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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가 명승이라니, 문제가 많네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온 사람들의 땅 남해 ③] 가천 다랭이 마을

등록|2011.07.03 10:22 수정|2011.07.03 13:59
자암 김구로부터 나온 일점선도라는 말

▲ 화전별곡 ⓒ 이상기


약천과 서포 외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유배문학자는 자암 김구와 후송(後松) 유의양(柳義養)이다. 자암 김구는 1519년부터 무려 13년간 남해에 유배되어 살았다. 그는 시, 부, 송, 책 등 모든 장르의 글에 능통했다. 그러한 글 중 남해의 유배생활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화전별곡」이다. 그는 섬생활, 유배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연을 즐기고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화전별곡」은 조선 전기 경기체가의 대표적 작품이다.

하늘가 땅 머리, 아득히 먼 한 점 신선섬 
왼쪽 망운산 오른쪽 금산, 봉내와 고내가 흐른다.  
산천이 기이하고 빼어나 유생, 호걸, 준사들이 모여들고, 인물이 번성하느니,
아! 하늘의 남쪽 경승지 경치가, 그 어떠한가.
풍류주색 즐기는 한 때의 인걸들이 또 다시 노래하니,
아! 나까지 몇 사람이나 되었던가.

天地涯 地之頭 一點仙島
左望雲 右錦山 巴川 봉내 高川 고내
山川奇秀 鍾生豪俊 人物繁盛
偉 天南勝地 景긔엇더닝잇고
風流酒色 一時人傑 再唱
偉 날조차 몃분이신고.

▲ 남해문견록 ⓒ 이상기


후송 유의양은 최초의 한글 기행문인 『남해문견록』을 썼다. 1771년 2월26일부터 7월30일까지 5개월여의 유배생활을 글 속에 표현하고 있다. 그는 금산에도 오르고, 용문사도 찾아가며, 농․어업 생산물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는 또한 풍속과 놀이 등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래서 『남해문견록』은 남해지역의 생활사 또는 일상사를 아는데 아주 중요하다.

유배체험을 할 수 있는 곳

소달구지인 함거를 타고 유배를 떠나는 장면은 건물 밖에서 보았다. 그렇게 해서 유배지에 도착하면 유배자들은 스스로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 다음 기약 없는 유배생활에 들어간다. 어떤 사람은 몇 개월 만에 유배가 끝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20년 이상 유배를 살다 그곳에서 죽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현지인화 되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시를 쓰기도 하고, 표문을 짓기도 하고, 상소문을 쓰기도 한다.

▲ 책을 읽고 있는 선비 ⓒ 이상기


유배체험실에는 이런 과정을 영상과 사진, 전시물을 통해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게 해놓았다. 백척간두에 선 유배객의 심정을 밧줄로 나타낸 것이 인상적이다. 이 밧줄은 실낱같은 삶의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방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선비의 자세에서는 꼿꼿한 결의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유배체험을 마치고 나오면 남해 12경과 함께 하는 포토존이 있다. 이곳에서 원하는 남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남해 12경 중 가장 유명한 것이 금산, 상주해수욕장, 남해대교다. 체험실을 나와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대나무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서포 김만중의『서포만필』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정말 명문이다. "자기 나라 말을 버려두고 남의 나라 말로 시문을 짓는다는 것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

암수바위에 전해지는 이야기

▲ 다랭이밭 ⓒ 이상기


유배문학관을 나와 찾아간 곳은 남면에 있는 가천 다랭이 마을이다. 우리 차는 남해읍에서 서남쪽으로 가다 연죽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연죽삼거리에서 서쪽으로 계속 가면 해안에 남해 스포츠 파크가 있다. 이곳은 연중 따뜻하고 자연환경이 좋아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장으로 쓰이고 있다. 차는 양지삼거리에서 평산진성을 지나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바래길 1코스로 들어선다.

바래길 1코스는 일명 지겟길로, 평산진성에서 가천 다랭이 마을까지 이어진다. 차는 몽돌해변을 지나 우리를 가천 다랭이 마을 주차장에 내려놓는다. 다랭이 마을은 주차장에서 바닷가까지 이어진 경사로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쉽게 말해 경사진 비탈에 논밭을 만들려니, 농토를 만들고 돌을 쌓아 평평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농토 주변에 자연스럽게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 암수바위 ⓒ 이상기


우리는 먼저 암수바위로 간다. 암수바위, 어느 자치단체에나 있는 신성한 곳이다. 이곳의 암바위와 숫바위 한 쌍은 5m 간격으로 서 있다. 이 지방에서는  암미륵, 숫미륵이라 부른다. 암미륵은 높이가 3.9m로 아기 밴 여인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형상이다. 숫미륵은 높이 5.8m로, 남성의 성기 형상으로 서 있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인이 숫미륵 밑에서 기도를 드리면 득남한다 하여 이 고장의 여인들 뿐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도 많이 다녀간다고 한다. 매년 음력 10월 23일에는 이곳에서 마을의 태평과 농사의 풍요를 비는 동제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처음 잡는 고기를 바위에 걸어 놓으면 고기도 많이 잡히고 사고도 방지된다고 전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 다산을 비는 일종의 서낭이었다.

다랭이 마을 한 바퀴 돌기

▲ 바닷가로 이어지는 바랫길 ⓒ 이상기


암수바위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바닷가로 내려가게 된다. 경사로를 따라 다랭이 농토가 만들어져 있는데 현재는 대부분 밭으로 쓰이고 있다. 옛날 쌀이 귀할 때는 논으로 사용되었겠지만, 기계화가 불가능한 좁은 논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대부분 밭으로 전환된 것 같다. 마늘, 감자, 보리 등을 수확하고 나서 뭔가 심었는데, 이제 겨우 잎이 나와 무슨 작물인지 잘 모르겠다.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서 보니 일부 다랭이 밭에 꽃을 심어 놓았다. 수국도 보이고, 라벤더도 보이고, 허브도 보인다. 더 아래로 내려가니 바다로 이어지는 다리도 있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간천(間川)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가천이라는 마을 이름이 이 간천에서 왔다는 얘기도 있다. 다리를 건너 바닷가에 이르니 바랫길로 연결된다. 나는 바랫길을 걸을 수 없어 멀리까지 시선만 한 번 준다.

▲ 가천 다랭이 마을 ⓒ 이상기


바다에는 광양에서 포항이나 일본 쪽으로 가는 큰 화물선들이 떠있다. 갯돌해변에는 여름 이 지역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은 있다. 이곳에서 마을을 올려다보니 마을이 저녁 안개 속에 포근하게 앉아 있다. 가천 다랭이 마을은 명승 제15호로 지정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농촌문화를 형성하는 경관이 아름다워 명승이 되었다고 한다.

논, 산림, 바다의 자연적 요소와 암수바위, 밥무덤, 설흘산(481m) 봉수대,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섬)와 같은 문화적 요소가 명승으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랭이논과 암수바위다. 산림과 바다는 대단한 게 없고, 서포의 유배지 노도는 상주면에 속하고 있다. 설흘산 봉수대는 마을과 가까워, 가천마을이 수자리 지키던 봉꾼들의 거주지였을 가능성은 있다. 밥무덤은 동제에 올린 밥을 한지에 싸서 보관하던 돌무더기다. 그 모양이 아궁이 같기도 하고 굴뚝 같기도 하다.

▲ 다랭이밭 ⓒ 이상기


그렇지만 명승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명승하면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경승지를 말한다. 이러한 경관적 가치 외에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더해져, 고유성, 희귀성, 특수성이 있어야 한다. 가천 다랭이 마을은 고유성, 희귀성, 특수성이라는 면에서는 평가받을 만하고 역사적 가치는 인정할 만하지만, 경관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에서는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명승의 첫 번째 조건이 경승일진대, 그 조건에 부족함이 많다는 것이다.

요즘 문화재청에서 보물, 명승, 천연기념물 지정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우선 좀 더 신중해지자는 것이다. 조건을 조금 더 까다롭게 하자는 것이다. 지정보다는 현상유지와 보존 그리고 관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명승과 천연기념물 지정은 관광과 직결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요구가 많은 것 같은데, 결정권자인 문화재청이 조건을 강화해 엄격하게 심사하고 문제점이 있으면 보완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자연산으로 저녁을 정말 푸짐하게

▲ 성게 비빔밥 ⓒ 이상기


저녁때가 되었다. 우리는 엥강만을 따라 남면 홍현리에 있는 씨엔스타 펜션으로 간다. 서양식으로 만들어져 테라스도 있고, 바다 쪽으로 경관이 정말 좋다. 2층짜리 건물이 7-8동쯤 있는데 우리는 그중 5개를 쓴다. 밥도 해 먹을 수 있고, 테라스에서 간단히 파티도 열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저녁이 예약되어 있어 짐을 간단히 정리하고 바로 저녁식사를 하러 간다.

인근에 있는 남해 자연맛집이다. 이곳은 남편이 장사를 하고 부인이 해녀로 일하기 때문에 항상 신선한 해산물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시킨 것도 성게비빔밥과 자연산 멍게다. 이들 모두 해녀인 안주인이 채취한 거란다. 그래서 그런지 음식값이 싸지는 않다. 성게비빔밥이 12,000원이고, 자연산 멍게가 10,000원이란다. 1인당 22,000짜리 저녁식사인 셈이다.

▲ 자연산 멍게 ⓒ 이상기


우리는 먼저 기본음식과 반찬으로 준비된 성게알, 멍게, 전어회, 소라 등을 맛본다. 그리고 밥과 함께 나온 성게알과 상추, 김, 된장, 깨소금을 섞어 비빈다. 순간 맛있는 비빔밥이 된다. 한 숫갈 입에 넣으니, 부드럽고 진하면서도 신선한 갯내음이 느껴진다. 정말 맛이 좋다. 그리고 중간 중간 먹는 멍게맛도 일품이다. 자연산이라 더 그런 것 같다. 문화유산도 보고, 자연유산도 보고, 음식문화도 체험하니, 이건 일거삼득이다. 역시 여행은 자주 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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