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시티헌터> 백혈병 에피소드, 회장님 불편하시죠?

SBS 드라마 <시티헌터> 내에 담긴 대한민국의 현주소

등록|2011.07.14 11:46 수정|2011.07.14 14:35

▲ SBS 수목드라마 <시티헌터>는 병역 비리와 불량 군수품 납품, 반값등록금, 반도체 공장 노동자 백혈병 발병 문제 등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시티헌터 이윤성의 5인회 처단 임무와 맞물리는 방법으로 다뤄왔다. ⓒ SBS


자신의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에게 위로금을 건네며 산업재해 처리를 피해가려는 대기업 회장의 모습이 어딘지 낯설지 않다. "혹시라도 당신이 잘못 됐을 때 아이가 고아원에 가지 않도록 잘 생각하라"는 걱정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들을 늘어놓으며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을 해온다. 아이에게는 천 원 한 장을 쥐어주고 돌아서며 "싸구려"라고 오만상을 찡그린다. 일방적이고 섣부른 값싼 흥정, 누구의 이야기일까.

지난 13일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시티헌터>는 이윤성(이민호 분)이 처단해야 할 5인회 중 한 명인 천재만 해원그룹 회장의 에피소드를 방영하면서 익숙한 사회 문제를 거론했다. 해원그룹의 계열사인 해원케미칼의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려 산재 요청을 하자 천 회장이 돈으로 이를 막으려 한 것. 이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어나갔거나 회사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시티헌터>는 이전에도 정계의 병역 비리와 불량 군수품 납품, 반값등록금 문제 등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시티헌터 이윤성의 5인회 처단 임무와 맞물리는 방법으로 다뤄왔다. 5인회는 윤성의 친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북파공작원 행방불명 사건에 책임이 있는 정재계 인사들. 비록 근원은 개인적인 원한에 있지만 <시티헌터>는 사회적 문제를 향한 공분의 힘으로 극에 탄력을 받아 끌어가면서 복수에 대한 명분까지 얻을 수 있었다.

현대판 의적처럼 신출귀몰하는 시티헌터라는 드라마적인 설정에 현실을 녹이는 방법이 세련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시티헌터>에는 실제 사회를 담아내려는 노력이 있다. 아무렴 드라마 세상에서는 흔하다 못해 발에 차이는 재벌들의 대한민국보다는 현실적이지 않은가.

이를테면, 내게 라면 그릇이나 엎던 별 볼일 없던 총각이 알고 보니 세계적인 리조트 그룹의 후계자라던가 하는 이야기보다 시티헌터가 바쁘게 돌아다녀야 할 만큼 험난하고 얼룩진 곳이 더 살갗에 와 닿는다.

13일 방송분에서 이윤성은 해원케미칼에 잠입해 회사가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는 유해물질의 샘플을 채취해왔다. 비록 현실에서 악덕기업과 육탄전을 벌일 시티헌터는 존재하지 않지만 누가 봐도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지칭하고 있는 드라마 속 장면만으로 '누군가의 잠자리는 불편해지지 않을까' 싶은 점이 통쾌한 것이다.

풍자를 넘어 직설에 가까운 <시티헌터>의 사회 비추기는 적어도 재미를 담보하기 위해 적당히 이용하고 안일하게 겉핥기 했던 기존 드라마들의 사회문제 다루기보다는 시원하다.

드라마처럼 시티헌터의 발차기 몇 번에 쉬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시티헌터보다는 그가 가리키고 있는 곳, 누군가가 감추고 싶어하는 치부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올바른 관전포인트가 아닐까. 공교롭게도 오늘(14일)은 삼성전자 백혈병 조사 결과 발표가 예정된 날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