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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살에서 원효대사의 가르침을 얻은 친구

등록|2011.07.21 09:02 수정|2011.07.21 09:02

갈매기살 고기친구가 '진짜 갈매기'로 오해한 돼지고기 갈매기살 ⓒ 박창우


지난 주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대학교 다닐 적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를 가졌던 친구들인데, 막상 졸업을 하고나니 다함께 모이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전화나 문자를 통해 안부를 묻고 나면, 으레 끝인사는 "언제 다함께 모여야지~"로 끝났건만, 다함께 모이기까지 몇 년이 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자도 아니건만 커피숍에서 수 시간 수다를 나눈 친구들과 저녁 시간에 맞춰 자리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언제나 어려운 건, 역시나 메뉴 선택이죠. 무얼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우리는 결국 '문명의 이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였습니다. 다름 아닌, 스마트폰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죠.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고 근처 '맛집'을 검색하여 몇 가지 후보군을 고른 우리는 한 친구의 추천에 따라 갈매기살 전문점에 가서 고기를 먹기로 잠정 합의하였습니다.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는 한 친구가 있었지만 그땐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갈매기살 고기집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그 친구는 별다른 말이 없었고, 고기집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심지어 불만 가득한 표정까지 지어보였습니다.

"왜? 다른 거 먹을까?"

그러자 그 친구가 대답합니다.

"아니...근데 왜 하필 갈매기살이야? 돼지고기도 있고, 닭고기도 있고, 고기는 많은데.."

"....."
"....."
"....."
"....."

이건 뭐,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도 아니고. 순간, 다들 할 말을 잃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까요?

'아닐거야.. 아닐거야...그래, 분명 아닐거야.'

그렇게 생각한 저는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하하~ 머야, 그 유치한 개그는~ 자식, 썰렁한 건 여전하네."
.
.
.
.

하지만, 진짜였다는게 문제입니다. 그토록 "아닐 거야"를 마음속으로 외쳤건만, 그 친구는 정말로 갈매기살을 '진짜 갈매기'의 고기로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을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잡아 털을 뽑고 살을 발라 양념을 해서 지금 불판에 굽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평소 바른 말 하기 좋아하는 제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이보게, 친구, 난 지금 자네가 내 친구라는 게 무지 창피하지만, 그래도 알려줘야 할 건 알려줘야겠는데 말이지. 솔직히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한 거 한 가지는, 갈매기살은 돼지고기의 한 부위로,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양이 얼마 되지 않아, 도축업자가 한 점 한 점 정성들여 발라낸 고기란 말이야. 그러니까, 이 갈매기살은 자네가 생각하는 그 갈매기가 아니란 말이지. 아유 언더스탠드?"

정말 깜짝 놀랐다는 표정을 짓는 친구('깜놀' 이라는 단어가 왜 나왔는지 알겠더군요). 갑자기 얼굴에 미소를 한 가득 머금으며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전에 아는 동생들하고 갈매기살을 먹으러 갔는데, 진짜 갈매기 고기인 줄 알고 하나도 안 먹었거든. 그때 동생들한테 니넨 왜 많은 고기를 놔두고 하필 갈매기를 먹냐고 머라고 했었는데, 창피해 죽겠다."

뭐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갈매기를 먹기가 내키지 않아 별로 먹지 않았다는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갈매기살이 돼지고기라는 사실을 알아서 일까요. 유난히도 친구는 고기를 많이 먹던군요. 천천히 먹으라는 친구들의 말에 또 한 마디 합니다.

"정말, 모든게 마음먹기 달린 것 같어. 그땐 갈매기라고 생각하니 맛이 없더니 오늘은 또 왜 이렇게 맛있지? 똑같은 고기인데 말이야. 아! 원효대사의 마음이 이랬던 것일까?"

급기야 원효대사의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비록 그 진위여부에는 논란이 있지만, 원효대사가 당나라 유학길을 떠나던 중 밤중에 물을 먹고 갈증을 풀었는데, 다음날 보니 해골물이었단 일화는 어릴 적 많이 듣던 이야기입니다. 바로 "도는 모든 존재에 미치지만, 결국은 하나의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원효대사의 가르침이 녹아있는 일화이기도 하죠.

그런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사실 '모든 게 마음 먹기 달렸다'는 친구의 말은 하나 틀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갈매기살에 대한 오해에서 생긴 '해프닝'이었지만, 가만히 보면 우리는 정말 별일 아닌 걸 가지고 쓸데없이 고민하고 걱정하며 일을 더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달리 바라보면 정말 사소한 문제인데 말이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책이 나는 것도 아니고, 언성을 높인다고 해서 실마리가 보이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편하게 마음먹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다는게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요?

친구는 갈매기살에서 원효대사의 가르침을 얻었다지만, 그런 친구를 보면서 저 역시 일상에서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블로그(이카루스의 추락)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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