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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분위기 살벌... 충성파들이 득세"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 관련, KBS 한 중견기자의 '토로'

등록|2011.07.14 09:16 수정|2011.07.14 10:20

▲ 최근 'KBS 수신료 인상안' 추진과 관련해 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 사건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한 시민이 KBS 수신료와 관련된 광고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된 장아무개 KBS 기자가 13일 경찰에 출두해 조사받을 것이라는 얘기가 전날부터 나돌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영등포 경찰서쪽은 이날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기자의 물음에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경찰은 원래 장 기자에게 이날까지 출석하라고 통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경찰의 1차 출석 통보에 응했는지는 현재 알려지지 않고 있다. KBS쪽은 "장 기자가 곧 경찰에 출석해 경찰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장 기자는 지난 8일 경찰의 압수수색 전에 노트북과 핸드폰을 바꿔 '증거 은폐 의혹'까지 받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만 보면 3년차 기자가 '도청 의혹 사건'의 핵심인물로 떠오른 형국이다. 그런데 KBS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KBS 조직이 움직였다는 것은 심각한 일"

"장 기자는 심부름만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를 언급조차 할 필요가 없다."

13일 만난 KBS의 한 중견기자는 "이번 도청 의혹 사건에서 장 기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인물"이라며 "그런 의미없는 인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몸통'을 쫓는 데 도움이 전혀 안된다"고 일갈했다. 그는 "장 기자는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이기 때문에 (녹취와 관련된 일조차도) 정상적인 취재활동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자는 "이제 '도청이냐 녹취냐'는 재판을 통해 가려질 문제"라고 전제한 뒤, "공영방송인 KBS쪽에서 야당의 비공개 회의 내용을 한나라당에 전달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문제"라며 "그런 점에서도 장 기자는 의미없는 등장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녹취록을 한나라당에 전달하는 행위는 장 기자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녹취록을 한나라당에 전달한 것은 중대한 해사행위이자 범죄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야당 회의 내용을 녹취해 여당에 주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것은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에 KBS 조직이 움직였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그는 "보도나 대국회 로비를 담당하는 부서를 거쳐 녹취록이 한나라당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정확한 전달 경로는 모르겠지만 이런 일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지난 8일 단행된 KBS 인사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당시 인사에서 정책기획본부장과 보도국장의 교체가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이를 두고 그는 "몸통은 놔두고 깃털만 날린 인사"라고 표현했다.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도청 의혹 사건과 관련해 보도본부장과 정치부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몸통은 그대로 놔두고 깃털만 날렸다. 한마디로 (쇄신) 분위기만 잡은 것이자 '꼬리자르기'로 보여진다."

"'특보사장'이 KBS에 와서는 안되는 이유"

▲ 김인규 KBS 사장 ⓒ 유성호


그는 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 사건을 아주 심각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공영방송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강조한 그는 이렇게 꼬집었다.

"특히 일부 '정치하는 기자들'이 KBS 사장이 되는 구조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그래서 김인규 같은 '특보사장'이 KBS에 와서는 안된다."

이어 그는 "수신료를 부담하는 것은 국민이기 때문에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 때 올려달라고 하는 것이 맞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김인규 사장이 자신의 치적쌓기용으로 수신료를 올리려고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장을 위해 수신료를 올리려고 무리하다 보면 충성파들이 득세하게 된다"며 "그런 과정에서 녹취록 전달과 같은 범죄행위가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가 녹취록을 한나라당에 전달했는지, 누가 그런 일을 지시했는지가 밝혀져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경찰이 이 부분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이 사건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은 (수사) 제스처만 취하고 있다. 포석은 깔았지만 진짜 수사를 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은 공영방송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끝으로 그는 "현재 회사 분위기는 살벌하다"며 "근태와 복무기강 등을 체크하고 있고, 심지어 외부 기자와 통화하는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내부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영등포 경찰서쪽은 "도청사건과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장 기자와 한선교 의원에게 출석하라고 통보한 상태"라며 "한 의원이 출석하면 비공개 회의 녹취록을 입수한 경위, 장 기자와의 연관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입국한 한 의원은 "경찰에 나갈 이유가 없다"며 "설령 도청이라고 하더라도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때문에 나는 조사받을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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