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교양있는 서울 사람되기 힘들고마잉"
[좌충우돌 상경기 6] 개콘 <서울메이트>가 공감가는 이유
▲ 서울메이트사투리 개그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KBS 개그콘서트 콘너 <서울 메이트> ⓒ KBS
개그 프로그램의 아이템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사투리'입니다.
최근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인기 코너로 떠오르고 있는 '서울 메이트' 역시 '사투리'에 웃음 코드를 두고 있는데요. 이른바 '사투리 개그'는 '사투리' 그 자체에서 오는 웃음이 있는가 하면,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사투리 본능'이 더 큰 재미를 유발하곤 합니다. '서울 메이트' 의 웃음코드 역시 이런 식의 '사투리 본능'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평소 글을 많이 써왔기 때문에 표준어와 맞춤법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만, 이성보다 앞서는 건 늘 본능이죠. 숨길 수 있는 '사투리 본능'이 튀어 나올 때마다 당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예를 들어, 상사의 지적에 무슨 해명을 하려하려고 하면, 늘 "긍게(그러니까)"가 먼저 튀어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올린 보고서나 혹은 기획안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저도 모르게 약간 흥분이 되어 말을 빨리 하려 하고, 그러는 도중에 사투리가 먼저 튀어 나오는 경우인데요. 제 입에서 "긍게"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바로 무서운 매의 눈으로 저를 노려봐주는 상사의 하해와 같은 은덕으로 지금은 그나마 "긍게"를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긍게"만 제외한다면 전라북도 출신인 제가 쓰는 사투리는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북도가 남도에 비해 사투리에서 자유로운 까닭도 있겠지만, 예전과 달리 지금은 대중매체의 영향과 잦은 문화교류 등으로 지방과 서울의 언어 환경의 차이가 별다를 게 없는 상황이 돼버리기도 했으니 말이죠.
또한, 같은 회사 내에 '순도 100%'의 경상도 억양을 구사하시는 분이 계셔서 으레 사투리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그분이 주목을 받는 편입니다.
심지어, 회사동료들로부터 "00씨는 사투리를 하나도 안 쓰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실상 언어에 있어서는 이미 '교양있는 서울 사람'이 다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 근저에는 그동안 쭉 글을 써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 표준어와 맞춤법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부심도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전라도 출신임을 만천하에 공개하게 된 일이 벌어졌습니다.
회사동료들이 '순도 100%'의 경상도 억양을 구사하시는 분과 저를 비교하며, 경상도 분에게 사투리를 좀 줄이라고, 억양을 좀 고쳐보라며 장난을 치던 날이었습니다.
유독 그날따라 사투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고, 상대적으로 저의 '올바른 언어 습관(?)'이 칭찬으로 승화되는 그런 시간이 죽 이어졌습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간 저는 그렇게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게 되었습니다. 이 방심이 그날 사건의 전주곡이 될 줄, 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자꾸 어떤 분이 저에게 같은 업무를 중복해서 지시를 내렸습니다. 업무 지시를 받고 바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 됐어?" "언제 돼?", "빨리 빨리~"를 외치는 것입니다. 분명, 10, 20분 만에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해결하려고 저 역시 다른 업무를 미루고 그 업무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그런 저를 보고 있으면서도 굳이 "다 됐어?" "언제 돼?"를 반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급기야 '흥분모드'로 모드 전환을 마친 제 입에서 한 마디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아따~ 지금 하고 있는거 빤히 보면서 왜 자꾸 보챘싼다요~ 제가 알아서 한당께요~"
순간, 시간이 멈췄다고 느낀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아따'… '보챘싼다요'… '한당께요'… 와 같은 단어들이 사무실 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본 것은 저만의 착시였을까요.
십수 명의 눈빛이 저를 향했고, 그 눈빛들 덕분에 '흥분모드'가 해제된 저는 다시 한 마리의 순한 양이 되어 "최대한 빨리 처리하겠습니다"라는 아주 똑바른 언어를 구사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사무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그날 이후 저는 '어쩔 수 없는 지방인'이란 꼬리표를 달게 되었습니다.
분명, 서울말은 끝에만 올리면 되는 것이었는데… 이게 참,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역시나 교양있는 서울사람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서울 메이트>에서 완벽한 서울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투리가 툭툭 튀어나오는 허경환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제가 쓰는 언어에는 그동안 제가 살아온 생활방식과 문화가 녹아있는 만큼, 굳이 잘 되지 않는 표준어를 억지로 고집해서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뭐라 해도 자연스러운 것만큼 좋은 것은 없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개인블로그(이카루스의 추락)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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