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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참 좋겠다, 도서관이 있어서

[사진] 우리 동네의 자랑거리 양산시립도서관

등록|2011.07.21 17:43 수정|2011.07.21 17:43

독서삼매경책읽기에 푹~빠져 있는 꼬마 아가씨 ⓒ 이명화


산간벽촌에서 자랐던 나는 종이책은 늦게 접했지만 내 주변에 이야기는 풍성했던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 속에 듣는 이야기, 전설과 옛이야기, 동화 이야기 등 모두가 이야기였다.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등 뒤에 감싸고 있고 앞에는 바람 없는 날이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펼쳐진 마을. 바다와 산과 들이 친구였고 책이었던 시절을 지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교과서가 유일한 책의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종이책을 일찍 접해 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결핍감은 오래 남아 있었나 보다. 어려서부터 도서관이 집 근처에 있었다거나 도서관을 놀이터 삼아서 책과 함께 자랐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선 저절로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도서관을 내 집 드나들기 시작한 그때부터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까 생각하며 내심 질투를 느꼈다. 보상심리일까. 나는 요즘도 종종 도서관을 즐겨 이용한다. 한편으론 읽고 싶은 책, 소장하고 싶은 책들을 다 내 것으로 하고 살 수 없기에, 구입해서 읽지 못하는 책들은 대부분 도서관에 가면 빌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몰입 ⓒ 이명화


이 동네로 이사 오자마자 얼마 후 양산시립도서관이 개관했고 이후 나는 수시로 도서관을 찾는다. 도서관이 지척에 있다는 것이 이 마을로 이사 오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시립도서관이 개관한 것은 작년 12월. 올 2월까지 시범운영한 후 3월에 정식개관되어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지하1층 지상 4층 연면적 656㎡ 규모로, 식당과 매점 등 편의시설과 어린이 자료실, 모자 열람실, 장애인자료실, 북 카페, 전자정보실, 영화감상실, 전산교육장, 다목적 강좌실, 인문사회, 과학예술, 어문학역사자료실, 인터넷실, 열람실, 휴게공간 등으로 되어 있다.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새로 생긴 시립도서관은 넓고 깨끗해서 좋다. 평일엔 밤 10시까지 운영하니 저녁 식사를 하고도 천천히 도서관에 가서 느긋하게 책을 빌려올 수 있어서 또한 좋다.

도서관친구랑 숙제 ⓒ 이명화


얼마 전에는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1층 어린이자료실에 들어가 보았다. 어린이 열람실은 들어서자마자 벽과 책장, 집기들 모두 색깔부터가 달랐다. 마치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했다. 노랑, 파랑, 연두, 흰색 파스텔톤의 화사하고 산뜻한 색으로 꾸며진 공간에 벽면 가득 책으로 채워져 있고 소파 여기저기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 모습이 보였다.

출입문은 끊임없이 열렸다 닫히고 아이들이 들락거렸지만 책 읽기에 몰두해 있는 아이들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눈으로 핥듯이 빠져 있는 모습,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열 권 남짓한 책을 무릎 앞에 높이 쌓아놓고서 한쪽 무릎을 세우고 세운 무릎 위에 얼굴을 올려놓은 모습으로 책읽기에 몰입해 있는 여자아이.

이마를 시원하게 드러낸 얼굴에 머리는 뒤에서 하나로 묶어 단정했고 민소매 원피스 차림으로 다소곳이 앉은 여자아이는 마치 풀밭 위에 홀로 앉아 있는 것처럼 한가로워 보였다. 어쩌면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감옥 안 운동장에서 많고 많은 죄수들 사이로 홀로 깊은 사색에 잠긴 듯 걷던 모습 같았다. 또 다른 한 남자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책속에 빨려들듯 깊이 빠져 있었다. 독서삼매의 풍경이었다. 책을 통해 자신이 부화되었다던 김열규 교수는 <독서>에서 독서삼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글의 멋을 느끼고 맛도 보아야 한다. 그러니 눈으로만 책과 글을 읽어내서는 안 된다. 오관이 다 동원되어야 한다. 냄새를 맡고, 울림도 듣고, 촉감도 느껴야 한다. 혀끝이며 입 안이 새콤달콤해야 한다. 물론 구수쌉쌀하기까지 하면 더 바랄게 없다. 그래야 비로소 독서삼매이다."(p231)

도서관아름다운 풍경 ⓒ 이명화


엄마랑 책을 고르고 있는 아이들도 있고 청년처럼 새파랗게 젊은 아빠가 아이 옆에 앉아서 손가락을 짚어가면서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인터넷 앞에 앉아 책 목록이 빼곡하게 적힌 수첩을 들여다보면서 책을 검색하고 있는 아이들도 보였다. 

나는 그들이 내심 부러웠다. 내 어린 시절엔 경험 못했던 일이기에. 냉방이 잘 되는 깨끗하고 쾌적한 도서관에서 어린이를 위한 예쁜 공간에서 마음껏 책을 읽고 동화 속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아이들... 행복한 아이들이다. 지척에 도서관이 있어 좋고 언제든지 달려와 책 읽을 수 있어 좋고, 일찍부터 책 속에서 만나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부러웠다. 

책이 있는 공간, 책 숲에서 책을 벗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감동을 준다. 더더구나 새싹처럼 연한 순처럼 여릿여릿한 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책은 더욱.

보르헤스는 천국을 도서관과 같은 것으로 상상했다. 그는 그 어떤 영광보다도 국립도서관 관장이 된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했을 정도로 책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비록 그가 도서관장이 되었을 땐 실명이 되어 간신히 책표지와 책등만을 판독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말이다. 몽테뉴는 '어떤 슬픔도 한 시간의 독서로 풀리지 않았던 적은 내 인생에 한 번도 없었다' 했고, <책에 미친 청춘>에서 김애리는 "좌절하고 있는 젊음의 생존법은 독서라고 단언했다.

도서관아빠와 함께 책 읽기 ⓒ 이명화


도서관동화나라 ⓒ 이명화


우리나라 성인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은 1권이 채 안 된단다. 10명 중 4명은 일 년에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책맹'이라는데, 바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오프라 윈프리, 힐러리, 안철 수 등은 하루 중 책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지독하게 독서에 몰두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은 지나친 독서로 눈병이 난 와중에도 독서를 끊지 않았고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길에서도 천권이 넘는 책을 싣고 떠날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체 게바라는 총탄이 오가는 전장에서도 책을 펼쳐들고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으며 링컨은 아버지를 도와 육체노동을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책을 읽었다. 에디슨은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의 도서관을 통째로 읽어댈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이밖에도 CEO, 정치가와 문학가, 예술가, 경제학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독서로 자신을 경영했다.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독서가였단다.

시립도서관인문학자료실 풍경 ⓒ 이명화


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되고 성장하고 부화됐던 것처럼 나 또한 책을 통해 부화되고 또 부화되었고 또 부화되고 있듯이, 연한 새순 같은 보배로운 아이들이 도서관을 통해, 책을 통해 아름답게 자라고 부화되기를. 아이들은 오늘도 냉방이 잘 된 시원한 도서관으로 부모 손을 잡고 혹은 친구랑, 혹은 친구랑 도서관으로 간다. 삶은 배움의 연속이다. 끊임없이 알을 깨고, 나를 깨고 나와야 한다. 나는 오늘도 도서관에 간다.

*참고: 도서관 이용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10시. 주말엔 오전9시~오후 6시까지(매주 월요일과 법적 공휴일은 휴관)
도서대출: 독서회원으로 가입하면 1인 3권에 한해 14일간 대출이 가능함
(도서관 홈페이지: lib.yang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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