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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아이들은 점심을 펌프물로 때웠다

동화작가 김종만 사계절 동화 <봄 여름 가을 겨울> 펴내

등록|2011.07.06 16:01 수정|2011.07.06 16:01

동화작가 김종만김종만(54)이 동화집 <봄 여름 가을 겨울>(고인돌)을 펴냈다 ⓒ 이종찬


"'아 따가워! 벌이다 벌!'
우리는 풀을 뜯어 양팔로 홰홰 저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달아났다. / 땅벌은 지독한 놈들이라 끝까지 따라오곤 했다. / 한참 뛰다가 보니 땅벌이 더는 따라오지 않았다. 셋은 한 자리에 다시 모였다... 수명이 형은 대포화약을 벌집 앞에 모아놓고 성냥을 켜서 불을 붙였다. 대포화약은 '피시시식' 소리를 내며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연기를 뿜어댔다." - '땅벌 집 튀기기' 몇 토막

빌딩과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찬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들과 야트막한 산 사이로 들판이 실뱀처럼 꼬물거리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들 마음은 무엇이 같을까. 도시에서 어물전을 하는 집에서 태어나 물고기를 줄곧 바라보며 자라나는 아이들과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 마음은 무엇이 다를까.

글쓴이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적어도 초등학교까지라도 농촌이나 어촌에서 키워야 한다고 못 박는다. 왜? 천박한 물질문명과 감옥 같은 시멘트벽에 갇힌 도시가 곧 아이들 열린 마음을 닫게 만드는 '지옥'이요, 풀과 나무, 벌레와 물고기, 산과 들, 물을 자연스럽게 동무로 삼을 수 있는 시골이 곧 아이들 열린 마음을 더욱 활짝 열리게 만드는 '지상낙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수락산 자락에서 태어나 한번도 그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는 동화작가이자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종만도 마찬가지다. 그가 어릴 때 시골에서 겪었던, 지금은 잊혀져가는 그 이야기를 쓰고 있는 까닭도 자연이야말로 아이들에게는 끝없는 동심을, 어른들에게는 여유와 낭만을 주는 21세기 유일한 구원처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뛰어놀아야 머리도 쑥쑥 크고 철이 든다

김종만 동화집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책에는 김종만이 태어나 어린 날을 보낸 성골마을 아이들과 어른들 이야기가 실려 있다 ⓒ 이종찬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이 땅의 어른들이 건강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 이야기입니다. 그 시절에는 늘 혼자 노는 일 없이 모여서 함께 일하고, 놀고, 공부했죠. 서로 이기려고 경쟁하는 일 없이 오순도순 살던 동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답니다. 어린이 여러분도 이 동화를 읽고 앞으로 올 따스한 세상을 꿈꿔 보세요. 그러면 어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세상이 성큼 눈앞에 펼쳐지겠죠." - 김종만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동화작가인 김종만(54)이 동화집 <봄 여름 가을 겨울>(고인돌)을 펴냈다. '살아 있는 글읽기'라는 앞글이 붙은 이 동화집은 계간으로 나오는 <어린이문학>에 연재한 동화를 한데 묶은 책이다. 이 책에는 김종만이 태어나 어린 날을 보낸 성골마을 아이들과 어른들 이야기가 실려 있다.

'봄 동화-꽃샘추위는 유난히 길었다', '여름 동화-그리운 저수지 둑', '가을 동화-가을이 왔네, 가을이 왔어', '겨울 동화-그 긴 겨울에 벌어진 일들'에 실려 있는 '봄이 늦게 찾아오는 성골마을', '여름엔 논으로 둔갑하는 저수지', '고추밭에 불났네', '도깨비한테 끌려간 수명이' 등 모두 15편이 그것.

김종만은 지난 6월 28일 저녁 6시 마포 태복빌딩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아이들은 사계절 자연 속에서 동무들과 신나게 뛰어 놀아야 몸도 마음도 머리도 쑥쑥 크고 철이 든다고 생각한다"라며 "그래서 어릴 적 겪은 이야기를 거울삼아 재미있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장편동화를 썼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야기가 펼쳐지는 성골마을은 저수지가 마을 중심에 있는 농촌"이라고 귀띔한다. 그는 "마을 저수지를 중심으로 종만이, 광석이, 병석이, 근우, 수명이, 명선이 등 한동네 아이들은 자연을 놀이터 삼아 철따라 온갖 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어울려 놀며 성장했다"라며 "때로는 배꼽 잡는 악동 짓을 하지만 때 묻지 않는 순수함으로, 물질문명과 학습경쟁에 찌들어 사는 요즘 아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추억으로 남은, 우스꽝스럽고도 가슴에 맺히는 이야기

"학교에서 점심 도시락을 못 싸온 아이들은 항상 배가 고팠다. 시내 쪽 아이들은 보리밥이지만 도시락을 싸오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둔배미, 성골, 만가대, 방아다리 이런 마을 아이들은 도시락 싸오는 아이들이 드물었다. / 학교에서 옥수수빵을 나눠주었지만 항상 턱도 없이 부족했다. / 그래서 점심시간이면 아이들은 펌프로 물을 퍼 올려서 물배를 채우곤 했다." - '배고픈 아이들' 몇 토막

이 동화집에 실린 봄 동화는 봄이 더디게 찾아오는 성골마을에서 아이들이 고무다리처럼 가라앉았다 올라오곤 하는 얼음판에서 썰매를 타며 노는 이야기와 배가 너무 고파 자연이 주는 음식인 송키와 싱아, 갓 자란 칡넝쿨 순, 찔레순 등을 먹으면서 허기를 달래는 이야기, 삶은 달걀을 들고 봄 소풍 가는 이야기가 어릴 때 추억을 부르고 있다.

여름 동화에는 여름이 되면 논으로 바뀌는 저수지에서 미꾸라지와 붕어, 민물새우를 잡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매듭을 묶은 풀에 걸려 넘어지는 근우 할아버지 이야기, 땅벌에 쏘인 뒤 땅벌집에 화약연기를 뿜어 땅벌 애벌레를 잡아 구워먹는 이야기, 집에서 키우던 토끼가 새끼를 낳은 뒤 죽은 이야기,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며 밥을 짓고 집안일 돕는 이야기 등이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에 맺히기도 한다. 

가을 동화는 고추밭에 고추들이 붉게 물들어 고추걷이를 하는 이야기, 과수원 똥통에 빠진 잊지 못할 이야기, 추수 이야기, 막걸리 먹고 모두 뻗은 이야기 등이 흑백필름으로 펼쳐진다. 겨울 동화에는 숨바꼭질을 하다 사라진 동무 이야기, 썰매를 하나씩 만들어 썰매놀이를 즐기는 이야기, 연 날리는 이야기 등이 시린 손을 호호 불고 있다.

본문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야기가 펼쳐지는 성골마을은 저수지가 마을 중심에 있는 농촌”이라고 귀띔한다 ⓒ 고인돌


도심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자연이 선물하는 맛과 멋

"밤 늦게까지 멍석을 짜던 아버지가 '옥수 엄마, 무 좀 깎아보소' 하고 말하실 때가 제일 좋았다. 석유등잔 밑에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다가 엄마가 커다란 무를 꺼내다 부엌칼로 써억써억 무를 깎으면 온 식구들이 모여들었다. / 겨울밤에 먹는 거라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먹는 비빔국수가 최고다." - '겨울에 하는 일과 놀이' 몇 토막

그래. 글쓴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도 그랬다. 아버지는 찬바람이 문풍지를 파르르 울리는 겨울밤이면 안방 아랫목에 앉아 새끼를 꼬다가 어머니에게 생무나 생고구마를 깎아 달라 할 때가 많았다. 그때면 글쓴이 오남매도 동화에 나오는 옥수네 집 식구들처럼 안방으로 우루루 몰려들어 달착지근하면서도 사각사각 씹히는 하얀 생무와 노오란 생고구마를 이가 아프도록 씹어 먹었다.

동화작가 김종만이 펴낸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도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자연이 주는 맛과 멋을 한아람 선물한다. 가난함 속에서도 살가운 정을 듬뿍 나누는 시골마을 아이들과 어른들, 그 깨끗하고 소박한 삶을 통해 물질문명에 이리저리 처박히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른 길, 그 길은 곧 자연에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아동문학가 김종만은 1957년 경기도 의정부 수락산 자락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 마을에서 살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농사도 짓고 목공예를 하며 우리 민속놀이를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이들 민속놀이 100가지>, <북녘 아이들 놀이 100가지>, <잘 놀아야 철이 들지> <사격장 아이들>이 있다. 그린이 이병원은 그림책 <그래, 그래. 네 소원을 들어주마>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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