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동성애로 자살?... 차이콥스키 죽음 둘러싼 의문들

[리뷰] 제러미 시프먼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등록|2011.07.07 11:33 수정|2011.07.07 14:22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겉표지 ⓒ 포노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제대로 접했던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음악시간에 음악실에서 선생님이 감상을 하라면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크게 틀어주었었다. 네 개의 호른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도입부와 그 사이로 파고드는 강렬한 피아노 음들.

그때 내 옆에 앉았던 친구는 그 피아노 소리를 듣고 "꼭 장작 떨어지는 소리같지 않냐?"라고 나에게 말했었다. 그 말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나는 정신없이 그 협주곡에 빠져들었을 뿐이다. 그때까지 하드록에 심취해있던 나에게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은 그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 협주곡을 듣던 나의 심정은 마치 계시를 받은 사람의 심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차이콥스키에게 시쳇말로 꽂힌 셈이다. 시내로 나가서 차이콥스키의 음반을 사들이고 차이콥스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개봉했던 영화 <차이코프스키>를 보기 위해 일요일에 혼자서 호암아트홀에 가기도 했었다.

러시아의 그림같은 경치위로 겹쳐지는 잊지 못할 차이콥스키의 선율들. 그 영화의 인상은 <닥터 지바고>에 버금가는 감동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차이콥스키와 레드 제플린에 동시에 빠져들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약간 분열적인 음악감상을 했던 것도 같다.

차이콥스키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들

그렇게 시작된 차이콥스키에 대한 애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고전음악가는 차이콥스키, 가장 좋아하는 교향곡은 차이콥스키의 <비창>, 가장 좋아하는 협주곡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 가장 좋아하는 발레음악은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뭐 대충 이런 식이다.

구체적으로 차이콥스키 음악의 어떤 면이 나를 사로잡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고전음악가의 작품들은 그리 많이 들어보지 못했기에 비교하지도 못하겠다. 그런 것을 비교분석할 만한 능력이 나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차이콥스키를 떠올릴 때마다 러시아가 연상된다. 차이콥스키의 음악만큼 러시아의 광활한 대자연에 어울리는 것이 또 있을까. '러시아를 여행하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이 시작된 것도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제러미 시프먼의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을 펼치면서 차이콥스키와 연관된 이런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리고 차이콥스키의 삶이 어땠는지도 하나씩 생각났다.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결혼생활에 실패했고, 폰 메크 부인이라는 강력한 후원자 덕분에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았고, 그런데 차이콥스키는 어떻게 죽었더라?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차이콥스키는 식당에서 끓이지 않은 물을 마신 뒤에 콜레라에 걸려서 53세의 나이에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동성애로 고민하다가 자살했다고 한다. 한술 더떠서 젊은 시절의 동급생들로부터 자살을 '강요' 받았다는 설도 있다.

그가 죽은 지 1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문제는 논란거리다.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의 저자는 자살에 대해서 상당히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러시아 음악가가 경력의 정점에 서있을 때 자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살 강요' 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당시 동성애는 러시아에서 흔한 일이었기에 법정에서도 관대하게 눈 감아주는 편이었다. 황제를 포함한 수많은 고위직이 차이콥스키와 그의 음악을 옹호하고 있었다. 그런 든든한 '빽'이 있는 사람이 자살을 강요받았다고 해서 그걸 실행으로 옮길 리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차이콥스키가 죽자 황제는 직접 장례비를 대겠다고 요구할 정도였다.

아무튼 차이콥스키가 콜레라로 죽은 것은 사실이니까, 만일 그가 실제로 자살했다면 상당히 독특하고 고통스러운 자살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차이콥스키의 죽음은 흥미로운 논란거리이지만, 그렇다고해서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에서 그의 죽음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차이콥스키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모습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위대한 음악가이자 완벽한 장인이었던 차이콥스키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는 차이콥스키 인생에서 또다른 미스터리다. 폰 메크 부인은 처음에 차이콥스키에게 큰 돈을 보내오면서 이상한 조건을 걸었는데, 절대로 서로 만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들은 실제로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우정과 편지 왕래는 13년 후에 폰 메크 부인이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하면서 끝나게 된다.

차이콥스키는 여기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어떻게든 다시 그녀와 연락하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그로부터 3년 후에 차이콥스키는 죽음을 맞이했으니, 차이콥스키가 자살했다면 그 원인 중 하나는 폰 메크 부인의 절교선언이었을지도 모른다.

음악을 글로 설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찌보면 부적절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곡의 어느 부분에서 어떤 악기가 삽입된다거나, 언제 피아노 독주가 나온다거나 하는 식의 설명으로는 구체적인 음악을 상상하기 힘들다. 악보를 보여주더라도 거기서 선율을 떠올릴 독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저자도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저자는 차이콥스키의 작품들을 설명하기보다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렇더라도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저자는 두 장의 CD에 차이콥스키의 대표곡들의 일부를 빼곡히 담아서 함께 제공하고 있다. 거기에 실린 차이콥스키의 작품들을 듣다보면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