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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산업보다 못한 농업... 희망은 '사람'

'지리산닷컴'의 'Bread & Noodle 그리고 이야기' 행사 참가기

등록|2011.07.16 12:19 수정|2011.07.20 21:51

▲ 비내리는 운조루 누마루는 잠시 세상과 단절된 별천지가 된다 ⓒ 유신준


자주 드나드는 '지리산닷컴'이라는 곳에 오프라인 모임 공지가 떴다. 'Bread & Noodle 그리고 이야기'라는 테마다. 모임 장소는 전남 구례 운조루. 지난번 갔을 때 보수 중이더니 공사를 마친 모양이다. 운조루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그 지역에서 농사를 지은 우리밀로 콩국수와 빵을 만들어 먹고 귀농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서둘러 신청을 했다.

지리산닷컴은 한마디로 특정짓기 어려운 커뮤니티다. 탈도시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삶에 관한 생각'을 나누는 곳. 목표는 행복한 삶이다. 사이트를 통해 가끔 지역에서 생산되는 좋은 먹거리를 소개하지만 영리추구가 목적이 아니다. 대신 농민에게 제대로 된 노동의 댓가를 돌려주고 싶어한다.

뭘로 먹고사냐고? 다른 일로 먹고산다. 사이트의 일은 삶에 관한 생각을 사람들과 나누며 구현해나가기 위한 봉사활동쯤으로 여긴다. 광고 컨셉도 독특하다. 제품이 아닌 그 사람의 삶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미 농부 홍순영과 김종옥의 삶을 사이트를 통해 알린 경력이 있다. 사이트를 통해 농부들의 삶이 곧 브랜드가 된다. 상품이 아니라 진솔한 삶이 '셀링 포인트'다. 

사이트에 가입하면 매일 아침 '지리산 편지'를 보내준다. 편지는 사이버 이장 권산이 만든다. 그는 미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웹디자이너 일을 오래 했다. 2006년, 도시에서 부대끼며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즈음 먼저 귀농한 선배가 손을 잡아끌었다. 지리산닷컴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는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구례 상사마을로 들어왔다. 그는 아직 농부가 되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300평 이상 농사를 지어 농지원부를 만들 가능성은 적다. 대신 사이트를 통해 생각을 나누며 사람 농사를 즐기고 있다.

▲ 운조루 대문에 걸린 행사휘장. Bread & Noodle 그리고 이야기 ⓒ 유신준


며칠이 지나 참가안내 메일이 왔다. 소문에 의하면 경쟁률이 3:1을 넘었다는데 다행히 선정이 됐단다.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회비를 입금하고 모임 날을 기다렸다. 장마철이라 쉼없이 비가 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날씨가 대수랴.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늘 즐겁다. 커뮤니티 오프라인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이다. 시인 신경림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했는데, 소통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얼굴만 봐도 즐거운 법이다.

출발 당일에도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인터넷으로 길을 검색하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운조루를 향하는 길은 거의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 속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대부분의 차량들이 비상 깜박이를 켰고 속도를 줄였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전주-광양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길이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전에는 세 시간 넘게 걸리던 길이 두 시간 남짓이면 충분해졌다.

서둘러 온 덕분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부지런한 분들은 이미 와서 운조루에 앉아 있었다. 운조루 누마루의 팬들. 서른 명이 넘는 나머지 참가자들도 속속 도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멀리 미국 콜로라도에서 오신 분도 있었고 필리핀에서 참가한 분도 있었다. 부부 참가자도 많았고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빗속을 뚫고 모임에 참가했다.

안내 정보에 따르면 운조루는 조선영조 때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라는 분이 세운 조선시대 대표 양반가옥이다. 운조루라는 명칭은 원래 사랑채에 누마루의 이름이었다. 문화재로 등록된 명칭이 운조루로 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건물 전체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운조루는 고즈넉했다. 비오는 운조루에서 내다보는 풍광은 일상에 지친 마음을 토닥토닥 다독여 주었다. 아름드리 기둥에 기대앉은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정원을 바라보기도 하고, 벌렁 누워보기도 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자유롭게 운조루를 만끽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일상의 짐을 툭툭 털어버린 사람들처럼 홀가분한 얼굴들이었다. 비내리는 누마루는 잠시 세상과 단절된 별천지였다.

▲ 고즈넉한 누마루에 오르면 사람도 풍경이 된다 ⓒ 유신준


점심은 공지된 메뉴대로 뜨거운 콩국수가 나왔다. 주변 들판에서 생산된 우리밀을 재료로 운조루에서 마련한 별미 음식이다. 마땅한 제분소가 없어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밀가루를 정성껏 반죽하여 칼국수를 만들었단다. 그걸 콩물에 끓여먹는 게 뜨거운 콩국수다. 처음 먹어본 음식인데 구수한 밀 냄새가 구미를 당긴다. 시장한 참에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웠다.

점심 후에는 농부 홍순영의 이야기를 들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의 농부 홍순영은 지리산닷컴의 스타다. 그는 이장이 야심차게 발굴한 한국 농업의 아이콘이다. 그는 4만 평이 넘는 논에다, 주변의 잡초에서 추출한 친환경 제재를 이용해 유기농 벼농사를 짓는다.

그가 생산하는 농산물에는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하겠다는 농부의 집념과 철학이 배어 있다. 2000년부터 직거래를 시작했고 전국의 300여 가구가 그의 쌀을 먹는다. 전적으로 홍순영이라는 인간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 구매다. 그는 상품 대신 진정성을 팔고자 한다. 결국 사람이 브랜드다.

2004년에 귀농한 고영문씨에게서 좌충우돌 귀농기도 들었다. 그는 아직 성공한 귀농인은 아니다. 그는 1996년에 주말농장을 시작해 2004년에 전남 구례 피아골에 귀농지를 정하고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받을 수 있는 귀농교육은 거의 다 쫒아다녔고, 오미자 엄나무 오갈피 등 약초와 콩 잡곡 등 온갖 농작물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시도는 거의 다해봤다. 그의 귀농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잘 버티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하기 때문인가.

▲ 함께 밥을 먹는 일만큼 중요한 소통 행위가 있을까. ⓒ 유신준


저녁은 오미마을 회관에서 먹었다. 푸드 마일리지를 최소화한 식재료, 마을에서 생산된 먹거리로 준비한 밥상이다. 농부 홍순영이 만든 쌀과 운조루 넓은들에서 재배된 우리밀로 지은 고슬고슬한 밥이다. 반찬은 지리산 고랭지에서 재배된 채소가 주종이다. 이장이 준비한 특별 메뉴 수육도 올라왔다. 그는 서울 연신내 시절부터 부엌에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저녁을 먹고 나서 농부 김종옥이 등장했다. 그는 7천여 평의 감농사를 짓는 감 전업농이다. 지난해 때 이른 첫서리로 감이 피해를 입어 어려움을 겪을 때 지리산닷컴에서 그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모니터에 올라온 것은 뜬금없게도 그의 손이었다. 이장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듬직한 김종옥의 손을 잡아 달라고 호소했다.

당초 천 박스가 목표였지만 전부 팔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반 시장에 정상적인 제품으로 출하할 수 없었던 그의 감은 주문량이 폭주해서 나중에는 물량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렇게 맺어진 특별한 인연이었다. 그가 좋은 농산물을 정성껏 생산해서 보답하겠노라며 참석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흐뭇한 장면이었다.

이어서 이번 모임의 이야기를 위해 권산 이장이 등장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우리 밥상과 종자, 귀농이었다. 1960년대에 32.9%를 차지했던 우리 농업 GDP 수준. 지난 2003년도에는 포괄적 섹스산업 비중인 4%를 밑도는 절망적인 상황까지 왔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밀로 상징되는 희망의 끈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세계화 체제 밑에서 농민은 값비싼 종자와 화학물질을 구입해야 하는 소비자일 뿐이라는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의 말을 인용하며 종자주권 없이 결코 우리 농업이 없다고 했다. 귀농 부분에서는 소통을 강조했다.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시골에 산다고, 그렇게 대우받지 못하는 것이 습관이 된 분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귀농에 성공할 수 있다고. 그가 지난 몇 년간 농촌 체험에서 터득한 지혜다.

▲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정성을 들여 장작불을 준비했다. ⓒ 유신준


그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속에서 진행됐다. 주제가 상당히 무거운 담론임에도  그는 다양한 문제들을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덕분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즐거운 자리가 되었다. 삶을 즐길 줄 모르면 좌파가 아니고 하면서 신나지 않으면 운동이 아니라던 목수정이 떠올랐다.

열한 시가 훌쩍 넘어 자리에 들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가 흙벽을 건너 장짓문을 지나 고스란히 전해온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하다. 철문과 콘크리트 벽으로 무장한 아파트라면 어림도 없을 일인데.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지리산닷컴이 가까운 장래에 계획하고 있는 일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올 가을에 쌀밥축제를 연다. 점차 천덕꾸러기로 소외되고 있는 우리 쌀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사람들의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해 김장축제도 기획하고 있으며 서울 송파구 등 일부 지역에서 추진 중인 옥상텃밭 운동과 연계해 우리종자 나누기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사람들의 정성을 모아, 송석헌을 지켰던 이 시대 마지막 유학자 권헌조 옹의 사진집도 낼 계획이다.

돌아오는 길에도 비는 줄기차게 내렸지만 마음이 가뿐해졌다. 휴식과 충전. 빗속 운조루에서 바쁜 삶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지리산닷컴이 있어 구례는 복받은 땅이다. 이런 커뮤니티가 많아져야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건 자명한 일이다. 돈 냄새 가득한 시대에 절망하지 않고 사람이 행복한 사회로 가꿔나가려는 그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지리산닷컴은 오늘도 묻는다. 행복하시냐고.
덧붙이는 글 * 지리산닷컴 http://www.jiri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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