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에 무슨 색깔이 있고 이념이 있을까
한국전쟁 희생자, 죽음을 차별하지 마시라 !
지난 토요일이 한국전쟁 61주년이었습니다. 한국 전쟁 61주년을 맞아 제가 매주 출연하는 지역 방송에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과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을 비교하는 청취자 칼럼이 방영됐습니다.
사실 이런 주제로 방송을 하게 된 계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때문입니다. 이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아직도 남과 북의 이름 모를 산야에 잠들어 있을 13만 호국용사들을 잊지 않고 마지막 유해 한 구를 찾는 그날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같은 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을 방문하여 방명록에 "최후의 한구까지 찾을 때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 합시다"라는 글도 남겼습니다. 물론 대통령의 이야기는 이날 추념사와 방명록 글귀만 놓고 보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에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여 유해발굴 사업을 하고 있는 정부가 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 사업은 '나몰라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맡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들에게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과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을 비교하게 된 가장 본질적인 이유입니다.
전사자만 국민, 민간인 희생자는 국민 아닌가?
정부는 지난 2002년 한국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은 2002년에 시작 되어 올해로 10년째를 맞고 있으며 대통령과 정부의 관심 속에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전사자 유해발굴이 시작된 2000년부터 10년 동안 5576명의 유해를 발굴하였지만, 아직도 13만 여명의 유해가 미 발굴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후의 한사람까지 전사자 유해 발굴을 추진하고 이미 나이가 70~80세에 이른 고령화된 관련자들의 증언을 확보하고 현장 제보를 최대한 확산시킨다는 계획을 계속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만, 제가 방송을 한 것은 전사자 유해발굴이 잘못이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으로 적어도 500만 명 이상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거나 다치고 1000만 명이 넘는 가족이 이산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문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은 2010년을 끝으로 중단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민간인 희생자 가족회 등의 주장에 따르면 아직도 100만 명이 넘는 유해들이 땅속에 묻혀있는데 정부의 유해 발굴사업은 '전사자'로만 국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을 증언해줄 관련자들 역시 똑같이 70~80세의 고령자들인데 군전사자 유해발굴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하였습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한시적으로 구성되었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가 약 6개월 전에 해산한 이후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은 완전히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민간인 희생자 100만 명 유해도 땅속에 있다는데...
지난 5년 동안 활동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에는 총 1만 860건의 진실규명 민원이 접수되었는데, 그중 88%가 민간인 집단 희생과 적대세력 관련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5년 동안 겨우 6000여구의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를 찾아냈을 뿐 아직도 100만 명이나 되는 희생자 시신은 여전히 땅 속에 묻혀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정부가 전사자 유해 발굴은 꾸준히 추진하면서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만 중단해버린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였지만, 민간인 유해발굴사업을 맡았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가 해산되도록 내버려두었고 더 이상 추가 발굴사업도 추진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난 5년 동안 발굴한 6000여구의 민간인 희생자 시신은 창고와 다름없는 충북대학교 가건물에 방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국에 100여 개에 이르는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가 결성되어 있고, 이들은 전쟁 당시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946년에서 1950년 사이에 대구, 제주, 여수, 순천에서 이미 10만 명 이상 학살되었고, 그 이후 보도연맹이라는 이름으로 순천, 경주, 산청 등에서 30만 명 이상, 경남 산청을 비롯한 지리산 인근에서 빨치산을 토벌한다며 10만 명 이상, 미군 폭격에 의해 10만 명, 북한 인민군에 의해 10만 명 등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학살당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군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찾겠다고 나선 대통령과 정부가 한국전쟁 당시 이념 대립 과정에서 남북한의 군인과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100만 명이나 되는 희생자들의 유해발굴은 완전히 중단하고 아예 모른 채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가 희생당한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고 그 희생에 보답하는 것이 당연한 국가의 책무라면, 마찬가지로 전쟁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 역시 국가의 책무입니다.
한국 전쟁기간 동안 국가 공권력의 범죄행위로 희생된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희생자의 유해를 그대로 땅속에 남겨 두고 '진실과 화해'를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제 생각을 라디오 방송 청취자 칼럼을 통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선생이 보도연맹에 대하여 얼마나 알아?
그런데, 방송이 나간 이틀 후에 한 청취자로부터 점잖은 항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 방송을 라디오로 직접 들은 손OO 선생님이신데 화요일에 방송을 듣고 연락처를 확인하여 목요일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경주 보도연맹 사건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인데, 보도연맹원 중에는 실제 빨갱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군전사자와 같이 유해를 발굴하고 희생에 대해 보상을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에게 보도연맹사건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물으시더군요.
보통 이런 전화는 자신을 밝히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화를 주신 손선생님은 시종일관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 생각이 틀렸으니 고치라고 강요하시지도 않으셨고, 다만 자신의 가족처럼 '완장'을 찼던 보도연맹원으로부터 핍박 받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유족들의 주장을 들어봐도 그렇고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조사를 했더니 보도연맹원 중에는 억울한 희생자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실제 좌익 활동의 핵심 인물들은 대부분 빠져나갔을 뿐만 아니라 재판과 같은 법적인 절차를 거쳤다면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말씀도 전해드렸습니다.
그 분과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습니다만, 어느 쪽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전화 통화를 끝내고 나니 다 못해드린 이야기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시신에 무슨 색깔이 있고, 이념이 있겠냐"는 말씀도 못해 드렸고, 당시 "실제로 '완장'을 찼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서로 화해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를 씻고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진실과 화해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런 주제로 방송을 하게 된 계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때문입니다. 이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아직도 남과 북의 이름 모를 산야에 잠들어 있을 13만 호국용사들을 잊지 않고 마지막 유해 한 구를 찾는 그날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에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여 유해발굴 사업을 하고 있는 정부가 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 사업은 '나몰라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맡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들에게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과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을 비교하게 된 가장 본질적인 이유입니다.
▲ 이명박 대통령 방명록 ⓒ 국방부
전사자만 국민, 민간인 희생자는 국민 아닌가?
정부는 지난 2002년 한국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은 2002년에 시작 되어 올해로 10년째를 맞고 있으며 대통령과 정부의 관심 속에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전사자 유해발굴이 시작된 2000년부터 10년 동안 5576명의 유해를 발굴하였지만, 아직도 13만 여명의 유해가 미 발굴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후의 한사람까지 전사자 유해 발굴을 추진하고 이미 나이가 70~80세에 이른 고령화된 관련자들의 증언을 확보하고 현장 제보를 최대한 확산시킨다는 계획을 계속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만, 제가 방송을 한 것은 전사자 유해발굴이 잘못이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으로 적어도 500만 명 이상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거나 다치고 1000만 명이 넘는 가족이 이산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문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은 2010년을 끝으로 중단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민간인 희생자 가족회 등의 주장에 따르면 아직도 100만 명이 넘는 유해들이 땅속에 묻혀있는데 정부의 유해 발굴사업은 '전사자'로만 국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을 증언해줄 관련자들 역시 똑같이 70~80세의 고령자들인데 군전사자 유해발굴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하였습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한시적으로 구성되었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가 약 6개월 전에 해산한 이후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은 완전히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 청와대앞 시위중인 유족회 ⓒ 유족회
민간인 희생자 100만 명 유해도 땅속에 있다는데...
지난 5년 동안 활동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에는 총 1만 860건의 진실규명 민원이 접수되었는데, 그중 88%가 민간인 집단 희생과 적대세력 관련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5년 동안 겨우 6000여구의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를 찾아냈을 뿐 아직도 100만 명이나 되는 희생자 시신은 여전히 땅 속에 묻혀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정부가 전사자 유해 발굴은 꾸준히 추진하면서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만 중단해버린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였지만, 민간인 유해발굴사업을 맡았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가 해산되도록 내버려두었고 더 이상 추가 발굴사업도 추진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난 5년 동안 발굴한 6000여구의 민간인 희생자 시신은 창고와 다름없는 충북대학교 가건물에 방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국에 100여 개에 이르는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가 결성되어 있고, 이들은 전쟁 당시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946년에서 1950년 사이에 대구, 제주, 여수, 순천에서 이미 10만 명 이상 학살되었고, 그 이후 보도연맹이라는 이름으로 순천, 경주, 산청 등에서 30만 명 이상, 경남 산청을 비롯한 지리산 인근에서 빨치산을 토벌한다며 10만 명 이상, 미군 폭격에 의해 10만 명, 북한 인민군에 의해 10만 명 등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학살당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군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찾겠다고 나선 대통령과 정부가 한국전쟁 당시 이념 대립 과정에서 남북한의 군인과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100만 명이나 되는 희생자들의 유해발굴은 완전히 중단하고 아예 모른 채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가 희생당한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고 그 희생에 보답하는 것이 당연한 국가의 책무라면, 마찬가지로 전쟁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 역시 국가의 책무입니다.
한국 전쟁기간 동안 국가 공권력의 범죄행위로 희생된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희생자의 유해를 그대로 땅속에 남겨 두고 '진실과 화해'를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제 생각을 라디오 방송 청취자 칼럼을 통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 진실화해위원회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선생이 보도연맹에 대하여 얼마나 알아?
그런데, 방송이 나간 이틀 후에 한 청취자로부터 점잖은 항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 방송을 라디오로 직접 들은 손OO 선생님이신데 화요일에 방송을 듣고 연락처를 확인하여 목요일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경주 보도연맹 사건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인데, 보도연맹원 중에는 실제 빨갱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군전사자와 같이 유해를 발굴하고 희생에 대해 보상을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에게 보도연맹사건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물으시더군요.
보통 이런 전화는 자신을 밝히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화를 주신 손선생님은 시종일관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 생각이 틀렸으니 고치라고 강요하시지도 않으셨고, 다만 자신의 가족처럼 '완장'을 찼던 보도연맹원으로부터 핍박 받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유족들의 주장을 들어봐도 그렇고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조사를 했더니 보도연맹원 중에는 억울한 희생자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실제 좌익 활동의 핵심 인물들은 대부분 빠져나갔을 뿐만 아니라 재판과 같은 법적인 절차를 거쳤다면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말씀도 전해드렸습니다.
그 분과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습니다만, 어느 쪽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전화 통화를 끝내고 나니 다 못해드린 이야기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시신에 무슨 색깔이 있고, 이념이 있겠냐"는 말씀도 못해 드렸고, 당시 "실제로 '완장'을 찼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서로 화해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를 씻고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진실과 화해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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