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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 아들, 5일 배우고 컴퓨터 조립하다

"망가지면 아빠가 인심 한번 쓰면 된다"

등록|2011.07.29 13:21 수정|2011.07.30 19:11
"아빠 방학 때 컴퓨터 조립 특강이 있는데 하고 싶어요."
"컴퓨터 조립? 요즘 학교에서도 그런 것도 공부해. 며칠 동안 하는데?"
"5일 동안 하루에 4시간씩 해요. 정말 하고 싶어요."
"그럼 하려무나."

5시간 배우고 컴퓨터 조립

여름 방학 며칠 전 중학교 1학년 맏이와 나눈 짧은 대화입니다. 며칠 전 망가진 바퀴달린 장바구니를 고쳤던 그 아이입니다. 저와 막둥이는 망가뜨리기 대장인데, 큰 아이는 고치는 일에 대장입니다. 지난 20일(수요일)부터 26일(화요일)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조립 공부를 했습니다. 얼굴 표정을 보니 여간 밝은 것이 아니라, 속으로는 허락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3만 원을 들여 공부를 했다면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컴퓨터 분해를 하고 있는 맏이. 5일 동안 배운 실력을 마음 껏 발휘했습니다. ⓒ 김동수


아빠의 황당한 제안에 아내와 아이들, 특히 맏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처구니가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맏이는 배우지 않는 것도 고치는 '맥가이버'였기 때문입니다. 믿고 밀어붙였습니다.

"인헌아 조립 공부 재미있었어?"
"예 재미있었요."
"그럼 조립할 수 있겠니."
"…"
"아니 5일 동안 배웠으면 할 수 있어야지. 네 컴퓨터 분해해서 다시 조립해라."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아무리 그래도 5일 공부하고 컴퓨터를 어떻게 조립해요?"
"괜찮아요. 고장 나면 어때. 원래 고장내면서 배우는 거다. 엄마 말 부담갖지 말고 한번 해봐라. 너는 잘 할 수 있을 거다."
"아빠 한 번 해볼게요."
"그래 아빠는 너를 믿는다. 한번 해보는 거다. 고장나면 아빠가 인심 한번 크게 쓰면 된다."

아들이 아닌, 아빠가 더 신기

우리 가족은 다들 큰 아이 컴퓨터 분해부터 조립까지를 지켜보았습니다. 생각보다 능숙했습니다. 아니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장바구니 고치는 모습에서 감동 받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빠는 '기계치'인데, 아들은 기계박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막둥이도 형이 고치는 모습을 보자 신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형이 컴퓨터 조립을 하자 신기하듯 바라보고 있는 막둥이 ⓒ 김동수


▲ 아빠가 조립하는 것을 아들이 신기하게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조립하는 것을 아빠가 신기해 지켜보고 있습니다. ⓒ 김동수


"우리 인헌이 정말 대단하다."
"아빠보다 훨씬 잘해요."
"당연하지 아빠보다 낫지."
"아빠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인헌아 이게 무엇인데?"
"예, 그래픽 카드요."
"이것은?"
"이것을 잘못하면 비밀번호 같은 것을 다 날려버릴 수 있어요."
"아빠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빠 형아가 잘 고치고 있는거야?"
"아무렴. 봐라 형아 잘하지."
"응 잘해. 정말 형은 못하는 게 없어."
"너는 항상 웃잖아. 그것이면 됐어."

어, 부팅이 안 되네

막둥이는 이게 무엇인지 저것은 무엇인지 묻고 또 묻습니다. 아빠와 엄마, 동생 둘이 자기가 분해와 조립을 하는 것을 보면서 신기해 하자 덩달아 잘합니다. 1시간 이상을 투닥거리더니 이제 다 되었다고 합니다. 다들 '환호'했습니다. 이제 컴퓨터를 켜고 1시간 전처럼 똑같은 컴퓨터가 되면 만사형통입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부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방금까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던 맏이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어쩔줄 모릅니다.

▲ 조립에 성공했지만 부팅이 되지 않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원인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수리점에 갔습니다. ⓒ 김동수


"부팅이 안 돼요."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거다."
"그래도 잘 모르겠어요."
"아빠도 모르겠다. 조립을 해 봤어야 알지. 외사촌 형한테 전화해봐라. 전문가 아니니."
"한 번 더 해볼 게요."

"혼자 하는 것도 좋지만 모르는 것은 묻는 거다."

1시간을 씨름하면서 조립에 성공한 것을 두고 타박하면 안 될 것 같아 힘을 내라고 했습니다. 서울 사는 외사촌 형이 컴퓨터 전문가인데 전화를 했습니다. 통화 후 컴퓨터 수리 업체에 가면 쉽게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도 자존심이 있는지 안 내켜 합니다. 다시 용기를 주었습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거나 기죽지 말라고 했습니다. 흰색은 종이요, 검정색은 글씨라는 말처럼 검정색은 모니터 화면이요, 흰색은 영어로 된 글자만 있습니다. 보기에 안타까웠지만 믿었습니다.

형아가 최고, 내가 최고, 아들이 최고

하지만 아무리해도 안 되는지 결국 수리점에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수리점에 갔더니 하는 말이 "하드디스크에 선 하나를 연결하지 않았네요"하는 것입니다. 확인해보니 아주 작은 코드 선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해놓고 선 하나 연결하지 않아 부팅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켰습니다. 화면이 나왔습니다. 맏이보다 막둥이가 더 좋아합니다.

"아빠 우리 형아가 최고다 최고!"
"그래 형이 최고다. 인헌아 잘했어."
"아빠, 엄마한테 전화할게요."
"막둥이가 형 자랑하고 싶지?"
"그럼요, 형아가 다 고쳤는데."
"아빠는 아들이 최고다!"

▲ 컴퓨터 조립 자체를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잭 하나를 꽂지 않은 것을 알고 다시 켜니 부팅이 됩니다. 막둥이는 형아가 최고, 맏이는 자신이 최고라며 좋아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형을 추켜세워주는 막둥이 모습이 대견합니다. 어떤 때는 형에게 지지 않겠다 '발악'(?)을 할 때도 있지만 멀쩡한 컴퓨터를 분해해 조립하는 형을 보고 감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도 신기하고 대견한데 얼마나 좋겠습니까. 당연히 컴퓨터를 다시 할 수 있었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물론 오늘 맏이가 조립한 것은 모든 부품을 자기가 구입하고 하나씩 하나씩 조립하고, 프로그램을 깐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존 부품을 빼내 다시 끼워넣은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천리도 한걸음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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