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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 '디지털 교과서 도입' 황당한 이유

[주장] 교과부 추진하는 '스마트 교육' 현실감 제로... 시급한 교육문제부터 챙겨야

등록|2011.07.05 16:58 수정|2011.07.05 16:58
얼마 전부터 특판 행사 기간이라며 스마트폰을 구입하라는 스팸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온다. 아무런 대꾸 없이 그냥 끊어버리는 게 너무 매몰차게 느껴져 상담원의 기계적인 말을 다 듣고 난 후 한마디 건네게 된다. 기분 상하지 않도록 나름 정중히 거절하려는 노력인데 철없다는 듯 되레 가르치려 든다.

상담원이 어떻게 설득을 하던 내 답변은 한결 같다. "5000만 국민이 모두 스마트폰을 마련하게 되면 그때 구입할게요." 언젠가는 손에 쥐게 될 날이 오리라 생각하지만, 지금 당장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을 게 많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

휴대전화 때문에 가족들과 친구들 전화번호조차 기억 못하게 됐고, 내비게이션 차에 달고 나서부터 지도 읽는 법을 시나브로 잊게 돼 스마트폰이 두려운 거다. 그렇게 말하고 조심스레 끊으려 했더니, 상담사는 지금도 구입 시기가 늦은 거라며 자상한 말투로 '세상물정'을 일러주었다.

"사장님, 바야흐로 스마트 시대입니다. 다양한 앱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얼마 안 있으면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게 가능해지는 세상이 될 겁니다. 멍하니 손 놓고 있다가는 자칫 뒤쳐질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에 발 빠르게 적응하셔야죠. 스마트 시대에 스마트폰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교과부 2015년까지 '디지털 교과서' 도입... 현실감 없는 정책

▲ 수능모의고사 2교시 모습 (자료사진) ⓒ 김행수


가히 '스마트'가 대세인 모양이다. 학창시절 교복 이름인 줄만 알았던 용어가 컴퓨터, 휴대전화에서부터 냉장고, TV, 심지어 건물 이름에까지 애용되고 있다. 그러더니 이제는 학교 울타리를 넘어 들어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 스마트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며, 우선 2015년까지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교실에서 종이책이 퇴출되는 셈이다.

아이들의 책가방은 사라지고, 교실 내 개인 사물함에는 종이책 대신 태블릿 PC가 들어있게 될 테고, 교실마다 스마트 책상과 빔 프로젝터 등 첨단 기자재가 설치돼 어쩌면 책상과 칠판, 분필 등은 박물관에 전시될 운명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교과부의 계획대로라면 상상 속에서나 꿈꿨던 사이버 교실이 머지않아 현실로 나타나게 될 모양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IT 기술 강국일진대 그 정도 교육환경 바꾸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들은 물론, 휴대전화나 컴퓨터가 없으면 단 하루도 못 사는, 이른바 IT 세대 아이들조차 정부의 스마트 교육 정책에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과문한 탓인지, 지금의 우리 교육이 '하드웨어' 때문에 문제였던 적은 거의 없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교육 정책 입안자들의 현실감이 제로라는 지적이 많다. 정책의 추진 배경과 구체적인 내용이 상충되는 게 다반사고, 정작 어떤 일이 시급하고 중요한지에 대한 정책적 판단이 학교 현장의 인식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스마트 교육 정책이 그 대표적인 '황당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느닷없이 스마트 교육을 추진하겠다는 배경이 궁금하다. 어느 국가정보화전략위원이 쓴 스마트 교육 취지문을 읽었다. 그는 개인의 학습을 맞춤형으로 구현하고 집단 지성과 지식의 공유와 협업을 가능하게 해 아이들마다의 창의성을 북돋울 수 있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듣기 좋은 말만 열거해 홍보하는 게 정책의 '취지문'이라지만, 이건 경쟁지상주의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현 정부가 내놓기에는 여간 민망한 게 아니다.

'짝꿍'이 사라지고 오로지 넘어서야 하는 '경쟁자'만 남은 교실, 여전히 수행평가 1, 2점에 울고 웃으며 노트 빌려달라는 말조차 꺼내기 힘든 삭막한 분위기를 정부는 정녕 모르는 걸까. 하물며 일제고사 성적표를 받아들고 학교와 자신의 전국 서열을 따져보는 아이들의 끝 모를 경쟁심을 앞장서서 부추겨놓고 협동학습과 창의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한 편의 슬픈 코미디다.

국영수 중심 입시교육 개혁 않고선, IT 기술 도입 무의미

세부적인 현실 진단은 더욱 가관이다. 교과 교실제 수업이나 선택 교과제 운영 등 학생 중심의 학교 정책이 다양화된 것에 견줘 교실 현장의 수업은 변화가 더디다고 나무란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정책의 변화에 교사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거칠게 말해서, 정책의 실효성은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않은 채 애꿎게 교사들만 탓하는 형국이다.

정부가 실적 삼아 자랑하는 정책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부디 짬을 내 한 번만이라도 살펴보길 바란다. 시큰둥한 기성세대 불러다 모아놓은 하나마나한 요식행위 공청회 따위는 집어치우고, 과연 공교육의 목표에 잘 부합하는지, 무엇보다 그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해하는지 직접 물어보라는 거다.

기실 얼마 전 정부가 야심차게 학교마다 보급했던 전자 칠판과 전자(CD) 교과서 활용 수업에 대한 피드백은 제대로 해보았는지 의심스럽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입되는 첨단 기자재가 과연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소기의 교육적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와 반성 없이, 마치 학교와 아이들을 첨단 IT 기술 적용의 '마루타' 삼는 듯하다.

교과 교실제와 선택 교과제 확대 시행은 학생 중심의 과정 운영이라는 선의와는 달리 우려하던 대로 교과목의 획일화를 부추기고 있다. 입시와 관련이 없거나 적은 교과목은 학교 교육과정에서 퇴출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지금껏 보아왔듯, 국영수 중심의 입시교육 자체를 손대지 않고는 그 어떤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부작용만 생길 뿐이다.

관료주의에 실적주의가 덧씌워진 결과일까. 정부는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을 만들어 보급하면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게 되고, 창의적체험활동운영시스템(에듀팟)을 갖춰놓으면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라 여긴다. 태블릿 PC 등을 이용해 디지털 교과서로 '이러닝(E-learning)'하게 되면 '스마트 인재'가 양성될 것이라고 믿는 이 단순함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아이들이 기존의 교실 수업을 획일적이고 답답하게 느끼는 건 그들이 스마트 기술에 길들여져서가 아니다. 입시 문제집을 태블릿 PC 위에서 푸나, 칠판에서 분필로 푸나 무슨 차이일까. 아이들에게 있어서 입시 문제집이 문제지, 태블릿 PC냐 칠판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더욱이 국영수 문제를 태블릿 PC를 이용해 푼다고 해서 창의력이 길러질 리 만무하다.

정부, 학벌구조, 입시제도 근본적 개혁에 올인해야

▲ 2011학년도 수능시험이 100일 앞으로 다가온 2010년 8월 9일 밤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방학 중임에도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정부의 발표대로, 체험 중심, 문제해결능력 중심, 협동학습 중심으로 교육환경을 진정 바꾸고자 한다면 스마트 교육 운운하기 전에 학벌구조와 입시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에 '올인'해 달라. 백 보 양보해서, 스마트 교육 정책이 잘못된 방향이라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교육현실에서는 그다지 시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장기적 과제일 뿐이다.

수업에 많은 사진과 동영상자료를 활용하고, 시험을 태블릿 PC를 이용해 출제하고 평가한다고 한들, 그것이 교육의 성공 사례라 말할 수 있을까. 되레 그 국가정보화전략위원이 같은 글에서 말한 '핀란드의 경우 교육의 성공 사례가 자국의 관광산업에 크게 기여했다며, 스마트 교육이 새로운 교육 시장을 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더 솔직해 보인다. 오로지 '경제'만을 외치는 정부다운 발상이다.

교육은 무릇 얼굴을 맞댄 만남을 통한 정서적 교감을 전제로 한다. 부디 교육을 돈과 효율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렇잖아도 교사의 자존감을 돈(성과급)으로 훼손하고, 급기야는 학교조차도 서열을 매겨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눈에는 핀란드의 행복한 아이들은 안 보이고, 교육모델을 직접 찾아가 배우려는 이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만 보이는 모양이다.

스마트 교육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사들이 변화에 동참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기획과 입안 과정에서 현장 교사들의 의견이 과연 얼마나 반영됐을까. 주변엔 생뚱맞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교사들이 대부분이고, 심지어는 우리나라 대기업들 또 살판났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조차 곳곳에서 들린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쓰이고 있는 생활기록부를 포함한 업무포털과 에듀팟 등 시스템은 물론이고, 교실마다 설치된 프로젝션 TV, 스마트 교탁, 교사들의 노트북 등 모든 것들이 대기업 제품들이다. 그나마 설치된 지 얼마 안 된 것들인데다 아직 제대로 활용조차 못해본 게 태반인데, 다시 바뀐 정책에 맞게 새로 교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든다.

학교에는 이보다 시급한 일이 너무나 많다. 도시의 과밀 학급 문제, 농어촌 지역의 폐교와 그로 인한 공동화 현상을 우선 챙겨야 하고 다문화 가정과 장애우,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도 절실하다. 사교육 절감을 위한 방과 후 교육도 손봐야 하며, 최근 들불처럼 번진 대학등록금 문제 해결과 무상급식을 비롯한 의무교육의 내실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스마트 교육 운운하는 것은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진정 우리 교육의 현실을 걱정하고 미래를 생각한다면, 정부는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 솔직히 말해서, 지금 학교는 스마트 교육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판국이다. 제발 정부의 현실감 있는 정책을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서부원 시민기자는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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