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군대 "'광주사태' 다 쓸어 버리겠습니다"
[기사공모-병영 구타의 추억] 육체적·정신적 폭력 가했던 군대
▲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을 고발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 에이앤디픽쳐스
나는 대한민국 군기의 표본이라고 자칭하는 부대인 '특수전사령부'를 나왔다. 이 이야기는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 1년 사이, 그러니 상병 몇 호봉 정도까지의 경험 중 일부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육체적인 구타만이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육체적인 구타와 폭언은 대한민국 어떤 부대에서도 가해지는 일이다. 누가 더 힘들었느니, 아니면 누가 더 많이 맞았느니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거기에다 구타의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려 내는 것 자체도 구타 옹호론자들에게는 즐거운 추억 거리를 되살려 줌과 동시에, 하나하나의 가혹 행위 자체를 긍정적인 야만으로 이해시켜 줄 수 있는 빌미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몇 가지 예를 든다면, 군홧발로 가슴 차기, 작업도구 꺼내려고 엎드렸는데 짓밟기, 원산폭격 중 얼굴 구타, 식판으로 구타, 도끼 자루로 구타, 삽자루로 구타… 사실 위에 제목으로 열거한 사례들은 군 생활을 마친 사람들이라면 웬만하면 다 겪어봤을 일이다. 그런데 개의 생 간은 왜 싫다는 입에 처넣던지….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와서 1989년 5월로 기억된다. 작업을 마치고, '정신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내가 소속된 A 지원대의 B 중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정훈 교육을 실시하였다. 군대라는 조직 내에서의 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사태, 폭도, 전우애, 죽음, 폭동진압…' 이런 단어들로 정리된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군부정권 당시 상황은 정말 그러했다.
군에서 '정신교육' 이름으로 행해진 비뚤어진 역사교육
그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령은 피 끓는 사병들의 마음을 묘한 기분으로 사로잡았다. 군대의 정당함, 명령에 대한 복종, 국가에 대한 충성 같은 내용으로 점철되던 그의 정신교육은 급기야 직설적으로 표현되었는데 한마디로 '광주사태는 군인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충성한 것이며 우리의 동료 전우들이 매일 주검이 되어, 벙커 위에 내려지는 장면을 보고서 분노와 울분을 금치 못했다…중략… 또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우리는 적을 대하는 심정으로 임무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정신 교육의 말미에 좀 놀라운 반응이 나왔다. 어느 사병 하나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쳤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총을 주십시오. 다 싹 쓸어 버리겠습니다."
침묵이 흘렀고, 돌발적인 상황에 중령조차 약간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 순간, 군대라는 조직의 비열함과 무서움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사회에서는 법적, 정치적 판결을 받은 사건이 군대 내에서는 '반드시 복수로 극복해야 할 사건'으로 교육됐고 또 군인들은 항상 정당하고 옳았다는 자위로 심각한 상황을 맞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갑자기 고함을 치며, 울분에 떨었던 그 사병을 포함하여 동기 및 위아래 기수 여러 명이 그날 밤 혹독한 구타를 당한 것이다. 소각장으로 밤에 집합되어 동네 깡패들이나 행할 형태의 구타를 당했다. 일렬로 집합한 사병들에게 고참 몇몇이 주먹질과 발길질로 그들을 소각장 쓰레기 더미에 거의 파묻다시피 만들어 버렸다.
이유는 신병이 건방지게 분위기를 망쳤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 신병이 어떤 분위기를 망쳤는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냥 달빛 아래의 악취 구덩이에서 서로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구타를 당한 것뿐이다.
밤새 내 머리가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말도 안 되는 중령의 교육, 그 교육에 정신이 세뇌당한 신병,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구타… 결국 군대라는 조직이 너무도 비이성적이고, 비 정상적인 형태의 조직이라는 점이었다. 어떻게 그런 상태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 이었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 그 신병에게 총을 쥐어주고 살인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광주민주화 운동을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군인들이 있는 한 지금도 많은 신병들이 비뚤어진 조국애와 군인정신으로 칼을 갈고 있을지 모른다. 비정상적인 사고가 너무나도 당연한 군대에서는 구타도 학대도 모두 이해돼야 하고, 그것에 반항하는 누군가는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조국애와 전우애, 군인정신은 절대 구타와 비정상적인 주입과 판단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병영 구타의 추억' 공모 기사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