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이거 하면 검열에 걸려요'라더군요"
[인터뷰] <유쾌한 420자 인문학> 펴낸 최준영씨
▲ 페이스북에 올린 420자 칼럼을 모아 <유쾌한 420자 인문학>을 펴낸 '거지교수' 최준영씨 ⓒ 김재우
"저 사실 파워 블로거입니다."
스스로 말해놓고는 멋쩍은지 웃는다. '방문자가 얼마나 되기에 파워블로거라고 할까?' 의심이 들어 인터뷰 도중 살짝 확인해봤다. 그의 이름과 별명을 넣어 검색했더니 곧 그의 사진이 보인다. 방문통계부터 살폈다. 전체 방문자 124만 명. '오마이 뷰스'라는 제목의 블로그 운영자는 바로 '거지교수' 최준영(경희대 미래문명원 실천인문학센터)씨다.
그런데 이 파워블로거가 페이스북으로 주 무대를 옮겼다. 평소에도 간간이 블로그에 일상에서 정치·사회 이슈까지 다양한 글을 올렸기에 글을 올리는 '장소'만 바뀐 건 아닐까? 그러나 그의 페이스북 담벼락에는 매일 420자 칼럼이 올라오고 있다. 쓰기 시작한 지 이제 130여 일. 6월 말에는 한 권의 책에 페이스북 칼럼을 묶었다. <유쾌한 420자 인문학>(이룸나무)이다. 지난 6일 그가 일하고 있는 군포시청에서 그를 만났다.
알고 보니 꽤 많은 글을 써 온 글쟁이다.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경력에 책을 낸 적도 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주로 정치·사회적인 글을 쓰는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인터넷 매체에 꾸준히 올라오는, 정치·사회 이슈를 깊이가 있으면서도 감각적으로 다루는 글을 많이 접했는데 나도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그럼 왜 페이스북일까?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책까지 냈다고 하면 꽤 오래전에 페이스북을 시작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웬걸? 최준영씨가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은 이제 7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트위터보다 사용하는 사람들 연령대도 다양하고 친구를 찾는 재미도 있었는데 이것도 단조롭고 식상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에도 글을 한번 꾸준히 써 볼까?'는 생각이 들었죠. 뉴스피드(페이스북에 글을 적을 수 있는 곳) 글자 수 제한이 420이잖아요? 그럼 거기에 맞춰서 매일매일 글을 써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도 쓰라는 사람 없었지만 자신과의 약속 위해 쓴다"
▲ <유쾌한 420자 인문학> ⓒ 이룸나무
"전날 술을 많이 먹을 땐 물론 힘들죠. 그래도 전날 저녁에 한번 쭉 훑어보죠. 약간 이면적이고 덜 알려졌지만 향기가 있는 이슈들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이런 이슈를 좀 찾아놓고 자면 편안하게 잠이 오는데 아닐 때면 꿈속에서도 이슈를 찾아요. 선잠 자다가 깬 적도 많아요."
그는 페이스북에 420자 칼럼을 쓰기 시작한 이후 마감이 늦어진 적은 있어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올렸다.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이 나태해지는 마음을 다잡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마감 시한을 정해놓으면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현실에서도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는 "어떨 때는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아무도 쓰라는 사람 없었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을 위해서 쓴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지역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술자리에서 그러더군요. '당신을 아는 분야면 몰라도 정치와 관련된 글을 4200자 정도 쓰면 분명 글의 밀도가 떨어진다. 전문성이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각이 부족할 테니까. 그걸 420자로 줄이고 가두니까 괜찮은 것이다' 맞는 말이죠."
그는 420자가 자신을 도와주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했다. 모자라는 콘텐츠를 한편으론 420자라는 형식이 보완해준다는 점에서도 동의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420자라는 글자 수 제한이 독자들에게 그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경험도 있었다고 한다.
"'밀양 가덕도, 경주'라는 글에서 부안의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님비(NIMBY)라고 했죠. 물론 그 운동을 폄훼할 생각은 없었어요. 부안에서의 그 투쟁은 님비를 넘어서서 핵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글자 수 때문에 다가가지 못했죠. 이럴 땐 420자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요."
하지만 그는 420자에 맞춰서 칼럼을 올리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초심'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물론 절대적 가치는 아니지만"이라고 운을 뗀 뒤 "내가 420자 형식을 수용한 것이고 그 안에서 놀아보겠다는 것인데 내 필요에 의해서 그걸 깨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날마다 페이스북에 칼럼을 올리고 있는 것도 이 초심이 살아 있기 때문 아닐까?
"<명사들의 책읽기>에서는 <소금꽃나무>라는 단어를 들을 수 없었다"
▲ ⓒ 김재우
"실은 서두른 감이 있죠. KBS 라디오 <명사들의 책읽기>라는 책 소개해주는 프로그램 제의를 받았어요. 출연자의 책 한 권과 추천하는 책 한 권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인데 제작진이 제게 '선생님의 책이 있냐'고 묻더라고요. 원래 7월 말에 나올 예정이었는데 그 프로그램 때문에 조금 급하게 나왔죠. 한 달을 앞당기니까 편집이나 글 선정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그는 "더 좋은 글들도 많은데 양에 안 차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더욱 아쉬운 부분은 따로 있었다. 이 또한 '명사들의 책읽기' 프로그램과 관련된 것이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말을 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제가 소개할 책은 김진숙씨의 <소금꽃나무>였습니다"
"대본까지 다 나왔고 녹음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아나운서가 자기 자리에 놓여진 <소금꽃나무>에서 사진을 보더니 제게 '이 여자 그 여자죠?'라고 묻더라고요. 직감적으로 '맞아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난 못해, 이거 어떻게 해요? 우리 KBS에서 이거 하면 검열에 걸려요'라더군요."
그는 아나운서에게 사정했단다. 김진숙이라는 인간을 다루는 게 아니라 책 속에 담긴 노동문학의 가치,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꼭 청취자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한진중공업 이야기는 안 하겠다, 책 이야기만 하겠다 해도 아나운서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7월 3일 방송된 <명사들의 책읽기>에서는 <소금꽃나무>라는 단어를 들을 수 없었다.
큰딸 다정이가 올린 <유쾌한 420자 인문학> 리뷰
중학교 1학년인 최준영씨의 큰딸 최다정(14)양이 아빠 책을 읽고 인터넷서점에 서평을 남겼다. 큰딸 다정이가 올린 <유쾌한 420자 인문학> 리뷰.
"저희 아빠의 별명은 '거지교수'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이미지가 마냥 좋지는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저도요. 아빠께선 항상 교도소나 탈학교, 노숙인 아저씨들이 있는 곳 같은 곳에서만 강의를 하시니깐 조금 불쾌하기도 했어요. 너무 죄송하지만. 근데 아빠도 알고 보면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교수님, 스승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도 매년 스승의 날이면 편지와 카네이션을 들고 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기도 하거든요. 잘하면 내년 스승의 날에는 저희 아빠도 카네이션과 선물들을 잔뜩 받을 지도 모르겠네요.^^"
최준영씨는 그동안 '거지교수'라 불리며 우리 사회에서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또 그들과 함께 해왔다. 그들 가슴 속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지금도 그는 사회 어딘가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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