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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에는 사람과 역사가 빠져 있다

[포토에세이- 강정마을 ②] 해군기지가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인가?

등록|2011.07.05 18:00 수정|2011.07.05 18:00

강정 앞마다강정마을 앞바다의 등대,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 본다면 무슨 의미를 가진 여행일까? 이곳은 제주올레 7코스와 접해있다. ⓒ 김민수


2007년 제주올레 1코스 개장 이후 2011년 제주올레 18코스가 개장되기까지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공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2006년 2월 제주도를 떠났으니, 올레길은 내가 떠난 후에 생긴 셈이다. 서명숙씨의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에 몇 줄이지만 종달리 이야기를 하면서 내 이름 석 자가 거론되기도 했고,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본부장이기도 했으니 전혀 모르는 사이는 아닐 것이다.

강정포구강정포구로 돌아오는 배 ⓒ 김민수


나는 이미 제주도를 떠나온 사람이기에 가타부타 말할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제주 올레길을 시발점으로 전국 각지에 올레길이나 둘레길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이전의 여행과는 다른 여행이 자리 잡아 가니 좋았다. 딱 그 정도의 관심이었다.

강정마을평화우체통, 평화의 염원을 담은 편지를 담는 우체통 ⓒ 김민수


그러나 강정마을을 방문하여 올레 7코스 표시를 본 후, 그냥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게 하는 것만으로 제주올레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역에선 제주 올레길에 사람과 역사가 빠져 있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는 어떠한 의견도 발표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강정마을과 이어지는 제주 올레길 7코스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개인 의견을 표명하긴 했으나, (사)제주올레는 해군기지가 '정치적인 문제'라는 이유로 공식 의견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람과 역사가 만나는 길은 또 한편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조형물전복의 모양을 형상화한 조형물 ⓒ 김민수


난감했다. 당연히 사람과 역사가 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편향된 정보만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면 그것도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여러 정황이 이해가 된다. 그냥, 그렇게 알맹이가 없는 또 다른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길이었구나! 아름다운 풍광, 그것만 전할 수도 있지만 좀 더 깊이 있는 여행길이 되려면 역사와 사람이 빠져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제주해군기지반대집회7월 2일 오후 3시부터 제주시청 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 김민수


지난 2일 강정마을을 뒤로하고 제주시청 앞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했다. 작은 잔치, 그곳에는 평생 강정마을에서 살아온 흔적이 주름진 구릿빛 얼굴에 새겨진 주민들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환경운동가들이 함께했다.

나는 도지사다그 말에 '개뿔'이라고 한다. ⓒ 김민수


해군기지 반대집회집회를 마치고 거리행진에 나서고 있다. ⓒ 김민수


'나는 개뿔 도지사다!'라는 그림을 보면서 우근민 현 도지사와 전 김태환 도지사의 정치적인 행보가 어떠한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미 구렁텅이에 발을 담갔으니 뺄 수 없는 상황인 듯하고, 제주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영달을 위해 달려갈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 겹쳐지면서 우리네 정치구도를 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화의 섬을 주창하면서, 평화를 위협하는 해군기지를 짓고야 말겠다는 발상,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겠다면서 강정마을과 같은 소중한 곳에 해군기지를 짓겠다는 모순적인 발상에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의 생각 없음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구름UFO를 닮은 구름 ⓒ 김민수


아름다운 풍광만 담으려면 얼마든지 담을 수 있다. 강정마을을 돌아 나올 때 길가에 피었던 '국화잎아욱'이라는 작은 꽃이 떠올랐다. 그가 풀섶에서 "꽃 한 송이도 건들지 마라!"고 외치는 듯했다. 저 풀꽃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싶어 서글프기도 했다.

강정마을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깃발들 ⓒ 김민수


집회를 마치고 천 년의 섬 비양도가 보이는 한림으로 가는 길, 한라산 백록담 위로 UFO(유에프오)를 닮은 구름이 떠있다. 현상만 보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제주. 그러나 그 속살을 보면 너무 가슴 아프고, 그 아픔에도 면면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빠져버린 올레길에 대한 아쉬움이 해군기지에 맞서 싸우는 강정마을 이들의 절절한 마음만큼이나 가슴을 쓰리게 한다.

국화잎아욱강정마을 도로변에 피어있던 꽃 ⓒ 김민수


평화의 섬에서 평화가 난도질당하고 있는데, 노래만 부를 것인가? 그런 아름다운 노래가 뜨거운 햇살 내리쬐는 아스팔트 위에서 외치는 구호보다 더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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