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고객님 발급을 요구하신 주민등록등본 여기 계십니다?

등록|2011.07.14 09:48 수정|2011.07.14 09:48
"트랜스포머3 예매 좀 하려구요."(나)
"트랜스포머3 말씀이십니까."(영화관 티켓 판매 직원)
"13시 40분 가능한가요?"
"13시 40분 가능하십니다."
"13시 40분 가능하십니다가 아니라 13시 40분 가능합니다로 해야지요."
"…2관이십니다."
"2관이십니다 아니라 2관입니다."
"…G열 12번부터 16번이십니다."
"G열 12번부터 16번이십니다가 아니라 G열 12번부터 16번입니다. 회사에서 무조건 사물과 시간에도 높임말을 붙이라고 교육시키나요?"
"…"

"고객님 '00적금'은 이자율이 다른 적금보다 0.5% 더 높으십니다"

지난 12일(화요일) 아는 사람들과 영화를 보기 위해 인터넷 예매를 하려는데 매진이 되어 직접 영화관을 찾아 티켓 판매 직원과 나눈 대화다.

직원은 끊임없이 '시'를 붙였다. TV홈쇼핑에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전화기를 드는 순간 저쪽에서는 "고객님이 주문하시려는 상품 색깔은 매진되셨습니다", "고객님이 찾으시는 사이즈는 없으십니다"를 종종 듣는다. 이런 경우도 있다. 은행에서 적금을 가입하려하면 창구직원은 "고객님 '00적금'은 이자율이 다른 적금보다 0.5% 더 높으십니다" 이 정도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얼마 전 끝난 KBS 드라마 <근초고왕>에서 파윤(강성준 분) 아버지인 청하원 소금장원 대행수 염보(서현철 분)대사가 다 높임말이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 심지어 아들인 파윤도 높였다. 물건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라 웃음을 주는 대사로 여길 수 있겠지만 공영방송으로서 문제가 있었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엉망이라 남탓할 처지가 못되지만 물건이나 시간에 높임을 붙이는 것은 문법이 틀린 것을 넘어 불쾌하다. 특히 백화점과 대형마트, TV 홈쇼핑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물건과 상품에 높임말을 쓰는 것은 아마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손님을 한 사람이라도 더 붙들고, 더 팔기 위한 기업들 정책이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요즘 기업 중 '고객서비스센터'가 없는 곳이 없다.

'시민고객'

고객서비스센터를 이용하면 자기 자신과 상품이 동시이 존대받는 희한한 일을 경험하면서 씁쓸한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도 요즘 '고객센터' 같은 기구를 조직하고 시민을 섬기는 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이 되겠다고 나선다. 언론도 별 다수롭지 않게 보도한다.

외국인 인턴들은 ·외국도시 공무원초청연수지원(국제협력과) ·재난대비 시민고객 행동요령 제작(도시안전과)·대기질 개선을 위한 비산먼지관련 해외자료 조사(생활환경과)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 1일자 <연합뉴스>외국인 대학생, 서울시청에서 인턴 시작

화순군(군수 홍이식)은 고객과 소통하는 친절한 행정서비스 실천을 위해 매일 아침 업무시작 30분 전 읍·면을 포함한 전 부서의 공직자들이 친절교육 및 고객 응대 요령 실습을 자체적으로 동시에 실시하고 있다. - 13일자 <연합뉴스>화순군 친절교육, 고객이 감동 할 때까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기지사는 13일 노동관련 법률지식이 부족한 장애인근로자 및 장애인고용 사업주의 애로사항을 상담해 주는 '고객 권익 보호관' 제도를 도입했다고 밝혔다.-3일자 <뉴시스> 경기장애인고용공단, 고객권익보호관제 도입

이날 교육은 직원의 고객만족 역량을 강화해 고객 지향적 경영을 실천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공기업으로 나아가기위해 이루어졌으며, 고객서비스 실천요령, 고객에 대한 직원실천 약속 등의 다양한 내용으로 진행됐다. - 3일자 <브레이크뉴스> 농어촌공사 고령지사 고객만족 교육 가져

하지만 국민과 시민은 '고객'이 아니다. "고객은 (顧客)은 경제에서 창출된 재화와 용역을 구매하는 개인이나 가구를 일컫는 것으로 쉽게 말하면 상점에서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을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다음백과사전>)

고객님 발급을 요구하신 주민등록등본 여기 계십니다?

시민은 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이 시민을 '고객'으로 대하기 시작하면 기업들이 이윤을 위해 "찾으시는 사이즈가 없으십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는 것처럼  "고객님 발급을 요구하신 주민등록등본 여기 계십니다"는 웃지 못할 말을 듣는 날도 올지 모른다.

말과 글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표현할 수 있고, 바뀐다. 하지만 물건을 사람처럼 높이는 것은 틀린 표현이므로 고쳐야 한다. 아래 글처럼 쓰는 날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00백화점'에서 명품이신 시계를 산 후 외제차이신 '000'를 타고 이자가 높으신 000은행 '00 적금'을 드신 후 맞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신 '000레스토랑'에서 맞이 일품이신 '00'을 먹고 최고급 아파트이신 '000아파트' 현관문을 여니 강아지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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