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에 '눈 뜬' 열네살...구태의연한 독후감은 가라!
[서평] 대구 북동중 1학년 6명이 펴낸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
▲ 중1 학생들이 쓴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의 표지. "열네 살, 서평에 눈을 뜨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 한티재 출판사
'눈을 뜬다'라는 말이 있다. 철학에 눈을 떴다, 역사에 눈을 떴다, 요리에 눈을 떴다… 식으로 쓰이는데, 어떤 사람이 특정한 분야에서 수준급 경지에 올라섰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동원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물론 "심봉사가 '눈을 떴다'"고 할 때의 '눈을 떴다'와, "김철수가 역사에 '눈을 떴다'"고 할 때의 '눈을 떴다'는 그 의미가 서로 다르다. 심봉사는 육체의 눈을 떠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고, 김철수는 인식의 눈을 떠서 역사의 의미를 날카롭게 헤아릴 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열네 살, 서평에 눈을 뜨다'라는 표현은 후자의 경우이다. 14세 아이들이 잘 알지 못하던 서평 분야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실제로 그런 글을 쓰기도 하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권윤한 외 5인 저, 한티재 출판사 펴냄)의 학생 저자들이 책읽기를 통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세상'은 (심봉사가 본 눈앞의 '세상'이 아니라) '자연', '사회', '삶' 등의 진정한 의미를 가리킨다.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는 책읽기를 통해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게 된 중1 아이들이 그 깨달음을 서평 형식으로 표현한 다음, 그 서평들을 모아 출판한 책이다. 정말 열네 살 아이들이 서평을 쓸 수 있을까? 대구 북동중학교 1학년 권윤한, 윤다은, 이채영, 장은아, 정우성, 홍소영, 이렇게 여섯 아이들이 읽고 평가한 책들은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연어>, <죽음의 수용소에서>, <동물농장>, <길모퉁이 행운돼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두 친구 이야기>,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기적의 섬으로>, <어린 왕자>, <갈매기의 꿈> 들인데, 과연 어떤 서평을 써놓았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종합 독서'로 세상을 읽는 눈 키워
물론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는 사계의 전문가가 같은 분야의 다른 전문가가 쓴 책을 평가하는 기존의 '서평'과는 다르다. 상식적으로 중1 학생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일 리가 없으니, 애당초 그런 서평을 쓰고 또 책까지 발간할 이유도 없다. 이 책이 단순한 독후감 쓰기를 뛰어넘는 새로운 독서교육, 글쓰기교육의 지평을 보여준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에 서평을 실은 아이들은 줄거리나 저자의 약력을 소개하고, 이어 느낀 점과 앞으로의 각오 등을 나열하는 구태의연한 독후감은 쓰지 않는다. 그 대신 읽은 책의 내용, 그것과 연관이 있는 본인의 경험 및 사회 현상, 다른 책이나 언론매체에서 본 주장, 본인의 생각들을 두루 엮어내는 '종합 독서'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내는 글쓰기 훈련의 전범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저자 중 한 명인 이채영 학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서평이 책을 읽고 그 책을 통해 새롭고, 책과 다른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글을 이용해 생각나무나 마인드맵을 그린다는 느낌이 들었죠. (중략) 책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싶고, 책을 통해서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면 '서평 쓰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좀 어렵겠지만 쓰다 보면 어느새 책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거든요. 서평은 나를 보여주는 또 다른 거울이라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는 '학생 저자 10만 양성을 위한 대구시교육청 책쓰기 프로젝트' 사업으로 채택되어 발간된 책이다. 이 책은 표지에 우물 그림을 담고 있다. 학생 저자들이 표지에 우물 그림을 넣은 이유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세상을 좁게 생각하다가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 우물 안에서 나와 세상을 넓게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의 경우를 본받아, 청소년들이 종합 독서와 서평 쓰기 훈련을 통해 '세상'을 보는 깊고 넓은 눈을 갖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다> (권윤한 외 5인 지음, 한티재 출판사, 2011년,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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