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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쇠사슬로 몸 묶고, 사제들은 "우리도 때려라"

[현장] 제주 강정마을 경찰 진입 후 거세지는 후폭풍

등록|2011.07.25 14:21 수정|2011.07.25 14:21

▲ 천주교 제주교구 고병수 신부가 "사제들은 주민들과 함께 때리면 맞을 것이고, 연행하면 구속될 것"이라며 "주민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고 신부의 말을 들으며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생각에 잠긴 강동균 마을회장(왼쪽에서 세 번째) ⓒ 이주빈




24일 경찰이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에 전격 투입된 후 각계각층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천주교 제주교구 소속 사제들은 25일 "주민들이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천막농성장에서 오늘부터 주민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사제들의 이같은 발표는 천주교의 영향력이 큰 제주도라는 점과, 평신도가 아닌 신부 등 사제단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천주교 제주교구 평화의 섬 특별위원장 고병수 신부는 이들을 대표해 "우리는 끝까지 정부와 제주도청이 해군기지 문제를 잘 해결하기 바라며 지금까지 인내해 왔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주민들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 신부는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주민들 곁에 있겠다"면서 "주민들과 함께 웃고 울고, 때리면 맞고, 연행하면 구속될 것"이라며 "이 길은 고난과 시련의 길이 아니라 예수님의 길, 영광의 길"이라고 선언했다.

사제들은 25일부터 세 명씩 강정마을 중덕해안에 있는 주민들이 친 천막에 기거하며 현장을 함께 할 예정이다. 사제들은 특히 "제주도 해군기지 문제를 500만 신도들과 함께 깊게 생각해볼 것"이라고 밝혀 이 사안을 범 교단 차원으로 확대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지금까지 인내... 모든 방법 동원해 주민 곁 지킬 것"

▲ 현애자 전 민주노동당 의원(가운데)이 마을주민 등과 함꼐 몸에 쇠사슬을 묶은 채 경찰 진입이 예상되는 농로에 앉아 비폭력 저항에 들어갔다. ⓒ 이주빈




제주도가 고향인 현애자 민주노동당 제주도당위원장(전 국회의원)은 주민들과 함께 쇠사슬로 몸을 묶은 채 경찰 진입이 예상되는 농로에서 비폭력 저항에 들어갔다. 현 위원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몸에 스스로 쇠사슬을 감은 뒤 열쇠를 던져버렸다.

현 위원장이 몸에 쇠사슬을 감은 채 농로에 앉자 마을 주민과 평화활동가 5명도 쇠사슬에 몸을 서로 묶고 도로에 주저앉았다. 현 위원장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려고 행정대집행 등 무자비한 공권력을 투입하려 한다는 정보를 듣고 있다"며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결코 이 선을 넘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한편 강정마을 주민들과 제주군사기지범대위,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5당의 제주도당은 오전 11시 해군기지 공사현장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권력 투입을 규탄했다.

이들은 "강정마을은 이미 계엄령 하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며 "행정대집행의 무력진압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강정마을 분위기는 전운에 휩싸인 형국"이라고 개탄했다.

이들은 특히 조현오 경찰청장의 서귀포 경찰서 전격방문을 상기시킨 뒤 "조 청장은 주민과 평화활동가의 활동을 불법행위로 강조하며 공권력 행사를 독촉했는데 이 같은 짓은 4·3 때 제주도민을 빨갱이로 몰아세운 상황과 절묘하게 겹쳐진다"고 주장했다.

주민들과 야 5당 등은 "정부와 해군의 무력진압이 오히려 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전 국민과 함께 강정마을 사수를 위한 비폭력·비타협 총력투쟁을 전개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신구범 전 지사도 참석해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업은 안보를 빙자한 특정세력의 사업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강정마을 주민들이 4년 3개월 동안 부당하게 고통을 당해왔는데 아무 것도 못해드린 점 사죄드리고 속죄한다"고 말했다.

신 전 지사는 "4·3의 아픔을 겪은 이 땅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이 또 다시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서 "해군기지 문제는 강정마을만의 문제가 아니고 제주도의 자존이 걸린 문제이며 대한민국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특히 신 전 지사는 "제주도의 지도자들, 지식인에게 특별하게 당부 드린다"며 "역사 앞에 비겁하지 말자, 침묵하지 말자, 당당하게 일어서서 물러서지 말자"고 호소했다.

경찰이 해군기지 건설예정지에 불법 시설물의 추가진입을 막는다는 구실로 병력을 투입한 이후 강정마을 일대엔 긴장이 증폭되고 있다. 마을주민들은 일손을 놓은 채 경찰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고, 경찰은 강정마을 인근에 병력을 배치해 주민들을 검문·감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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