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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청산가리' 3명 살인 70대 무기징역 확정

1심 무기징역→항소심 사형 등 재판부 5번 거쳐 대법원서 최종 무기징역

등록|2011.06.30 22:04 수정|2011.07.01 18:17
충남 보령에서 자신의 처와 이웃주민 부부에게 은밀하게 청산가리를 녹여 먹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사형까지 선고됐던 70대에게 최종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범죄사실에 따르면 A(73)씨는 B(71,여)씨와 혼인한 후 혼자 서울에 올라가 살면서 다른 여자와 동거를 하는 등 처와 자녀들을 돌보지 않으며 40여 년간 별거생활을 했다.

그런데 A씨는 나이도 들고 직업 없이 힘들게 서울 생활을 하던 중 2008년 5월 처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하게 되자 처를 간호하고 집안일을 돕겠다는 구실로 고향인 충남 보령 처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후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지내던 A씨는 다방을 운영하는 H(55,여)씨를 만나 내연관계로 발전해 H씨가 오서산 등산객을 상대로 식당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등 각별하게 지냈다.

이에 B씨는 남편이 내연녀 H씨와 함께 다니면서 성관계를 갖고 H씨의 일만 도와주는 것에 몹시 분개해 이혼을 결심하고 가족들과 이웃에게도 이혼하겠다고 말하는 등 관계는 극도로 악화됐다.

또한 H씨의 식당 바로 옆에 살며 A씨의 행동을 지켜 본 C씨 부부는 이런 사실을 B씨에게 알려줘 B씨와 H씨는 자주 싸웠다. 뿐만 아니라 C씨는 A씨가 그동안 서울에 살면서 가족에게 소홀했음에도 고향에 와서 H씨와 내연관계로 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A씨에게 H씨를 만나지 말라고 훈계해 A씨는 C씨 부부와도 사이가 극히 좋지 않았다.

A씨는 처가 H씨와 자주 싸우고 자신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부부싸움을 하는 것이 C씨 부부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또 이혼당할 경우 집에서 쫓겨나게 돼 극도로 불안해하던 중, 처와 C씨 부부를 살해하면 처의 재산을 차지하고 고향집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H씨와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 모진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A씨는 외상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속칭 '청산가리'를 구입해 기회를 보던 중 2009년 4월 마을 노인들이 안면도 꽃박람회에 단체로 야유회를 가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집을 비워 목격자도 별로 없는 점을 이용, 범행에 들어갔다. A씨는 먼저 자신의 처가 마시는 보리차에 치사량 이상의 청산가리를 녹여 뒀고, 야유회를 갔다 와 이를 마신 B씨는 즉시 숨졌다.

또 A씨는 자신이 복용하는 캡슐 약의 내용물을 빼고 청산가리를 넣은 뒤 C씨 부부가 돌아오기 전에 청산가리가 든 캡슐 2개와 인근에서 딴 당귀 잎을 마루에 올려놓아 마치 지나가던 등산객이나 지인이 만나러 왔다가 없자 그냥 놓고 가는 것처럼 위장했다. 게다가 A씨는 이 캡슐이 피로회복제라는 쪽지도 써놓았다. C씨 부부도 이 캡슐을 먹고 숨졌다.

1심 "극형을 선고하는 것도 과중하지 않지만 무기징역"

결국 A씨는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1심인 대전지법 홍성지원 형사부(재판장 최병준 부장판사)는 지난해 2월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와 혼인한 후 처와 자녀들을 돌보지 않고 오랫동안 외지에서 살다가 집으로 귀향했음에도 처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다방 업주 B씨와 공공연히 내연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부부간의 갈등을 야기했고, 이런 부부갈등으로 이혼을 요구하는 처뿐만 아니라 같은 마을에서 피고인의 처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B씨와 어울리는 사실을 처에게 알려주거나 이를 나무라던 무고한 이웃 주민 2명을 독극물로 무참히 살해함으로써 고귀한 3명의 인명을 앗아가는 매우 중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또한 "피고인은 범행을 위해 사전에 청산가리를 미리 준비한 다음 주민들의 꽃박람회 나들이 날에 맞춰 치밀하게 범행을 수행하고, 범행 후에는 관련자에게 진술 번복을 회유해 범행은폐를 시도하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함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경찰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명백한 사실관계마저도 부인하면서 전혀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살인범행으로 피해자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잃게 됐고, 그 유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돼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참담한 결과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회복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범행을 부인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양심이나 도리조차 저버리는 행태가 아닐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극형을 선고하는 것도 과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사형은 국가가 그 필요에 의해 개인의 생명을 강제로 영구히 박탈하는 극단의 형벌이므로, 피고인에 대한 극형의 선고만은 면하기로 하되, 피고인으로 하여금 무기한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태에서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참회하도록 함이 상당하다고 판단돼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설명했다.

항소심 "인명을 경시하는 반사회적 태도와 악성이 극에 달해 사형"

그러자 A씨는 "형량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반면 검사는 "형량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해 사형에 처해야 한다"며 각각 항소했고,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이민걸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A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청산가리를 이용해 자신과 각별한 관계에 있는 피해자들을 3명이나 무참히 살해했고, 범행도 사전에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했고, 게다가 피해자들은 모두 마을 주민들과 함께 꽃박람회에 가서 즐겁게 유람하다 온 당일 밤과 새벽에 영문도 모른 채 청산가리를 먹고 억울하게 사망한 것으로서, 범행수법이 잔혹하고 무자비해 죄질이 극히 반사회적이고 불량하다"고 밝혔다.

이어 "누구라도 당연히 지적할 만한 자신과 H씨와의 내연관계를 문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처와 이웃인 피해자들을 죄의식 없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살해하는 등 인명을 경시하는 반사회적 태도와 악성이 극에 달해 있고, 유족들이 극심한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받고 있을 것임은 자명한데 현재까지 피해보상이 되지 않아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피고인은 아직도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면서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는 점, 피해자들과의 관계, 범행의 동기, 사전계획과 준비의 정도, 수단과 방법, 잔인하고 포악한 정도, 결과의 중대성, 피해자의 수와 피해감정, 반성과 가책의 유무, 피해회복의 정도, 재범의 우려 등 제반 양형의 조건들을 참작해 보면, 양형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해 봐도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함이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파기환송심 거쳐 대법원 최종 무기징역 확정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1월 "청산가리의 입수 경위, 장기간 보관된 청산가리의 독극물로서의 효능 유지 부문 등에 대한 판단이 미흡해 범행이 피고인의 소행이라고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은 다시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그러자 A씨가 다시 상고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제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30일 충남 보령에서 처와 이웃주민 등 3명에게 청산가리를 먹여 살해한 혐의(살인 등)로 기소된 A(73)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부검감정서 결과 피해자들 모두 혈액 등에서 청산염이 검출됐고, 먹거나 마시는 방법으로 청산염이 투여된 것으로 밝혀진 점, 또한 C씨 부부의 집에서 발견된 메모지에 기재된 필적이 피고인의 필적과 동일하고 필기구 또한 피고인의 집에서 발견된 사인펜과 동일한 성분이라는 감정결과 등에 비춰 C씨 부부가 피로회복제로 위장한 청산가리가 들어 있는 캡슐을 먹고 사망했다고 추론하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유죄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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