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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프린스 호 사고 16년, 불편한 토론회 열렸다

등록|2011.07.25 12:03 수정|2011.07.25 12:03

토론회20011년 7월 22일 오후 2시 여수시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열린 제7회 해양환경보전의 날 기념 '지속가능한 해양환경보전의 날 어떻게 만들 것인가?' 토론회 ⓒ 황주찬


씨 프린스 호 사고 후 16년, 불편한 토론회 열렸다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 후 10년 지난 2005년에도 호미 하나로 잔존유를 찾았다. 지금도 호미 하나면 기름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22일 오후 2시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주최로 여수시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제7회 해양환경보전의 날 기념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여수환경운동연합 조환익 집행위원이 던진 말입니다.

세월의 숫자만큼 사고의 기억과 상처도 먼 바다로 흘러갔을까요? 사고 발생 후 1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환경복원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토론을 듣자니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환경피해는 오래갑니다.

1995년 7월 23일 오후 씨 프린스 호가 전남 여수 남면 소리도 대룡단에 좌초됐습니다. 태풍 페이가 올라오는 그 순간 사고 기업은 한 방울의 기름이라도 더 육상으로 옮기려고 피항을 늦췄죠. 결국, 때늦은 피항은 푸른 바다에 정부 추산 5035.2톤의 검은 기름을 토해내는 사고로 이어졌죠. 바다는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고 사람들은 지금까지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 부으며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토론회 열리기까지 우여곡절 많았다"

해양환경보전의 날 선언문2005년 발표한 '해양환경보전의 날' 선언문입니다. 당시 여수시장, 시의회 의장. 시민사회단체 대표의 서명은 있는데 사고기업의 서명은 비어있네요. ⓒ 여수환경운동연합 제공


22일 열린 토론회는 자연 회복뿐 아니라 사회적 회복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질긴 노력의 결과입니다. 사회를 맡은 김태성 국장(여수 시민협)은 "이 토론회 자체가 열리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짧은 말로 길고 복잡한 사정을 표현합니다.

토론회가 시작되자 시민단체는 사고에 무한책임이 있는 기업을 거침없이 공격합니다. 특히, 주제발표를 맡은 조환익 위원은 "사고 기업은 지난 2005년 '해양환경보전의 날'을 선포하는 그 순간까지도 참석을 망설였다"며 현재까지 이어지는 사고기업의 수동적 태도를 지적합니다.

또, "내년 '해양환경보전의 날'은 세계박람회 기간 중 진행되는데 세계 시민들에게 여수 바다가 좋다며 초대해 놓고 한쪽에서 오염을 이야기 하면 방문객들이 엉망인 곳에 초대한 이유가 뭐냐며 핀잔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선언문에서 약속한 일들을 이행하지 않으면 그동안 쌓아온 모든 일들이 '도루묵'되고 사고가 재발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지역 갈등이 다시 생긴다"고 선언문 내용 이행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사고업체 대표로 나온 정남일 본부장(GS칼텍스)은 "회의만 600번이 넘었다"며 회사가 수동적이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또 "처음 현장 갔을 때 하얀 파도가 아니라 시커먼 원유 파도가 치고 있었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던 과거를 강조했습니다. 덧붙여 그는 "사고를 통해 회사가 정신 많이 차렸고 어찌 되었든 사고가 발생한 점 죄송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토론을 듣다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고업체가 사고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일은 당연합니다. 시민단체가 하는 말도 당연하고 근거가 충분합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을 돌이켜 곱씹어 보면 이제껏 시민단체가 해온 일이 마냥 큰소리 칠 상황도 아닙니다.

시민단체가 사고 후 10년이 지난 2005년 이후 보여준 모습은 썩 칭찬할 만하지 않습니다. 이는 지정토론자로 참석한 김일주 부장(여수YMCA)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해양환경보전의 날' 무관심으로 의미 퇴색, 자업자득 아닌가?

해양환경보전의 날2005년 여수시 거북공원에서 열린 해양 환경보전의 날 선포 및 해양 환경보전 시민한마당 행사입니다. 이날 매년 7월 23일을 여수시민 '해양환경보전의 날'로 선포하였고 해양환경보전의 날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 황주찬


김 부장은 토론회에서 "시민단체가 사고 발생 10년인 2005년 이후 후속사업을 진행하는데 부족함이 많았다"고 털어 놓습니다. 또 토론회 취지를 밝히는 자료집에도 시민단체의 활동 부족이 보입니다.

시민단체는 사고 발생 후 10년간은 토론회, 사고 현장방문, 시민모니터링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고 적었는데 10년 후인 2005년부터는 눈에 띄는 활동 내용이 거의 없네요.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활동은 '해양환경보전의 날'을 제정한 일입니다. 그날을 만든 목적은 사고 회복 위해 모두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자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자료집에 적힌 행사 취지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시민단체는 '여수시, 산단, 의회의 무관심 속에 의미가 퇴색되어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과거를 되돌아 보면 자업자득이 아닐까요?
 

최종보고서1997년 11월 발간된 '여수, 여천 유류오염 사고지역의 환경 현황조사 최종보고서' 중 일부 내용입니다. ⓒ 황주찬


왜냐하면, 사고 발생 후 10년을 기점으로 시민단체는 '감시와 견제'에서 '공동의 노력'이라는 극단적 방향으로 사고에 대한 대응방식을 바꿨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관련 자료를 찾다 그 실마리가 될 만한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1997년 11월 '여수·여천 유류오염 사고지역의 환경현황조사 최종보고서'가 만들어 졌는데 14페이지에 환경사회단체 해양오염대책위원회 활동 기록이 나옵니다.

이 기록을 보면, 환경단체는 처음엔 20년간의 환경영향조사를 요구했는데 어느 순간 조사 기간을 10년으로 절반 줄였습니다. 그리고 요구한 10년간의 환경영향조사 마지막 해가 2005년입니다.

물론, 10년이라는 세월이 기다면 길고 짧다면 짧겠지요. 하지만 해양 유류오염사고는 특성상 장기간 모니터링을 필요로 합니다. 10년의 세월을 너무 짧지 않을까요?

엑손 발데즈호 사고 후 15년, 모니터링 계속 할 것

리키오트 박사2005년 7월 22일 열린 GS칼텍스 씨프린스호 해양유류오염사고 10주년 국제심포지움에서 리키오트 박사가 발표하고 있습니다. ⓒ 황주찬


줄어든 기간을 보며 미국 알래스카 인근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즈호 사고를 돌이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기 때문입니다. 2005년 'GS칼텍스 씨 프린스 호 해양유류오염사고 10주년 국제심포지움'에 리키오토 박사라는 분이 참석했습니다.

리키오트 박사는 엑손 발데즈호 사고 후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지역을 모니터링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20년, 30년이 지나도 그곳을 계속 모니터링하겠답니다.

리키오트 박사는 장기간의 모니터링을 통해 사고 업체에게 무한책임을 묻고 있었습니다. 토론회에서 사고업체 향해 크게 호통 치던 시민단체가 깊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직접 파온 기름, 탁자 위 올려놓고 토론회 진행했으면...

열리기 어려웠던 토론회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또 세월이 흐를 겁니다. 시민단체가 씨 프린스 호 사고를 '전가의 보도'처럼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휘두른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현장을 누비는 발품이 필요합니다.

호미 하나면 지금도 씨 프린스 호 잔존유를 발견 할 수 있다고 말하기에 앞서 현장에 가서 호미로 파보는 겁니다. 그리고 파온 기름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토론회를 진행했다면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여수시, 산단, 의회가 행사에 무관심하다고 하소연하기에 앞서 현장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그들의 무관심을 지탄해야 순서가 맞습니다.

혹시 기름 팔 호미가 없다면 모금 운동이라도 해야지요. 저도 기꺼이 모금운동에 동참하렵니다. 토론회 마치고 돌아서는데 문득 보고 싶은 눈동자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시퍼런 시민단체의 눈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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