"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국회 문방위 소속 민주당 간사인 김재윤 의원에 따르면, 검찰 출신인 박희태 국회의장은 정말 희한한 논리를 댑니다. 국회는 성역이기 때문에 수사기관인 경찰이 들어와 수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입법부에서 일어난 일은 입법부에서 푸는 게 맞다?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살짝 헷갈리네요. 

민주당은 이 사건을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경찰 조사로 사건의 결과를 발표하고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청와대 대포폰, 총리실 민간인 사찰, 그리고 제1야당 대표실에서 벌어진 도청 파문. 모두 묶어 총공세할 생각도 갖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증거를 손에 쥐는 순간 불벼락을 내리겠다는 태도도 읽힙니다.

도대체 누가 도청을 했을까요? 언론의 보도대로 KBS가 한 것이 맞을까요? 이 문제와 관련해 KBS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아주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요.

마침 언론노조 KBS본부가 입장을 냈습니다. 사측은 KBS 명예를 위해서라도 도청의혹을 명확히 밝히라는 거지요. 잠시 논평을 보겠습니다.

"이번 도청의혹 사건에 KBS가 관련되었다는 증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권과 대부분의 언론에서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이해관계자가 민주당의 회의 내용을 빼내 한나라당에 건넨 것 같다는 추측성 기사와 의견이 난무하고 있다. 

언론사로서 취재 현장에서 취득한 정보를 보도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기이자 사회적 범죄행위이다. 또 도청의혹이 확산되는 마당에 침묵은 의혹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사측은 철저한 내부 확인을 통해 관련사실 여부를 조속히 파악하고, 사실이 아니라면 그 어떤 대상일지라도 법적으로 고발하고 엄정하게 대처하라!"

언론노조 KBS본부의 말대로 침묵은 의혹을 증폭시킬 뿐입니다. 정녕 관련이 없다면 뒷짐지고 물러설 게 아니라 앞서서 아니라고 당당히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아닌 다음에야 제2, 제3의 의혹은 계속 불거질 수밖에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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