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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 선거철 되니 예산 땄다고 자랑만 한다"

[르포-울산 중구·동구] 4·27 재선거 두 달 후 주민들 목소리 들어보니

등록|2011.07.04 09:22 수정|2011.07.04 09:22
"신문을 보니 정치인들이 예산을 많이 땄다고 자랑하던데 (선거철) 때가 됐나? 전부 토목공사 건설하는 돈 아이가, 그렇다고 중구 도로문제가 해결됐나? 예산 따서 우리한테 돌아오는 게 뭐 있어."

지난 1일 낮 12시, 울산 중구 성남동 시장통에 있는 '할매칼국수' 집에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던 한 50대 남자는 화를 벌컥내며 이같이 말했다. 할매칼국수 집은 한 그릇에 3000원으로 한 번에 10명 정도 분량을 끓이는데, 값이 싸면서 양은 곱배기라 서민층 손님들이 많다. 점심시간이면 순서를 기다리는 줄을 서야 한다.

이곳에서 요즘 중구 현황에 관해 묻자 이 남성이 벌컥 소리를 질렀고,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나왔다. 한 30대 남성은 "얼마전 우리동네 국회의원이 '중부소방서를 외곽으로 옮기겠다'고 한 말이 대서특필됐더라, 그건 오래전에 당연히 했어야한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 울산 최고 번화가 중구 성남동 젊음의 거리 입구에 중부소방서의 소방차가 대기해 있다. 벌써 외곽이전이 이뤄져야 했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 박석철


부자도시로 일컬어지는 울산에서 중구는 가장 못사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동구), 자동차(북구), 석유화학단지(울주군) 등 울산을 먹여살리는 산업 공장이 중구에는 없다. 지역 토박이들이 "옛날에는 모두 중구에 모여 살았다"고 할만큼 중구는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심도시지만 지금은 주민을 먹여 살릴만한 장치가 부족하다.

노인 인구 비율이 다른 구에 비해 높고 도로는 좁고 부족해 울산에서도 가장 열악한 곳으로 통한다. 가장 번화가인 성남동 젊음의 거리 입구에는 긴급 출동해야 할 소방서가 수십 년 째 그 자리에 있는 등 개선해야 할 도시 환경이 산적하다. 다행히 몇 년 사이 구 시가지 전통시장에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등으로 근래들어 상권이 차츰 살아나는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 위안 거리다. 또한 참여 정부 때 결정된 혁신도시가 현재 중구 유곡동에 건설중이라 완공되면 중구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하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때때로 혁신도시가 자기 때문에 진척되는 듯한 보도자료를 내면서 매스컴을 탄다. 중구 주민들은 정치인들의 이같은 뜬구름 잡는 치적 홍보를 힐책했다.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문제, 생활고를 해결해달라는 것이다. 성남동 젊음의 거리에서 만난 한 젊은 주부는 "중구에 무슨 산업이 있나, 중구에 정치인이 있는지, 주민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봤는지 의문이다"며 "주민들의 실 생활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역 분위기는 보수의 본산으로 여겨지는 중구에서 올해 4·27재선거 때 한나라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에게 1300표 차라는 아슬아슬한 승리를 하면서 표출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한나라당이나 야당도 "민심이 요동친다"는 걸 뼈져리게 느꼈다.

재선거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박성민 구청장이 지난 6월 23일 "혁신도시건설사업에 따른 울산기상대 조기 이전을 청와대에 요구했다"고 한 내용이 역시 매스컴을 탔다. 그는 또 태화강변에 3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는 "1000석 규모의 음악당을 짓겠다"고 밝혔다. "정서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것도 일종의 행정서비스"라는 말과 함께다.

할매칼국수집에서 만난 30대 직장인은 "(음악당 건설) 그런 것 말고 주민에게 와 닫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일자리 만들고, 어려운 서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 70대 노인은 "노인연금이 지난해 8만 원에서 9만 원으로 오르더니 올해는 5월에 고작 1200원 오르더라"며 "1200원? 도로에 보도블록 깔지 말고 노인연금 1만 원 올리면 안되나"고 되물었다. 그는 "노인들이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곳은 병원 진료비와 약값"이라며 "아프지 않는 노인 있나? 제발 공사 벌이지 말고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길에서 만난 대학생은 "얼마전 이곳(성남동 젊음의 거리)에서 반값등록금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하던데, 그날 촛불든 사람이 50명도 채 안되더라"며 "학생이나 학부모나 자포자기 한 것 같다. 어렵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중구민들은 대부분 현실적이면서도 자신과 가족에게 실 이익이 되는 주문을 많이 했다. 공공시설 등 하드웨어보다 틀니 하나라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적인 복지 정책을 원하는 것으로 짐작됐다.

울산 동구 주민들의 관심사도 먹고사는 문제

▲ 울산 동구 방어동에 매월 1일, 6일자가 들어가는 날에 서는 '문현 5일장'. 이곳은 다른 자치구와 달리 지역주민과 지역상인, 노점상이 서로 동의해 장날 노점을 허용하고 있다 ⓒ 박석철


울산 동구 하면 현대중공업과 골리앗 투쟁이 떠오르는다.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된 1987년 이후 24년이 지난 현재 이 지역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현대중공업 정규직노동자의 임금이 급속히 상승하고, 반대로 정규직 수가 줄어든 대신 그 자리에는 절반 이상이 하청노동자로 채워졌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은 현재 '현중 정규직-하청·자영업자 등' 간의 소득 격차가 심해 지역사회의 최대 문제로 떠올랐다.

4·27재선거에서 당선된 민주노동당 소속 김종훈 동구청장은 이 문제에 접근해 당선됐고, 이 지역 역시 중구와 같이 민심의 변화가 감지됐다. 당선 두 달이 지난 현재 외면적으로는 큰 변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공무원 길들이기 논란을 빚은 구정지원단 제도를 없앴는가 하면 비정규직노동자센터 설립을 추진해 조만간 가동될 전망이다. 또한 한나라당 소속 전임 구청장이 강행하던 대왕암공원 바닷가의 고래체험장 토목공사도 용역 조사를 거쳐 폐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들 모두 김 구청장의 공약 사항이기도 하지만 예상외로 빠른 진행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의 정책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동구의회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현재 이런 김 구청장 정책에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고, 지역 일부 주민들도 고래체험장 건설 폐지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진보구청장이 일부나마 무상급식을 추진하고 있는데 반해 동구의 경우 "당장 추진이 어렵다"는 김구청장 말대로 답보 상태다.

동구 지역 주민들의 관심사도 역시 먹고사는 문제였다. 대다수 주민들은 물가고와 생활고를 하소연하고 있었다. 방어동 문현 5일장에서 만난 한 주부는 "외부에서 동구가 부자동네라고 할 때마다 화가 난다"며 "일부는 그럴지 몰라도 대다수는 상대적 빈곤감까지 겹쳐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정규직은 자녀 학자금까지 지원 받는데, 비싼 등록금과 (고교생 자녀)학비를 내는 날이면 억울한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현대중공업 정규직 직원인 한 주민은 "노조 집행부가 회사를 너무 걱정해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성과금이 늘지 않고 있다"며 "(정규직도) 오랫동안 고생해왔고, 일한만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현장에서 생선을 팔고 있는 40대 남성은 "이곳은 그나마 노점을 할 수 있게 허락해 다행이다"면서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격이라 힘들다"고 말했다. 한 50대 남성은 "구청장이 너무 노동자 위주로 나가는 것 아니냐"며 "고래체험장이 들어서면 동구에 돈이 많이 돌텐데..."라고 했다.

한 지역 주민은 "동구에 20년 째 살지만 현대예술관이 들어선 것 말고는 발전한 게 없다"며 "민주노동당 구청장이 당선되어도 마찬가지다, 얼마전 전하동 도로가에 보도블록을 다시 깔고 있더라, 지난해 공사한 것인데..."라고 지적했다. 일부 상인들과 주부들은 "진보구청장이 당선되고도 피부에 와 닿게 변한 게 없다, 팍팍한 서민들을 위한 획기적인 정책이 동구에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덧붙이는 글 이번 취재에 울산시민연대 김동일 활동가가 도움을 줬습니다. 이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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