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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집에서 탈출... 은행 가면 너무 힘들었죠"

[인터뷰] 가마니 짜느라 학교 못다닌 황첨권씨... "글이 보이니 행복"

등록|2011.07.16 14:26 수정|2011.07.16 14:27

▲ 초등학교 교실에 앉아서 공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황첨권씨 ⓒ 김혜원


"열여섯 살 가을에 집에서 도망 나왔어요. 가난도 싫었지만, 가마니 짜기가 더 싫었어요. 부모님이 가마니 짜면 나는 옆 마무리를 했거든요. 머리를 땋듯 쫑쫑 묶어주는데 손에서 피가 나고... 정말 그거 싫어서 더 나왔어요. 하하하."

한창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나이에 부모님을 도와 가마니를 짜야 했다는 황첨권씨(55세).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유년기에는 농사도 많이 지어 잘 산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부모님이 품을 팔러 나간 사이에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해야 했던 맏딸이었다.

16살에 집에서 탈출, 그러나...

누구도 그녀에게 가족과 동생들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강요한 적 없지만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질 수밖에 없었다.

"시골에서 돈 될 일이 뭐가 있어야지요. 기껏해야 남의 집 품팔이 하는 것이 전부고 틈틈이 가마니랑 새끼줄을 꼬아서 판다고 해도 부모님과 동생 넷, 일곱 식구가 먹고 살기는 어려워 늘 허덕이는 생활이었어요. 상황이 그러니 공부는 생각도 못했어요. 친구들 학교 갈 때 난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열여섯이던 해의 가을.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봉재, 가발, 방직공장이 한창 번창하던 시기. 공장노동자는 시골 소녀들의 희망직종 1위였다. 마침 큰 도시 봉제공장에 다닌다는 동네 언니가 추석을 맞아 고향에 내려왔다. 언니에게 들은 공장생활은 희망 그 자체였다.

"추석에 내려온 언니에게 나 좀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어요.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하고 엄마한테 돈 2만 원을 받아서 무조건 집을 나왔지요. 그때부터 시작한 미싱 일을 마흔까지 했으니 오래했죠. 마음 같아서는 더 하고 싶었는데 몸이 아파서 그만 둘 수밖에 없었어요."

눈썰미도 있고 솜씨도 좋았던 그녀는 열심히 일을 배운 결과 6개월 만에 미싱사가 되었고 미싱사가 된 후로는 돈 버는 재미도 쏠쏠했다.

"시다일을 해서 처음 받은 월급이 5500원이었던가... 식권이 500원 했거든요. 처음엔 월급 받아서 밥도 못 먹었지요. 나중에 미싱사가 되었더니 2만 원을 주는데 그때도 밥값이 아까워서 아침은 굶고 점심 한 끼만 식권사서 먹고 저녁은 대충 국수 같은 거 삶아 먹고 그랬어요."

하루에 12시간 넘는 봉제 일을 하고 받은 월급은 고스란히 고향 부모님께 내려 보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아끼고 아껴 한푼이라도 더 보내려고 했지만 봉재공장 여공 월급으로는 부모님과 동생들의 가난을 해결할 수 없었다.

"동생 고등학교 갈 때 였어요. 애가 공장으로 나를 찾아 왔더라고요. 고등학교 가야하는데 입학금이 없다고... 그때 금반지를 끼고 있었거든요. 비상금이라 생각하고 장만 한 건데. 그거 팔아서 입학금하라고 줬어요. 나는 아니어도 동생 학교는 꼭 보내야 되겠더라고요."

봉재공장 다니며 동생들은 공부시켰지만 정작 본인은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첨권씨. 일을 하다보니 배움이 짧은 것이 더욱 불편했다. 그때 처음 가르치지 않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고.

"글 몰라서 힘들었던 삶, 부모님 원망했다"

"미싱은 눈 감고도 잘해요. 다른 건 몰라도 이 바닥에서 솜씨 하나로는 누구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배우지 못해서 성공을 못했어요. 봉재일을 하다가 샘플 만드는 일을 배웠어요. 보수가 훨씬 높은 일인데 글을 모르니 참 일하기 힘들더라고요. 거의 영어로 써서 만들어 달라고 보내오는데 뭘 알아야지요. 그래서 그림으로 외웠어요. 이렇게 생긴 건 '레드', 저렇게 생긴 건 '파이핑' 이렇게요. 너무 힘드니까 부모님 원망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 비문해 성인을 위한 분해교실이 열리고 있는 서울 전곡초등학교 ⓒ 김혜원


정말 먹고 살기 위해서 익힐 수 밖에 없었던 글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학교에서 배운 적 없어도 받침이 없는 글씨는 띠엄띠엄 읽고 쓸 줄도 안다. 놀랍게도 모두 통그림으로 외워서 사용하는 것이다.

"은행에 가면 가장 힘든 게 금액을 한글로 써야하는 거 에요. 돈을 찾으러 갔다가 한글로 찾는 금액을 써야 한다고 해서 그냥 집으로 돌아 온 적이 있어요. 그날 저녁 신랑한테 1부터 10까지 한글로 쓰는 걸 배웠어요. 다음날 은행가서 그대로 썼지요. 썼다기보다는 그린 거 에요. 글을 모르니까 다 그림으로 보이더라구요."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의 답답함을 누가 알까.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공부에 남다르게 매달렸던 것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배움에 대한 한 때문이었다.

"아들 초등학교 때, 남편이 아들 공부를 가르칠 때면 나도 옆에서 어깨너머로 슬쩍 슬쩍 보고 배웠어요. 아들 몰래 써보기도 하고... 아들 어릴 땐 가정환경조사서에 중학교 졸업이라고 거짓말로 쓰기도 했죠. 내가 부끄럽기보다는 아들이 다른 친구들 앞에서 창피할까봐 거짓말을 했어요. 하지만 아들 고등학교 때 솔직히 말했어요. 엄마는 이런 이런 상황 때문에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고요."

어린 시절에는 살림 밑천이라는 맏딸의 책임을 다하느라 하지 못했던 공부. 어른이 되어서 해보려고 했지만 자식 키우고 가정을 꾸려 나가느라 기회도, 여유도 없었다. 마음에 늘 한이 되어 검정고시 학원도 다녀 보았지만 형편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여유가 생겨서 동네 검정고시학원에 다녔었지요. 몇 개월 다녔는데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금방 느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몇 개월 하다보니 검정고시반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130만 원이나 내야 한다는 거예요. 형편도 어려운데 130만 원씩 들여서 어떻게 해요.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꼭 10년 만에 다시 공부하는 거예요."

황씨도 우리의 다른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을 위한 일은 가장 마지막이었다. 부모님이 먼저였고, 형제가 먼저였고, 남편이 먼저고, 자식이 먼저였다. 그들의 욕구를 다 채워준 이후에야 자신을 생각하다보니 오십이 넘도록 그렇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지 못하고 마음에 한으로만 담아두고 있었다.

그런 황씨에게 복음과도 같은 뉴스가 들려왔다. 일상처럼 틀어 놓았던 TV 아침방송에서 비문해 성인을 위한 한글교육프로그램인 문해교실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책 많이 읽고 느낀점을 글로 쓰고 싶다"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몰라요. 그 뉴스를 보는 순간 '아, 저거구나' 했지요. 그리고 바로 알아봤어요. 제가 남양주에 살고 있어서 경기도 교육청에 알아보니까 경기도는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다면서 서울시교육청에 알아보라더라고요. 글자를 조금 알아도 무조건 기초부터 하자고 했어요. 기초부터 배워야 할 것 같아서요."

▲ 배움에 대한 황첨권씨의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 소감문. ⓒ 김혜원


4월초 입학식을 하고 2개월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 황씨는 책 한권을 떼었다면서 자랑스럽게 자신의 소감을 적어 놓은 마지막 장을 열어 보여준다. 연필로 눌러 정성들여 쓴 그녀의 글은 그 어떤 작가의 화려한 명문보다도 감동을 준다.

선생님 감사함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게 데줄은 생각도 못햇다
그런데 공부를 하게 데였다.
그에서 생각만해도 정말 행복하다
나는 다시태여란 거만가다
정말 하고 십은 공부 여기에 학교 가은길이 정말 행복하다
소망의 나무 책 한 권을 다 마치고
나이 나도 할 수 이구라해서 그에서 희망이 생겨다
황첨권 이은 세상에서 가장 행우나다.  감사함니다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내가 이렇게 공부를 하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것도 학교에 와서요. 학교 책상이랑 의자에 앉는 자체가 너무 신나요. 선생님, 선생님하고 부르는 것도 너무 너무 좋아요. 더 신기한 건 몇 개월 하지 않았는데도 밖에 나가면 글자가 보인다는 거예요. 얼마 전에는 동사무소에 가서 전출 이유서도 내가 직접 썼다니까요." 

황씨가 이렇게 신이 난데는 남편과 아들의 지원도 한 몫을 했다. 학교 가는 날이면 언제나 전화로 '잘 다녀와라' '공부 잘하고 있느냐'고 응원을 보내는 남편. 늦 공부를 시작한 엄마를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해주는 아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응원이 있기에 55세 초등학교 1학년 황첨권씨는 기쁘고 행복하며 자랑스럽다.

"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볼 작정이에요. 초등학교 끝나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갈 수 있으면 갈 거예요. 책을 많이 읽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책을 열어봐도 무슨 뜻인지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지만, 글을 배우고 나면 책을 많이 읽고 내가 읽은 느낌을 글로 써보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무학력 성인을 위한 문자해득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곽노현)은 지난 4월부터 초등학교 15곳, 문해 교육기관 16개 기관 총 31개 기관에서 초등학력 취득이 가능한 문자해득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무료로 운영되며 외부기관에 따라 3만 원의 수업료를 받는 곳도 있다.

만18세 이상 저학력, 비문해 성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각 단계 중 자신의 수준에 맞는 단계부터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고, 3단계부터 이수할 경우 최소 1년 만에 초등학교 졸업학력 취득이 가능하다.

수업은 한글과 초등 1∼2학년 과정을 배우는 1단계와 초등 3∼6학년 교과를 반영한 2·3단계가 있으며 각 단계의 이수 기간은 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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