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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전 수석부위원장 유상덕 선생 영전에

전교조 전 수석부위원장 유상덕 선생을 장지로 보내며

등록|2011.07.14 18:22 수정|2011.07.14 18:30
유 선생, 지금 어디십니까? 성질 급해 먼저 간 동지들 우글우글 모여 있는 모란공원에 도착하셨나요? 만나보니 반갑습디까. 그래서 그리 서둘러 가신게요? 많이 아픈 줄 알았지만 그 낙천적인 성품으로,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좋은 체력으로 잘 견뎌 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이렇게 일찍 선생의 부재를 통보받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 세상에서 다시는 유 선생 얼굴을 볼 수 없고 비긋이 웃는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참으로 사는 게 허망하고 기운이 빠집디다. 자주 만나 웃고 떠드는 시간을 갖지는 못했지만 만난 세월이 수십 년이라 언제 봐도 내게는 친구 같고 오라비 같은 유 선생이었으니까요.

언제였던가요? 유 선생을 처음 만난 해가. 아마 1970년도 말이었을겝니다. 훤칠하게 키가 커서 싱거운, 소리 없는 눈웃음이 더욱 싱겁게 뵈던 유 선생의 첫인상은 싱거운 남자였습니다. 노동운동 쪽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 혼자 속으로 이 인사도 노동판으로 발 담그려는 학출인가보다 생각했는데 웬걸. 아주 전력이 짱짱한 교육운동가였지 뭡니까.

운동은 농민운동과 노동운동만 있는 줄 알았던 '공순이'에게 교육운동이라는 새로운 분야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나는 가방끈 긴 지식인들이 못 배우고 가난한 민중들을 도와주는 차원 말고 자신의 천직을 위해 투쟁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거든요.

어찌 됐든 유 선생 덕분에 현대사를 잘 알게됐습니다. 60년대 초, 4.19 직후에 결성된 교원노동운동이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무려 1500여 명의 구속자와 해직자를 낳았다는 역사도 알게 되었고 긴 암흑기를 거쳐 YMCA나 흥사단 등의 단체를 통해 교육운동의 부활을 은밀하게 준비하는 그룹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유 선생이 그 그룹의 핵심 멤버라는 사실도 더불어요. 85년 '민중교육지' 사건인가 민교협결성 사건인가? 아무튼 두 사건의 여파로 감옥에 끌려들어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어린 민준이 업고 걸리며 옥바라지를 하던 언니도 생각납니다. 그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힘든 시절이었지만 생활고와 옥바라지에 지친 언니의 모습은 유난히 안쓰러웠지요.

전교조 자료를 보자니 87년 태동한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 약칭 전교협 준비위 앞으로 옥중서신을 보내 5가지 실천목표를 당부했다지요. 다시 읽어봐도 유 선생다웠습니다.

"아부하지 말고, 돈 받지 말고, 때리지 말고, 공부 좀 하고,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평생을 가난 속에서, 늘 선량한 웃음을 달고 다니던 그러면서도 속에는 불덩이를 담고 산 유 선생이었던만큼 이 당부는 어쩌면 유 선생 삶 자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본격적인 교육운동, 전교협이 탄생되고 곧이어 89년 전교조의 깃발이 올려졌습니다. 참으로 경천동지 할 일이었지요. 아이들을 훈육하는 선생이 교원노조를 만들다니. 선생을 특별한 존재로 봐왔던 기존의 학부모에겐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이기도 했지요.

정권에게 탄압받고 학부모에게 외면당하고. 고립무원인 전교조 교사들을 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또 나 개인적으론 전교조 초대 대외협력국장을 맡아 수배중인, 조만간 잡히면 얄짤 없이 감옥으로 끌려 갈 유 선생 부부와의 인연이 각별해 주저 없이 '참교육학부모회' 창립 준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것이 전교조 창립 몇 달 후였을 것입니다. 사실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박박 기고 있을 때라 교육운동이라는 게 개인적으론 체감이 되지 않았을 때였으니 순전히 명분과 사명감으로 동참을 한 것이었지요.

민청련 사건 가족들 중심으로 했으니 인적자원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때문에 능력도 안 되는 주제에 교육 분과를 맡을 수밖에 없었고 창립대회 때는 사회를 보라는 명령을 받아 덜덜 떨면서 마이크를 잡던 기억. 수분이 수시간이 되는 것처럼 긴장되고 진땀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감옥 간 남편 대신 생활비를 버느라고 참교육학부모회 초기 때만 활동하고 나중엔 회원으로만 동참했지만 교육운동에 조그만 힘을 보탰네라 하는 자긍심은 아직도 내 인생의 자랑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유상덕 선생, 전교조 전 수석부위원장님. 당신은 영원한 교육운동가입니다. 섬세하고 따뜻한 성품이라 짧은 교직 생활 속에서도 많은 제자들에게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성숙함을 심어줬을 것입니다.

예순 세 해, 아픔과 상처도 많았겠지만 당신이 혼을 바쳐 이룩한 교육운동의 성과는 플러스 마이너스 합이 '보람'이라는 남는 장사를 한 것입니다.

유상덕 선생 영전에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소서.

* 유 선생은 쓸개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 오다 12일 별세했다. 향년 6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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