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불법도청 의혹에 침묵하는 KBS 사장 K-POP 페스티벌 객석에서 웃을 건가?

[주장] 워터게이트·머독 교훈 잊지 말아야

등록|2011.07.13 12:05 수정|2011.07.13 12:05

▲ 최근 'KBS 수신료 인상안' 추진과 관련해 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 사건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한 시민이 KBS 수신료와 관련된 광고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러시아 관영 <로시스카야 가제타>는 "불법도청이란 '작은 돌'이 떨어지면서 머독의 언론제국에 산사태를 일으키고 있다"고 표현했다. 미디어 제국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겨레> 7월 13일자)

루퍼트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매체들의 불법도청 파문이 그의 '미디어 제국'을 심판대 위에 올려놓고 있다. 그런데 불법도청 의혹으로 금이 가고 있는 것은 이곳 대한민국의 '미디어 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불법도청 의혹의 중심에는 지금 KBS가 자리하고 있다. 공영방송사가 야당 대표실을 불법도청하고 그 녹취록을 여당 측에 건넨 것이 만약 사실로 드러나게 된다면 KBS라는 언론제국에도 산사태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은 '의혹'이고 '스모킹 건'(결정적 단서)이 나온 상태는 아니니, 단정하지는 말기로 하자. 경찰수사가 진행 중이니 그 결과를 보고 결론을 말해도 늦지는 않을 듯하다. 게다가 KBS는 추측성 얘기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하겠다고 서슬퍼런 엄포를 놓고 있지 않은가. 장자연 리스트 파문 때 <조선일보>가 했던 방식이 떠올라 심히 불쾌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기로 하자. 훨씬 더 심각한 본질적 문제들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KBS 도청의혹, 왜 정치외교팀이 해명하나

민주당 당대표실 앞 복도 KBS 수신료 인상안과 관련해 민주당 당대표실 도청 의혹 파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6월 30일 오전 민주당 당직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 출입문 앞에 서있다. 국회 205호 민주당 당대표실은 당직자들이 근무하는 공간을 거쳐 들어가는 출입문과 현재 출입은 안 되지만 복도로 직접 나 있는 문이 하나 더 있다. ⓒ 최인성


우선 KBS는 여러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조직적 은폐 의혹에 대해 성실하고도 책임있게 해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KBS 정치외교팀은 도청의혹을 받고 있는 장아무개 기자가 도청사건 이후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밝혔다. 그 엄중한 시점에 국회출입 기자가, 그것도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한꺼번에 분실했다는 설명에 대해 증거인멸 의혹이 언론에 의해 추가로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동시에 분실할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노트북 가방에 휴대전화를 넣어놨을 때 가능한 일이리라. 수신료 인상을 둘러싼 갈등으로 전화를 놓쳐서는 안될 국회출입 기자가 노트북 가방에 전화를 넣어둔다. 글쎄 석연치는 않지만 '추측'이니 이쯤에서 그만 두기로 하자. 고소당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그리고 도청의혹과 관련된 KBS의 해명이 정치외교팀이라는 일개 부서에 의해 나오고 있는 것도 의아하다. 회사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는 사안에 대한 대외적 입장표명은 당연히 회사 전체의 공식 창구를 통해 나와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굳이 정치외교팀에서 그 역할을 하곤 한다. 도청의혹도, 그에 대한 해명도, KBS 조직과는 무관한 정치외교팀 내부의 문제라는 선긋기 포석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안팎에서 나온다. 혹여라도 나중에 거짓 해명에 대한 책임문제가 불거지더라도 정치외교팀의 책임으로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들이다. 지켜보는 관전자들 중에도 '선수급'은 많기 때문에 '수'를 읽는데도 KBS에 결코 뒤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광경들은 KBS가 의혹의 진상을 밝히기 보다는 계속 가리려 하고 있다는 의심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쯤에서 분명히 말해둘 것이 있다. 불법도청도 만약 있었다면 문제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고도 조직적 차원에서 은폐하려 했다면 그 심각성은 더할 바 없이 커지게 되어 있다. 잘못을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범하는 일이 부디 없기를 바란다. '워터게이트'의 교훈을 잊지 말기를.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있다. KBS는 불법도청 여부에 대해서는 모호하게마나 이런저런 해명을 하고 있지만, 한선교 의원에게 간 녹취록이 KBS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부분은 KBS가 한나라당과의 유착행위를 공공연하게 했느냐를 가리는 사안으로, 불법도청 여부 이상으로 중대한 문제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KBS 측은 먼저 나서서라도 억울하다며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인데도,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 세상으로부터의 온갖 모함을 다 껴안고 가겠다는 충정의 발로인지, 그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이런 문제제기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장아무개 기자는 경찰의 소환통보를 받았다. 그가 오늘(13일) 소환조사에 응한다면 오늘 내일이 수사에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인규 사장의 도쿄행, 시청자 인내심 시험하나

▲ 국회에 출석한 김인규 KBS 사장 ⓒ 유성호


그런데 이 와중에 김인규 사장은 일본에서 열리는 'K-POP 페스티벌 뮤직뱅크 인 도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해 논란이 일고 있다. "수개월 전 기획된 것으로 이미 약속된 것이고, KBS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행사여서 참석한 것"이라는 KBS 측의 설명이지만, 지금 KBS에게 도청의혹 문제보다 중대한 일이 어디 있을까. 며칠 전 KBS를 통해 방송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축하공연 때도 김 사장이 객석에서 웃으며 관람하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적어도 지금, 그는 시청자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었다. 과연 KBS는 이렇게까지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김인규 사장은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만으로도 KBS를 이 지경까지 추락시킨 데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불법도청 의혹, 한나라당과의 유착의혹, 증거인멸 의혹. 남의 일 바라보듯이 경찰수사만 지켜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김인규 사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가 직접 국민 앞에 나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일들의 진상을 자진해서 밝히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한달에 2500원씩 수신료를 내고 있는 국민에 대한 예의이다. 그 돈으로 모자라 1000원씩 수신료를 올려달라고 하고 있는 방송사 사장의 의무이다. 그런데도 마치 경찰이 어디까지 밝혀내는지 두고 보자는 모습으로, 정치외교팀의 젊은 기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광경은 조직의 수장답지 못한 비겁한 모습이다.

오늘 내일 김인규 사장이 있어야 할 곳은 도쿄의 K-POP 페스티벌 객석이 아니라, 서울에서의 대국민 사과를 위한 기자회견장이다. 모든 것을 털어놔라. 그리고 그 내용이 거짓이라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을 하라. 그러나 그 조차도 할 의사가 없다면 국민의 지탄 속에서 치욕을 당하고 있는 KBS 조직을 위해, 아니 공영방송의 주인인 시청자들을 위해 지금 당장 사퇴하는 것이 옳다. 시청자들의 인내에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창선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